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천고개에서 계족산까지 -
화려한 꽃 정취로 봄을 시작하더니
벌써 깊은 5월이 되었습니다.
현재 산은 화려한 색감의
철쭉으로 물들고 있고요.
오늘도 그런 꽃 산행을 기대했지만
아침부터 비가 옵니다.
하여 꽃의 설레임을 잠시 접고
여름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며
세천고개 입구에서
9시경 산행을 시작합니다.
봄비를 가득 머금은 꽃들이
참 소담스럽네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승이라고 합니다.
비룡동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승의 모습이지요.
빗물때문인지 나무잎들의 색감이
참 깨끗합니다.
운치도 있고요.
요즘 보기드문 기와집과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습니다.
우중 산길을 걷을 때는
생각이 단순해 집니다.
하여 먼 주변보다는 가까운 곳에
시선이 가지요.
촉촉히 젖어 있는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 기분을 누가 알까요?
뫼산자 모양의 나뭇잎과
하트모양의 나뭇잎을
동시에 지닌 생강나무지요.
초봄에는 노란색의 꽃을
보여주며 봄소식을 알리는데
푸르름 속에 동화되어 있습니다.
산행길은 산성 길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계족산까지 가는길에
다양한 산성을 만나게 되지요.
질현성, 갈현성, 고봉산성,
소호리 산성, 중봉산성 등
그리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이 좋습니다.
봄이 깊어감을 느낍니다.
연두색속에 보물이 숨어있네요.
귀엽고 예쁜 은방울꽃입니다.
빗길에서도 진한 봄의 향내를 느낍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여름 신록도
맛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에 송화가 피었네요.
줄기에 피지못하고
기둥에 핀 모습은 처음입니다.
위를 처다보니 나뭇가지가
별로 없더군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생존 본능은
다르지 않는것 같습니다.
허공속에 울리는 새소리도 듣고
빗소리도 들으며
한가롭게 산행을 이어갑니다.
물론 이름모를 산성들도 하나씩 넘고요.
비가와서인지 시선이
자꾸만 땅으로 가고
주변 식물들을 보게되네요.
노린재 나무도 만납니다.
가을에 낙엽을 태우면
노란 재가 남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던데.
봄비를 따라 능선길을 내려서니
계족산 임도길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애기단풍으로 우거진
주변 숲 풍경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그 풍경속으로 한동안 푹 빠져보았습니다.
더우기 안개까지 끼여 환상적인 분위기더군요.
비를 머금고 안개에 잠자고 있는 숲속...
저 숲 너머에는 마치 상상의 세계가
있을것만 같네요.ㅎㅎ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다시금 봅니다.
여전히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숲길을 걷는 사람들도 참 아름답지요.
잠시 환상속의 세상에
머물다 온것 같습니다.
아파트 풍경을 보곤 다시
현실로 돌아온듯 하고요.
비 안개가 산너머로
바람을 타고 넘어가네요.
바람 또한 시원했습니다.
안개 걷힌 차분한 산길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고요.
이런 한적한 길을 걷는 것도
인생의 큰 선물이겠지요.
비가 오는 힘든 산길을
걷고서 얻은 보너스.
숨어있는 화사한 꽃들을 보는 기회
또한 추가 보너스고요.
계족산은 이상하게
비와 인연이 많습니다.
작년 9월 2차 대전둘레를
마무리하는 날에도 비가왔으니..
봉황정에서 마무리를 해야지요.
물론 이곳도 안개속에 숨어있습니다.
조망은 그 안개속에 갇혀있고요.
그래서 눈을 감고 그 안개속에
내 마음껏 상상의 그림을 그립니다.
봄비에 젖어있는 산, 나무들..
애기단풍나무의 열매 색감도 좋네요.
가을의 빛감을 예견하는듯 합니다.
식물은 참 많은 변화를 하지요.
꽃이 다르고 열매가 다르고
나뭇잎이 다르고요.
변화해야만 사는걸까요.
저는 변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ㅎ
오늘처럼 우중산행 후 마시는
막걸리 한잔의 맛은 참 각별하지요.
짧지만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약간의 취기를 친구삼아
굴다리도 지나봅니다.
마치 어릴적 동네 근처에 있던
기차 굴다리 추억이 생각나더군요.
아스라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은...
이곳에도 돌 장승이 있네요.
대전은 돌 장승이 참 많다고 합니다.
소박한 그 모습들이 편하게 다가옵니다.
한동안 화려했던 유채꽃밭을 뒤로 하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지어야 하나봅니다.
아침에 산행 하기전에 신문을 읽는데
시 하나가 우연히 눈에 띄더군요.
얼마나 열심히 죽어왔던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태어났던가
불빛을 둘러싸고
빙빙 도는 하루살이떼는
줄어들지 않는다.
타죽지 않으면
떨어져 죽을 목숨들에게
날개란 무엇인가
삶이 한없이
황홀해 보인다.
이윤학의 "하루살이"
비오는 산길을 걷는 오늘 하루는
참 시처럼 황홀한 시간이였습니다.
까투리들의 짝짓기 위해
우는 소리도 황홀했고
비속에 살며시 다가오는
바람의 촉감도 황홀했고
그 바람에 실려 날아온
아카시아 향기도 달콤했습니다.
나에겐 오늘 황홀한 공간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잠시 있었던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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