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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한여름에 걸어본 문경새재 과거길과 거문골 계곡

by 마음풍경 2010. 8. 1.

 

문경새재 과거길과 거문골 계곡

 

 

문경새재 주차장(옛길 박물관) => 1관문(주흘관) => KBS 촬영장 => 2관문(조곡관) => 3관문(조령관)

=> 마당바위 => 오른편 거문골 => 마당바위 => 1관문 => 주차장(왕복 약 18km, 순수 걷기만 4시간 소요)

 

 

해마다 변함없이 여름을 맞이하지만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온난화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더위의 강도가 더 심해지는 것 같네요.

하여 더운 한 여름에는 제가 좋아하는 걷기를 하기에도 조금은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한여름에도 시원한 걷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조금 편하면서도 걷기에 딱 좋은 길이 생각이 나더군요.

 

"문경 새재 과거길"

 

오늘은 문경새재 유스호스텔이 있는 주차장에서 3관문인 조령관까지 원점회귀 왕복 걷기를 시작합니다.

 

다만 주차장에서 1관문까지 공사중이라 옆에 있는 자연생태공원으로 휘돌아가도록 되어 있더군요.

 

이곳 자연생태공원은 옛길박물관과 마주보고 있으며 39,452㎡부지에

습생초지원, 생태습지, 생태연못, 야생화원, 건생초지원 등을 테마로 자연생태를 집약적으로 조성해 놓았으며

교목, 관목, 초화류 등 175종 20억6천895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고 합니다.

 

습생초지원과, 건생초지원, 생태연못 등의 서식처와 함께 꽃사슴, 타조 등 18종의 야생동물을 입식하여

더욱 생동감 있는 생태공원으로 평가되고 있다고도 하고요.

 

저멀리 주흘산 능선과 부봉이 바라보입니다.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이곳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때 영남대로가 개척되면서 길이 열렸으며

이후 500년 동안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의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등 문물의 교류지이자 국방상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는 고개는 추풍령과 문경새재, 죽령 등 모두 3개가 있었으나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지며 문경의 뜻 자체가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말이 있어

과거시험을 치는 선비들은 대부분 문경새재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여 문경새재 옛길을 과거길 혹은 장원급제길이라 불립니다.

 

여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의 갭이 있어도 사람 사는 모습들은 한결 같습니다.

이제 1관문인 주흘관부터 본격적인 옛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이 성은 드라마 전쟁씬에 워낙 많이 나와서인지 참 친숙하지요.

1관문을 들어서서 조금 가니 타임갭슐 탑이 나옵니다.

 1996년 경북 탄생 100주년에 매설한 것으로 400년 뒤인 2396년 10월 23일날 개봉한다고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제가 그때까지는 살아 있을 수는 없겠네요.

 

KBS 사극 촬영장도 지나고요.

과거에는 입장료가 없었는데 지금은 입장료를 내야 하더군요.

 

이제 분주하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사라지고 조금은 한가로운 숲길을 걷습니다.

 

저멀리 조령산 능선의 아름다운 모습도 아스라하게 다가오네요.

 

상쾌한 숲길과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좋은 흙길입니다.

 

조령 고개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그냥 이 숲길을 걷기만해도 자연스레 피서가 될것 같습니다.

 

장마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이 참 풍부하고요.

특히 이곳은 좌측 계곡뿐만 아니라 오른편으로 작은 개울을 만들어 놓아

2개의 물길을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화음을 맞춘 합창소리처럼 들리지요.

 

생긴 모습이 지름을 짜는 틀을 닮앗다해서 붙여진 지름틀 바위도 지납니다.

 

이 길 자체가 도립공원이라 그런지 주변 시설도 잘 단장이 되어 있고

500년 세월을 지닌 옛길이라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참 많습니다.

 

조령원터(鳥嶺院址)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에서 대략 2.5km정도 온것 같습니다.

 

(院)은 조선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시설로

조령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길손이 오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물물 교환 등 시장의 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넓직한 흙길을 벗어나 옆으로 옛 과거길로 접어듭니다.

 

편안한 길을 걷다가 조금은 거친 산길을 걷는 기분도 좋습니다.

 

주흘산 풍경도 좀 더 가까이 다가오고요.

 

무주암이라는 널찍한 바위도 만납니다.

