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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4번째 걷는 대전둘레산길 : 1구간] 비움이 시작되는 길

by 마음풍경 2012. 1. 8.

 

대전둘레산길 1구간

 

보문산 청년광장 입구 ~ 고촉사 ~ 보문산 시루봉 ~ 오도산 ~ 금동고개

(약 9km, 3시간 소요)

 

 

2012년 새해가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올해 계획 중 가장 우선적으로 잡은 것이 매월마다 대전둘레산길을 한 구간씩 걷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전둘레산길 열두 구간을 전부 걸은 것이 모두 3번이지만 늘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하지만 4번째 걷는 이번에는 길의 의미를 새로운 마음으로 느껴보고자 혼자 걷기로 합니다.

물론 1월인 오늘은 1구간을 걷고요.

 

한밭도서관에서 보문산 청년광장으로 올라가는데

이곳은 북향이라 그런지 눈이 녹지 않아 차가 다닐 수가 없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좋은데 아침이라 그런지 대전 시가지는 아직은 뿌연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지난 12월에 새로 산 파나소닉 GX1 카메라로 찍어본 아침 풍경의 색감도 맘에 드는것 같습니다.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천천히 오르니

대전둘레산길의 1구간이 시작되는 보문산 청년광장에 도착합니다.

2009년 1월에 이곳을 마지막으로 오고 약 3년만에 다시 찾게되네요.

 

과거에는 보지못한 아주 깔끔한 디자인의 대둘길 표시판을 만났습니다.

이곳은 12구간이 끝나는 지점이면서 1구간이 시작되는 곳인데 12구간 이정표만 있네요.

1구간과 12구간을 함께 표시했으면 더욱 좋을뻔 했습니다.

 

청년광장에서 보문산 시루봉을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길을 한가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옮겨봅니다.

 

아담한 사찰인 고촉사를 지나가는데

노래를 하는 스님인 법능 스님의 "먼 산"이라는 노래가 사찰에서 들려옵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 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먼 산이라는 노래는 김용택 시인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곡입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늘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그렇게 그리움 가득 담고 사는 것도 소중한 행복이겠지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없이 산다면 그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요.

 

좋은 노래도 듣고 눈 길 사이로 살며시 스며드는 그리움도 떠올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보문산 시루봉에 도착합니다.

 

보문산은 대전 시가지에 가장 가까이 있어서인지 도심의 모습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지요.

이처럼 멋진 조망이 있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십니다.

대둘길은 늘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혼자 마시는 느낌도 각별하네요.

 

차분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제 본격적인 대둘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대둘길과의 인연을 처음 맺은 것이 2005년 10월 16일 부터였는데

그때만 해도 초창기라 이런 저런 안내 시설이 참 많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이 이정표처럼 완성된 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싯구처럼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고독은 늘 존재하지요.

하지만 오늘 걷는 길은 사람 사이에 있는 그 섬과도 잠시 작별하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합니다.

 

건너편 능선에 홀로 우뚝 서있는 보문산성 정자도 외로움을 알까요. ㅎㅎ

 

이제 오도산 방향으로 눈 쌓인 능선 길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좋은 느낌이 가득한 길을 걸으면 행복이라는 구름에 둥둥 떠가는 기분이 되지요.

 

멀리 아스라하게 다가오는 식장산이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네요.

대둘길 12구간 중 가장 식장산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구간이 바로 1구간입니다.

 

그나저나 길을 걸으며 만나는 자연의 풍경들은 모두다 반가운 친구가 되지요.

과거에 이 길을 걸을 때 이곳 조망 바위에 올라 바라본 기억이 생상하게 떠오릅니다.

 

비록 이곳을 온지도 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어쩌면 흘러가는 시간속에 쉽게 잊혀져가는 인간과의 인연과는 다르게

자연과 한번 맺은 인연은 쉬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능선 길을 걸어가는데 흰 눈에 쌓여 나란히 식장산을 응시하고 있는 무덤 한 쌍이 보입니다.

왠지 삶의 무상함과 동시에 묘한 애틋함도 느껴지네요.

희노애락이 반복되는 이승과는 다르게 저승의 세상은 편안한 느낌일까요.

