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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라산 겨울 눈꽃 풍경을 회상하며 하루를 쉬다.

by 마음풍경 2013. 12. 28.

 

올 한해도 이제 몇일 남지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오늘도 눈꽃 풍경이나 조용한 겨울 숲길을 따라 어느 곳인가를 걷고 있을텐데

어제 병원 검사를 받고 무리하지 말고 일주일 정도 쉬라고 해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조동례 시인의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 시집을 읽으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냅니다.

 

물론 집에서 몸을 쉰다고 해서 내 마음속 머물러있는 바람이 저를 마냥 쉬게 놔두지는 않네요. ㅎ

하여 예전 다녀온 곳을 떠올리다가 문득 새하얀 눈 덮힌 겨울 한라산이 생각이 나서

과거 다녀온 사진을 찾아보니 2006년 1월에 다녀온 한라산 사진이 있어서 몇장 옮겨봅니다.

 

한라산은 과거에 종주 2번과 영실 코스 1번 등 모두 3번 산행을 했던것 같습니다.

물론 한라산하면 겨울 산행이 최고여서인지 모두가 겨울에 다녀온 산행이었네요.

 

산행을 매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온난화 때문인지 겨울 산에 내리는 눈이 과거보다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라산은 변함없이 눈이 풍성하기에 순백의 설국 풍경을 보려면 바다를 건너 한라산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성판악에서 시작해서 진달래 대피소에서 따뜻한 컵라면을 먹고

새하얀 눈이 쌓인 능선을 따라 백록담 정상을 오르는 산행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는 일이겠지요.

 

하얀 옷을 입고 도열하고 있는 듯 보이는 나무들의 아기자기한 모습도 무척이나 이색적이지요.

마치 동화속 나라에 와 있는 기분도 들고요.

 

백록담을 향해 오르다 보면 너른 평원에 펼쳐지는 수많은 오름의 풍경은

한라산 산행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선물입니다.

 

성판악에서 약 4시간을 걸으면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 도착합니다.

거리가 약 10km에 가까운데 능선이 완만해서 그래도 쉽게 오를 수가 있지요.

한라산(漢拏山)은 은하수라는 뜻의 漢에 붙잡을 拏라는 뜻이 합해져서

산이 높아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 당길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상 주변에는 세찬 바람이 많이 불고 해발이 남한에서 가장 높은 1,950m이기에

장엄한 운해와 어우러지는 멋진 눈꽃 풍경이 백록담 주변에 가득합니다.

 

물론 백록담을 오른다고 이처럼 맑고 멋진 운해가 가득 펼쳐지는 조망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자연이 주는 감동의 선물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하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시집이라도 있다면 펼쳐서 나지막하게 맘에 드는 시도 읇조려보고요.

 

사랑노래 끝나기도 전에

이별노래 판치는 노래방에서

나는 사랑노래에도 아파서 울고

이별노래에도 아파서 울었다.

 

 

걸리는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사랑과 이별이 차고 이우느라

상처는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 꽃이다.

다가가도 아프고 다가와도 아픈 꽃

가만히 있는 너를 잘못 건드렸다 생아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칼에 베여도

어둠을 배경으로 별이 뜨고

별을 배경으로 달은 살아 있더라.

 

<조동례 -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칼에 배인 날>

 

 

우리네 삶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사는 것이 유한하기에 그 사랑을 통해 불멸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손가락을 베이는 아픔이 있어도 결국은 달을 가리킬 수 밖에는 없는 숙명 같은 것..

 

그나저나 이처럼 장대한 자연속에 머물다보면 지독한 사랑이든 혹은 아픈 이별이든

그리 애면글면하면서 살아야하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일진불염(一塵不染)

 

즉 티끌만큼도 욕심에 물들지 않는 그런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생각과 행동은 늘 같은 길을 가지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것이 뒤뚱거리는 삶이기는 하네요. ㅎ

 

장구목 능선과 고상돈 캐룬이 멋지게 펼쳐지는 조망을 가슴에 담으며 관음사를 향해 내려서는 길은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향해 오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산행길입니다.

한라산은 그런 의미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등산 못지않게 하산의 즐거움도 큰 산인것 같습니다.

 

저 멋진 왕관바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어오는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고 구름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스며들어있는 쓸쓸함과 외로움만이 친구가 됩니다.

 

외롭다는 이유로

세상 등지고 싶은 사람 하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건

그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팠던 것

세상을 등진 그가

나에게 한발짝 다가오면

벼랑을 등지고 사는 나

 

 

물러설 곳이 벼랑이어서

벼랑이 한 발짝 가까워지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 하나로

물러설 곳도 나아갈 곳도 잊고

주머니에서 풀씨 몇 개

비상금처럼 털어내고 있다

하마터면 나도 외롭다는 말을

탈탈 털어놓을 뻔했다.

 

< 조동례 - 가난한 풍경>

 

 

삼각봉 능선을 지나면 이제 약 18km의 8시간에 걸친 성판악에서 관음사로 이어지는 종점을 향해 갑니다.

끝으로 가난한 풍경이라는 시에 의미있는 해설을 남긴 조성국 시인의 글을 옮기며 한라산의 회상을 마무리합니다.

 

외롭다면 외로움이 끌리는 사람끼리 통해야지

저 허기도 그치고 혼자 걷는 쓸쓸함도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을 터인데,

'다가가도 아프고 다가와도 아픈'

그저 통감할 수 없는 외로운 허기만 깊어져 절망할 수밖에

 

세상에 쓸쓸하고 외롭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외롭고 쓸쓸하고 절망스러우니까 사람이 아니겠는가?

궁극적으로 외로운 허기를 메울 수 있는 것이 절망이라면,

절망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껴안는 것 또한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

그것 또한 생각에만 그치치 않고 직접 제 몸으로 극복해나간다면

힘이 더 생기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