그 이름처럼 바위 주인이 따로 없고 이곳에 올라 앉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바위라고 하네요.

 

과거길은 길지 않고 다시 사람들이 다니는 흙길과 합류하고 이윽고 고품이 느껴지는 정자인 교귀정을 만납니다.

교귀정은 조선시대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 감사로부터 업무와 관인(官印)을 인수인계 받던

교인처(交印處)로 조선시대 신임감사의 인수인계는 도경계 지점에서 실시하였으며

이 지점을 교귀라 하는데 여기에 세워진 정자하고 합니다.

 

계곡의 꾸구리 바위도 지나갑니다.

옛날에 바위 밑의 물속에 살고 있는 큰 고기인 꾸구리가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근데 꾸구리가 어떤 고기인지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잉어과에 속하는 소형 어종으로

금강, 한강, 임진강에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어종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근데 이곳 꾸구리는 얼마나 크면 송아지를 잡아먹었을까요.

문득 괴물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ㅎㅎ

 

그나저나 오늘은 넉넉한 물소리도 함께 하니 더욱 좋습니다.

과거 이길을 걸었을 때는 주변 주흘산이나 조령산 혹은 부봉을 등산하고 하산할때 그저 스쳐지나가는 길이었고

또한 물이 별로 없는 계절에 와서인지 이처럼 풍부한 물을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3단으로 이루어진 20미터 높이의 조곡 폭포도 참 물이 많아 장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문경시에서 인공으로 만든 폭포라고 하네요. ㅋ

 

입구에서 1시간 정도 왔을까요. 2관문인 조곡관이 보이네요.

 

반원 형태로 이루어진 성문이 마치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는 액자같지 않습니까. ㅎ

 

 이곳 2관문에서 3관문까지 약 3.5km 거리도 여전히 편안한 숲길입니다.

 

중간 중간 더욱 호젓한 옛 오솔길도 걷고요.

군데 군데 쉴 수 있는 의자나 작은 정자들도 많아 쉬엄쉬엄 걷기에 참 좋은 길입니다.

 

  길 좌우로 천미터가 넘는 주흘산과 조령산이 감싸고 있어서인지

계곡과 숲의 기운이 참 깊고 서늘합니다.

 

동화원을 지납니다.

몇년전 풍성하게 눈쌓인 날에 이곳에서 혼자 부봉을 오른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러셀이 어려워 되돌아 나온 기억도 나고요. ㅎㅎ

 

인간에서 추억이란 무얼까요.

마치 낙엽 떨어져 있는 남루한 평상과 같은 모습은 아닐까요.

낡긴했으나 무언가 가슴 뭉클하게 하는 따스함이 있는 느낌..

 

이제 책바위가 있는 길로 접어듭니다.

책바위가 있어 장원급제길인가봅니다. ㅎㅎ

 

가는 길 곳곳에 멋스럽고 맛스런 옛 시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길은 인간 세상에 비해

어려운 게 아니리"

 

참 왠지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네요.

가파르고 인적 뜸한 산길과 숲길이라지만

인간 사는 세상에 비하면 한결 쉽고 가벼운 길이겠지요.

 

別意江之水
歸程嶺以南
西風一杯酒
日暮正難

 

이 시를 읽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느낌이 구절구절하여

이 시를 쓴 신응시 라는 분이 여자인줄 알았습니다.

근데 알고보니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분이시더군요. ㅋㅋ

 

이 시는 참 파격적이지요.

허탈함을 넘어 세상을 관조하는 느낌도 들고요.

여튼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수많은 시문집을 남긴 분이라고 합니다.

 

좋은 시도 읽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걷는데

오늘 걷는 길중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끄는 길을 만났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왠지 마음을 매료시키는 느낌이 있네요.

 

과거에도 여러차례 이 길을 걸었었는데 그때는 왜 이런 느낌을 갖지 못한걸까요.

아마도 그당시는 산행을 위주로해서인지 주로 먼 주변 경관만이 눈에 들어왔던가 봅니다. ㅎㅎ

역시 알게되는만큼 보이는가 보네요.

 

늘 자연의 모습은 멀리 관조해도 좋고 이처럼 자세하게 바라봐도 너무나 좋은 존재입니다.