하긴 한평생 바쁘게 살았으니 저승에서는 그냥 편하게 쉬어야하겠지요.

 

대전남부 순환 고속도로의 모습이 나오고 도로 터널 위 능선 길을 지나가야 하네요.

산에서 고속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 그 소음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기에 이곳에 사는 동물들에게는 얼마나 힘든 소음일까요. 

물론 우리 도시인들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늘 그런 소음속에 살고 있고요.

 

이제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도산에 도착하겠네요.

힘든 계단 길이지만 느낌이 참 좋아서 가볍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길을 걸을 때는 계단이 없어서 겨울에는 조금은 위험한 길이었는데

이제는 안전한 나무 계단이 생겨서 그림처럼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된것 같네요.

 

오도산(337m)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청년광장 입구에서 이곳까지 약 5km에 1시간 30분이 소요가 되었네요.

 

멀리 보문산과 지나온 길이 한눈에 바라보입니다.

길 걷기중 좋은 점 하나는 이처럼 지나온 길을 아늑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나저나 내가 걸어온 길은 눈길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눈 풍경이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ㅎㅎ

 

그리고 이곳 오도산 정상 능선에서 남부순환고속도로 넘어 식장산 능선이 참 시원하게 다가오지요.

저 능선 길은 대둘길 4구간에 속하기에 진달래 피는 4월에 걸을 것 같습니다.

 

늘 이곳에 오면 느끼는 거지만 이곳 오도산이 식장산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과거에 이곳에서 식장산 능선 너머로 뜨는 일출을 보러와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꼭 그리 해보리라 스스로 약속해 봅니다.

 

저 멀리 대전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서대산의 너른 모습도 아스라하게 바라보입니다.

아마도 법능 스님이 말한 먼 산의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이런 아득한 산그리메를 보고있노라면 마음이 비워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으로 부터 얻어지는 최고의 선물이지요.

 

어쩌면 저는 자연을 통해 비움을 배우고 길을 걸으며 비움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그 비움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늘 후회와 미련만이 반복이 되는 삶이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오늘은 쌓인 눈에 비치는 제 그림자가 왠지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걷는 동안 지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주인을 따라 나선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네요.

그런데 제가 쓰고 있는 검정색 썬그라스가 무섭게 보였는지 주인과 반대방향으로 자꾸만 도망을 가는 겁니다.

겨우 겨우 달래서 주인 가는 길 방향으로 돌려보냈네요. ㅎㅎ

개를 보면 그 천진함과 충직함이 좋아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와의 아픈 이별을 떠올리면 다시 개를 키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별이 두려워 진정으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바보인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은 이상하게도 걷는 거리가 길어질 수록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네요.

새해들어 모든 무거운 것을 다 털어버리려고 생각한 마음 때문이라 생각해봅니다.

 

아쉽게도 이제 오늘 1구간의 종점인 금동고개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능선 길에서 하산 길로 접어듭니다.

 

대둘길을 4번째 걷다보니 눈에 익숙한 풍경도 보게되지만

또 처음 와본 것 같은 그런 풍경도 만나게 됩니다.

하여 이 길을 걸으면서 조금은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게 되고

또 조금은 새로운 추억도 만들어도 보네요.

 

대전둘레산길 1구간의 종점이자 2구간의 시작점인 금동고개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서인지 버스 노선 안내도가 따로 설치가 되어있네요.

 

올해들어 처음 걸어본 길인 대둘 1구간의 주제를 "비움이 시작되는 길"로 정해보았습니다.

늘 사람들과 함께 대전둘레산길을 걷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혼자서 걷는 길이었기에

늘 일상처럼 걷는 길이지만 "길이 곧 비움"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느껴보는 시간이고 싶었습니다.

또한 묘하게도 오늘 걸었던 1구간에 있는 오도산(吾道山)의 의미도 에 길  

나름대로 해석해 보면 '나의 길' 혹은 '나의 성찰' 정도가 될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달에 이곳에 다시 와서 금동고개에서 만인산까지 대둘길 2구간을 걷게 되겠지요.

2구간 길을 걷는 나만의 주제는 무엇이 될건지 그때까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