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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1코스 : 다산초당에서 영량 생가까지

by 마음풍경 2010. 2. 21.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1코스 : 사색과 명상의 다산 오솔길(15km)

 

다산수련원 -> 다산초당 -> 백련사 -> 철새도래지 -> 남포마을 -> 목리마을(이학래의 집)

-> 강진시장 -> 사의재 -> 영랑생가(5시간 소요)

 

 

문화관광부가 작년에 정한 문화생태탐방로 7개 길 중 작년 전북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에 이어 2번째로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을  걷기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길을 나섭니다.

 

조선시대에는 9대 간선로라 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이며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구백육십 리 열나흘 길이고,

삼남대로는 서울에서 해남 이진항을 거쳐 제주 관덕정에 이르는 열이틀 길이고요.

이중 삼남대로는 중앙정계에서 밀려나 남도의 섬이나 제주로 귀양을 떠나던 유배길이기도 하지요.
정약용도  그 길을 따라 내려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하여 저도 그 길을 따라 걷기위해 강진으로 향합니다.

 대전을 떠나 광주를 거쳐 강진에 도착하고 또 강진에서 다시 택시(택시비 1만원)를 타고

이곳 다산 수련원에서 걷기를 시작합니다.

 

지난번 고창 질마재길 안내도보다 디자인이 조금더 멋진것 같습니다. ㅎ

그나저나 2박 3일 동안 61km라 만만치 않은 거리네요.

 

몇년전 백련사 뒷산인 만덕산 산행 후 하산 때는 보지 못한 건데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옮겨놓은 비들이 있네요.

 

정약용 선생은 정조와 함께 개혁 정치를 펴다가 정조의 서거 후 신유사옥으로 인해

40세에 포항 장기에서 유배를 시작해서 이후 42세 부터 유배가 풀린 57세까지 이곳 강진땅에서 유배를 했지요.

 

3일 동안 만나게 될 남도 유배길을 안내하는 시그널들 이지요.

역시 디자인이 무척이나 깔끔합니다.

 

물론 바닥에 노란색 페인트로 그려진 화살표도 자주 만나게 되고요.

 

11시 40분경에 다산 수련원 뒷편에서 본적인인 유배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과거 만덕산 산행후 만났던 두충나무 길도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 그대로 입니다.

 

ㅎㅎ 노란색 시그널 말고도 "아름다운 도보 여행"이라는 다음카페에서 설치한 안내표시도 있습니다.

 

다산 수련원에서 다산 초당 입구로 넘어가는 길을 지납니다.

 

어르신 한분이 뒷짐을 지고 사색을 하며 넘어가고 계시네요.  

 

다산초당 입구 식당에서 간단하게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

다산 초당을 향해 길을 올라섭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보고 "뿌리의 길"이라고 했지요.

길 양옆으로 서있는 소나무들이 뻗은 뿌리들이 서로 얽혀있습니다.

 

아마도 유배를 시작한 40세 이후 다산의 굴곡 많은 삶을 보여주는 상징 아닐까요.

 

입구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10여분 올라서니 다산초당에 도착합니다.

 

다산 선생이 57세에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가기전까지 10여년을 기거하며

목민심서, 경세유포 등의 책을 쓰던 곳이지요.

 

다산의 영정 그림을 보니 한시대를 풍미한 정치가라기 보다는

학자에 가깝게 보이네요.

 

다산이 차를 마시던 흔적들도 가득하고요.

 

추사 김정희의 친필인 현판도 비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도

참 간결하고 힘이 있습니다.

 

다산 초당 뒷편 산 바위에

한양으로 가기전에 직접 새겼다는 정석이라는 간결한 글씨도 오랜만에 다시 만납니다.

바위에 손을 대보며 다산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어떤 마음다짐을 하며 이 글을 바위에 새겼을지를..

 

 강진읍에 도착했을 때는 눈발도 날리도 바람도 차갑게 불던데

이곳은 바람 한점 들리지 않는 평온함만 가득합니다.

 

다시 백련사로 가기위해 길을 나섭니다.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천일각을 만납니다.

 

다산초당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곳이지요.