 

책바위에 도착합니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아 이 길을 지나던 선비들이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요즘에도 입시철이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합격을 기원한다고 하는 곳이라고 하네요.

근데 돌탑에 산악회 리본을 여기저기 매달아놓은 이유는 무얼까요.

보기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쩝

 

책바위를 지나 이제 조금만 더가면 오늘 걷기의 반환점인 3관문이 나오겠지요.

 

약 2시간만에 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습니다.

백두대간의 능선에 자리한 곳이기에

조령산이나 신선봉, 마패봉, 그리고 월항삼봉 등을 산행할 때마다 늘상 들리던 곳이지요.

 

문경새재 이름처럼 이곳 새재가 이길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새재’라는 말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 사이(間)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제 3관문 반환점을 돌아 내려서야 하는데

지금부터는 맨발로 걷습니다. ㅎㅎ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느낌은 도심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신선한 청량감을 줍니다.

근데 이 길 풍경이 제가 사는 대전의 계족산 임도 길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네요.

물론 계족산 임도 길도 맨발로 다니는 흙길이고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발걸음이 이처럼 가벼운줄은 몰랐습니다.

날아갈 듯 참 가볍더군요.

 

걷는길 옆으로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는 여전히 시원하네요.

 

시원한 흙의 감촉을 발에 느끼며 다시 2관문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길이 편하고 주변 풍경이 좋아서일까요.

참 오랜만에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네요.

 

"가장 오래 헤맨 자의 발바닥이
가장 독한 냄새를 풍기는 법"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와서
여태 무슨 냄새를 풍기고 있었나"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처럼

우리 자신은 이 세상 소풍 길에 어떤 길을 걷고 또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는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고는 있는지..

 

버리고 때론 버리지고 난 후

물기가 다 빠진 모습 속에서도

혹 남겨진 작은 소망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무었일까요.

 

"빗소리만큼만 살고

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 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차지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

 

길을 걸으며 내내 생각해봐도 저 작은 돌탑의 모습처럼

탑에 올려야할 작은 무언가가 아직은 마음속에 남아 있나 봅니다.

부디 그 소망이나 희망이 집착이나 욕심이 되지 않길 바래보네요.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쳐 주며

나무는 버틴다."

 

안도현의 시 "나무"중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서다 보니 계곡 풍경이 제일 아름다운 용추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깊은 바위 골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참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용추를 지나 바로 1관문으로 가려다가 이곳 마당바위에서 계곡방면으로 들어가면

조령산으로 바로 오르는 또다른 작은 계곡이 있다는 생각이 나서 옆길로 빠져봅니다.

 

옛날 이곳 마당바위는 지나가는 객의 쉼터이기도 하고

혹은 이 바위뒤에 산적떼들이 모여 지나는 이들의 금품을 갈취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여튼 마당바위를 지나 계곡을 건너가니 조령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길이 나옵니다.

 

그리고 풀이 우거진 길을 좀 더 이어가니 작은 계곡이 나옵니다.

이곳이 조령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작지만 숨어있는 거문골인것 같습니다.

조령산 산행 들머리를 이화령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문경새재 1관문에서 시작해서 이곳 거문골을 올라

조령산 정상과 신선암봉 그리고 3관문을 거쳐 1관문으로 내려서면

아주 좋은 원점회귀 조령산 산행이 될것 같네요.

 

거문골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마당바위로 되돌아 나오니

ㅎㅎ 이곳에 조령산 산행 이정표가 있네요.

 

 오늘 걸어본 길은 바라보이는 다리 풍경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길이었네요.

 

 문경새재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길이긴 하나 주변의 멋진 산들에 둘러쌓여있어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곳 옛길 박물관에서 문경새재 과거길 걷기를 마무리합니다.

가장 무더운 7월의 마지막 날 걸어본 문경새재 길이었습니다.

바람과 물 그리고 공기가 너무나 시원해서 이 숲길을 걷는 동안은 여름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군요.

여튼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맨발로 이 흙길을 걷는것 만으로도 참 좋은 피서가 될것 같습니다.

물론 500년 역사를 간직한 옛길이기에 풍성한 이야기 거리도 있고요.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이지만 참 가벼운 몸과 마음

그리고 시원한 발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 고운 길을 걷는 내내 참 행복하고 산다는게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