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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애틋한 추억을 회상하며 비오는 대청댐 호반길을 걷다.

by 마음풍경 2011. 7. 11.

 

정말 올해 장마는 기간이 길기도 하지만 내리는 비의 양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아침 뉴스를 들으니 밤사이 시간당 50mm 가까운 비가 내렸다고 하니요.

 

이럴 땐 어디 먼 곳에도 가기도 어렵고 하여

집에서 뒹굴 뒹굴 거리다 차를 몰고 가까운 대청댐으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대청 호반길 1코스이기도 한 이 길은 부담없이 자주 찾게 되는 곳이지요.

흐르는 금강을 따라 테크 길이 이어져 있어 비가 와도 우산쓰고 걷기에 참 운치가 있는 길입니다.

 

사람이 태어난 곳이 양수로 차있는 어머니 자궁 속이라 그런지

강물이건 바닷물이건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지는 것 같네요.

 

어린 시절 다리위에서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 흘러가는 착각을 하곤했지요.

장마철이면 수박도 떠내려가고 집안 살림도 떠내려 가는 풍경도 아스라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 모습에 빠져 학교 등교 시간을 지난 적도 있었고요. ㅎㅎ

 

대학시절 비가오면 워크맨을 귀에 꽃고 길을 정처없이 쏘다니던 추억도 애틋합니다.

방수가 되지 않던 랜드로버 신발 속으로 빗물이 절퍽거렸던 기억까지도 이젠 달콤하네요.

 

비가오면 가난한 연인들은 우산속 작은 공간에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팔짱를 끼고 걷기만 해도 여느 분위기 있는 카페가 부럽지 않았었지요.

 

학교앞 다방 DJ를 보면서 비 내리는 날 틀었던 수많은 비를 주제로한 음악들..

 

"Listen to the pouring rain. Listen to it fall"로 시작하는 

기타의 선율이 무척이나 신선하고 섬세한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비 노래였지요.

내리는 빗방울의 갯수만큼이나 내 사랑도 커지고 강해진다고 하던...

 

물론 비가 온다해서 모든 연인들이 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요.

Aphrodite's Child의 Rain and Tears처럼

비를 맞으며 흘리는 눈물은 똑같지만

맑은 날 흘리는 눈물은 비라 할수는 없을거라는 슬픈 노래도 있고요.

 

아무래도 비와 이별은 왠지 어울리는 친구여서인지

비와 이별에 대한 노래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Everly Brothers의 Crying in the rain도 있었네요.

사랑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서 비가 내리면 울고 싶다 노래하는.

 

물론 팝송만 비를 노래한 것은 아니고 당연히 우리 나라 대중가요에도 수많은 비를 주제로한 노래가 있지요.

그중에서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네요.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

이 밤 빗줄기는 언제나 숨겨 놓은 내 맘에 비를 내리네
떠오는 아주 많은 시간들 속을 헤매이던 내맘은 비에 젖는데
이젠 젖은 우산을 펼수는 없는 것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녘 유리창에 슬픔만 뿌리고 있네
이 밤 마음 속엔 언제나 남아 있던 기억을
빗줄기처럼 떠오는 기억 스민 순간 사이로 내 마음은 어두운 비를 뿌려요
이젠 젖은 우산을 펼수는 없는 것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슬픔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유리창에 내 슬픈 기억들을 이슬로 흩어놓았네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듣고 지난 노래도 중얼거리며 쏘다니다 대청댐으로 향합니다.

대청댐에 물을 방류하면 더욱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아직 물을 방류하지는 않더군요.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비오는 대청호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대청댐에서 바라본 풍경은 늘 그대로이지만

이곳에서 함께한 내 기억속의 지난 추억들은 다 각자의 표정으로 되살아나네요.

이런 날은 왠지 막걸리 한잔에 씁쓸한 묵무침이라도 먹고싶습니다.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 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쓸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져 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 장석남 의 묵집에서 -

 

비는 먼지가 가득 쌓여 골방에 처박혀 있던 지난 추억들을

잠시동안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하는 마법을 지녔나봅니다.

물론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삶의 애절함은 있지만

한순간의 황홀함만으로도 그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