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 추적 오는 날에는
일상에서의 일탈(逸脫)을 꿈꾼다.
처마밑으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한적한 지리산 어느 대피소에서
아마도 세석 대피소거나
이젠 없어져 버린
뱀사골 대피소면 좋겠다...
이런 날에는 산꾼들도 없을터이고
혼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라면에 김치 넣고 돼지 삼겹살이라도
몇점 있으면 더더욱 좋고
보글 보글 끓여서
쐬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다림을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나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그 그림자와 한잔 또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리곤
비내리는 풍경도 보고
눈내리는 풍경도 본다.
좋다!
기다림에도 강도(剛度)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밖에 서서 기다리는 것과 안에 편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것과는
기다림의 차원이 다른것이다.
칼날 같은 바람이 귀를
베어갈 듯 몰아치는 겨울날,
아니면 송곳 같은 햇살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여름날 땡볕에서
누구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럴 때 기다림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지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내 안에 무성한 숲을 이룬다.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은 온전히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에게로
흘러가있다.
그런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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