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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지리산, 가장 아플 때 와라'를 읽고 지리산 둘레길을 추억합니다.

by 마음풍경 2014. 9. 21.

 

 

- 지리산, 가장 아플 때 와라 -

 

 

갑자기 외로움이 사무치게 밀려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아이처럼 소리 내어 실컷 울고 싶을 때,

지쳐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을 때

지리산은 그 너른 품으로 나를 덥석 안아준다.

 

얼마전 가디언 출판사에서 책 한권을 홍보 차 선물로 받았습니다.

책의 제목이 "지리산, 가장 아플 때 와라"여서 바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네요.

시인인 이종성 작가가 쓴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로드 에세이로

22구간을 걸으며 만난 인연과 느낀 풍경들을 시인의 감성으로 담은 책입니다.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도 2008년 11월 남원 매동마을에서 금계 마을을 거쳐

세동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과의 첫 인연을 맺었지요.

(지리산 둘레길 1구간 : 매동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303)

(지리산 둘레길 2구간  : 금계마을에서 세동마을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304)

 

그리고 2009년 여름에도 인월에서 운봉을 거쳐 주천까지 걸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지리산 둘레길 (3) : 인월에서 운봉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10)

(지리산 둘레길 (4) : 운봉에서 주천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11)

 

또한 2009년 가을에 수철마을에서 세동마을을 걷고

또 금계마을에서 인월까지를 마지막으로 지리산 둘레길과의 인연은 멀어져 갔었네요.

(지리산 둘레길 (5) : 수철 마을에서 세동(송전) 마을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67)

(지리산 둘레길 (6) : 금계 마을에서 인월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68)

 

그때만 해도 제가 걸었던 구간인 70km만 길이 만들어졌고 다른 구간은 아직 만들어 지지 않아서

더 이상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제가 걸었던 길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길 풍경 10選을 뽑아서 정리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뽑은 아름다운 지리산 둘레길 10選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76)

 

물론 그 후로도 지리산 둘레길을 다시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 나온 익숙한 풍경의 사진처럼

악양 최참판댁의 최참판 동상이나 악양 너른 들판의 부부 소나무 한쌍,

그리고 현천마을의 노란 산수유꽃과 지리산 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편백나무 숲은

제 기억에도 생상하게 남아 있기에 더더욱 반가운 추억이 됩니다.

(하동 악양 토지길 - 최참판댁과 부부송 그리고 섬진강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133)

(구례 현천마을 산수유 꽃길 - 숨겨두고 싶은 고운 산수유 마을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986)

(구례 산수림농원 편백숲길 - 지리산둘레길 마지막구간의 쉼터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987)

 

요즘은 만들어진 많은 길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완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않아 지리산 둘레길을 다 마무리 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마음으로는 그 길을 다 돌아본 기분이 드네요.

 

하여 이 책은 앞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픈 사람에게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을 주고

지리산 둘레길과의 추억이 있는 분은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고마운 선물이 될것 같습니다.

끝으로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글을 떠올리며 언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그 길을 걸어야겠다는 작은 희망 하나 떠올려봅니다.

물론 그 때는 카메라와 함께 이 책도 내가 걷는 지리산 둘레길의 좋은 동반자가 되겠지요.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언저리 그 자락에서 잠시 내가 보는 것들만 일부 보일뿐이다.

그걸 갖고 어떻게 안다고 하랴. 알아서 사는 게 아니다.

알기 위하여 어둠에 등불을 켜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것이다.

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