비록 후세 사람들이 이 정자를 지었지만

아마도 이곳에서 흑산도로 유배간 형인 정약전을 걱정하고

떠나온 가족을 그리워했겠지요.

 

 

다시 백련사를 향해 사색의 길을 걷습니다.

참 느낌이 좋은 숲 산책길입니다.

 

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적막감이 가득하네요

하늘은 참 평온하고요.

 

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흘러가는 바람이 된 기분입니다.

하긴 이곳 유배길을 걷는 동안은 나도 그저 이리 저리 흘러가는 바람이나 진배없겠지요.

 

왼편으로 만덕산으로 가는 갈림길도 지나고

이 고개를 넘어서면 동백숲으로 가득한 백련사가 보이겠지요.

 

음지라서 그런지 간간히 잔설도 남아있습니다.

 

숲길을 내려서니

차밭 너머 강진만도 다시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하늘도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요.

 

백련사를 가기위해 울창한 동백나무 숲길로 접어듭니다.

 

다만 땅에 뚝뚝 떨어져있는 동백꽃을 봤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애구 동백나무 기둥이 울퉁불퉁하지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생채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모습을 보일까 생각하니

우리네 인간의 삶도 상처도 그 치유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지난 겨울에 피었다 저버린 동백꽃도 있지만

새 봄이 오면 다시 필려고 준비하는 꽃들도 있습니다.

왠지 기다림이 가득 배여있는것 같지요.

 

1시 10분경에 백련사 경내로 들어옵니다.

다산은 학문과 사상, 그리고 차를 함께 나누기 위해

백련사 주지인 혜장을 이곳으로 만나러 왔었겠지요.

 

ㅎㅎ 경내에 선명한 화살표로 가야할 유배길이 표시되어 있네요.

 

저도 그 화살표를 따라 길을 이어가네요.

 

 하늘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내가 걷는 발걸음도 저 구름처럼 아직은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먼발치에서 백련사를 다시 한번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강진을 향해 나섭니다.

 

백련사를 빠져나가는 길 또한 참 좋습니다.

동백꽃 떨어진 길 풍경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네요.

 

백련사 주차장을 빠져나와서는

차가 다니는 길을 걸어야 하지요.

 

하늘의 천진난만한 구름과 친구하며 걷습니다.

 

내려서는 길에 아주 아담한 규모의 늦봄 문익환 학교가 있더군요.

 

햇살은 따뜻했고

마음은 참 풍요로운 시간이네요.

 

그나저나 큰길로 나서기전에

왼편 마을 길로 들어갔어야 하는데

바로 내려서는 바람에 잠시 주춤하다가

왼편 강진 방향 차도를 걷습니다.

 

비록 아담한 마을 길은 아니지만

뚝방 너머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도 좋습니다.

 

입구에서 부터 약 1km를 걸었나요

다시 유배길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이번 유배길 걷기 3일 동안 몇번의 알바를 했는데

이번이 첫번째 알바였네요.

 

"이정표를 믿자. 시그널이 없는 길은 가야할 길이 아니다"

가슴에 새겨봅니다. ㅋㅋ

 

하늘좋고 구름좋고

바람 시원하네요.

 

드문 드문 차가 지나다니지만

이런 풍경을 한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있습니다.

 

3시경에 철새 도래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철새 관찰 포인트로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

겨울이 다 지나서일까요.

그리 많은 새가 있지는 않더군요.  

 

외로운 느낌의 배 한척만 쉬고 있고요.

 

그나저나

나무로 만든 멋진 남도 유배길 이정표를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ㅎ

 

이제 제방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주변 경치는 참 한가하네요.

 

담담한 길을 걷습니다.

나도 그저 바람을 맞으며 담담하게..

 

멀리 강진읍 시가지가 한눈에 바라보입니다.

 

 물론 좌측으로 백련사를 감싸고 있는 만덕산 능선도

한눈에 펼쳐보이고요.

 

몇년전 저 능선에서 이곳 바다를 바라보았을텐데

그 느낌은 많이 다르네요.

 

주변 갈대밭의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도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립니다.

 

푸릇 푸릇한 보리 순과의 색감의 조화도

참 좋고요.

 

뚝방 오른편으로는 한가로이 고니 한마리 날고요.

 

여튼 길을 따라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지겹지가 않습니다.

 

물도 보고 산도 보고

그리고 시원한 들판도 보고요.  

 

강진 시내쪽으로 가까이 오니

철새들의 군무가 제법 화려합니다.

 

 

갈대 서걱거리는 풍경도 한층 풍성하고요.

 

그나저나 아직 2월인데

이곳 남도 땅에도 변함없이

봄이 오는것 같네요.

지난 작년 봄과 또 다른 설레임이 새록 새록 밀려옵니다.

 

올해 다가오는 봄은 또 어떤 아름다운 추억을 내 가슴속에 남겨줄까요.

 

약 3.5km의 제방길을 건너 다시 마을길로 접어듭니다.

 

 

과거 이곳은 남포 포구가 있던곳인데

그래서인지 바다 비릿한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곳 풍경을 보니 문득 순천만 갈대 밭이 생각이 납니다.

S라인도 떠오르고요. ㅎㅎ

 

목리 마을을 지납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배길 시그널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다산이 1년 정도 머물렀던 이학래 집터 근처에서

시그널을 놓치고 말았네요. ㅎㅎ

도로 공사중이라 그런지

주변을 몇번씩 봐도 시그널이나 노란 화살표는 보이지 않더군요.

하여 2번째 알바를 시작했네요.

 

그냥 다음번 가야할 곳이 사의재이기에

지도를 보고 대충 그방향으로 갑니다.

 

지도를 보고 또 마을 분들에게 물어 물어 사의재를 찾아가는데

반가운 이정표를 만납니다.

 

사의재는 강진 읍내에서 2시 방향에 있다고 해야겠지요.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을 오고난 후 처음으로 기거한 곳으로

귀양으로 힘들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린 곳이지요.

 

그러기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의미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생각을 담백하게 하고, 외모를 장엄하게 하고,

언어를 과묵하게 하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겠다는... 그 뜻이

 

이곳에 사는 늙은 주모와 외동딸이 다산을 극진하게 보살폈다고 합니다.

나라의 개혁을 외치던 장래 촉망했던 유배온 선비와

늙은 주모 그리고 외동 딸의 등장인물로

한편의 잔잔한 드라마가 나올법하지요. ㅎㅎ

 

사의재 현판이 있는 본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이 방에서 4년동안 기거했다고 합니다.

물론 글도 쓰고 또한 사람들을 모아 글도 가르치고요.

 

 

본채 건너편에 아직 장사를 하는 주막이 있어

어수선할법도 한데

왠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 가득한 그런 곳입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잠시 휴식도 취하고

오늘 걷기의 마지막 장소인 영랑 생가를 가기위해 다시

사의재를 나섭니다.

 

가는 길 주변에 성터도 있고 역사의 흔적들도

그대로 남아있더군요.

지금은 방치된 느낌이지만 언젠가는 좋게 복원이 되겠지요.

 

강진군청을 지나는데

색다른 설명 안내도가 있네요.

하긴 먼 조선시대의 역사만 역사는 아니겠지요.

벌써 30년이 흘러간 가까운 과거도 역사일테니까요.

 

그리고 4시 30분경에 영랑생가에 도착합니다.

 

원래는 이곳으로 오는 길도 군청쪽이 아니라 오른편 산쪽 방향으로 돌담길을 따라

휘돌아 와야 하는데 쩝

3번째 알바였네요. ㅋㅋ

여튼 입구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가 반겨줍니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씩은 읊조려보았던 시지요.

 

대문을 들어섭니다.

 

아주 아담하고 운치있는 느낌의 초가집이네요.

뒤로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요.

 

영랑생가 너머로 지나가는 비행기 흔적을 아스라하게 바라보며

정약용 유배길의 첫날 일정을 마무리 해야 할것 같습니다.

이처럼 첫날 걷기가 풍성하고 잔잔한 느낌인지라

이번 걷기도 참 행복할것 같은 예감이 가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