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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설악산 서북능선 길 - 비오는 안개속 여름 산행

by 마음풍경 2007. 7. 1.

 

설악산 서북능선 길

 

 

한계령 ~ 능선삼거리 ~ 1459봉 ~ 끝청 ~ 중청대피소~ 대청봉(1708m) ~ 설악폭포 ~ 남설악매표소 ~ 오색주차장

(약 15km, 7시간 30분,식사, 휴식 1시간 포함)

 

 

작년 2월에 그렇게 가는 겨울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갔던 곳이 오늘 산행하는 설악산 서북 능선이었습니다.

그날 능선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직 차가운 겨울 바람과 함께 얼마나 시원했던지..

하여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6월 마지막날 다시 그곳을 찾아 갑니다.

홍천에서 인제까지 국도길이 4차선으로 새롭게 완공이 되어 과거보다는 상당히 수월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제에서 양양으로 가는 44번 국도로 들어서니 작년 수해의 피해가 너무나 극심하더군요.

    아직도 복구 중이라 올 여름 무사히 지나가야 할텐데 걱정이 됩니다. 

 

공사중인 길을 돌고 돌아 10시경에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당초 일기예보는 흐리기만 하다고 했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안개비가 내립니다.

 

지금은 비가 오지만 산 능성에 올라서면 멋진 운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108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돈이라는게 무언지 과거에는 돈받는 상업적인 건물로만 보였는데 이제는 반가운 인사를 하며 지나칠 수 있는 여유가 있네요.

   그 앞쪽으로 60년대 한계령 도로를 만들다가 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비가 있습니다.

   바로 앞 설악루에서 우중 산행의 채비를 다시하고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능선까지 오르는 길 내내 안개에 쌓인 산과 바위를 봅니다. 왠지 잠들어 있는 모습처럼 느껴져 조용히 발길을 내딛습니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길의 연속입니다. 얼굴로 떨어지는 안개비를 느끼며 묵묵히 걷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가슴속에 남아있는 헛된것들을 버려보려 합니다.

 

차분한 시간입니다.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뿐인..

 

왠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이런 느낌이 우중 산행의 묘미이겠지요.

 

지난 겨울 산행때 봤던 곰의 얼굴같은 바위를 다시 만납니다.

 

자연은 한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지만 이처럼 변함없는 모습도 함께 지니고 있네요.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떠있는 기대감은 이제 사라지고 차분한 느낌의 바람만이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비가 와서인지 왠지 더욱 선명한 마타리 꽃을 만납니다.

 

여름철에 피는 작은 흰 꽃들은 너무 다양해서 이름을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ㅎㅎ 그냥 설악산에서 만난 흰 꽃입니다.

   어찌보면 사람을 처음 만날때 이름보다는 첫 인상과 느낌이 우선이 듯이 꽃들도 만나면 그 느낌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 이 곳에 샘물도 흐르고 했는데 수해로 인해 완전히 황폐화가 되었네요.

 

불편하다니요. 이렇게 산행을 하는 제가 미안하지요. 일손을 돕지는 못할망정..

 

고도를 높이니 비 줄기가 조금 굵어지네요. 카메라 렌즈에도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비안개 속에 조금씩 다가오는 바위와 주변 풍경들..

 

11시 조금 넘어 서북능선에 올라섭니다. 약 2.3km를 왔습니다. 대청봉은 6km가 남았고요.

 

능선을 올라서도 여전히 안개 비속입니다.

당초 능선을 올라서면 멋진 운해가 보일거라는 기대는 이제 접습니다.

 

능선 길은 언제 가도 참 좋습니다. 포근한 흙길도 있고 때론 바위길도 지나게 됩니다.

 

서서 비를 온전히 맞고 있는 멋진 주목도 만나게 됩니다.

나무 기둥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되네요.

 

12시경에 1459봉 근처에서 빗물과 함께 식사를 하고 다시 끝청을 향해 산행을 이어갑니다.

뒤돌아본 봉우리의 우뚝한 모습이 안개속에 보이네요.

나무잎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립니다.

한적한 산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립니다.

 

비내리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이 모든게 참 소중한 자연의 소리이지요.

실상 귀로 듣는거지만 산길을 걷다보면 귀가 아닌 마음으로 그 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철에 산행을 하다보면 참 인상 깊게 만나는 꽃이 이 커다란 함박꽃이죠.

함박꽃을 보면 함박 웃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ㅎ

 

아! 지난 겨울에도 만났던 그 나무네요.

 

 

하여 겨울 사진을 찾아봅니다. 여름과 겨울의 풍경을 동시에 느껴봅니다. 같은 장소인데도 그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이제 이 곳만 올라서면 끝청이 나오겠지요. 시원한 바람이 불어줍니다.

 

1시 40분경에 끝청에 도착했습니다.

 

끝청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안개 비속을 걸었다는 느낌뿐이네요.

 

끝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중청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에 젖은 산 길을 걷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풀잎이 저를 스쳐갑니다.

그리고 나를 앞질러가는 산객도 있고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또한 짧디 짧은 인연이겠지요.

 

오늘은 반가운 나무들을 자주 만나게 되네요. 사람들의 인연이란 가끔 죽음앞에서 생각하면 참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로 인해 사람들의 목이 메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지만

   자연과의 인연은 그런 삶의 무게가 덜해 한결 만나는것이 언제나 반갑습니다.

 

벌써 끝청 갈림길에 도착했네요.

 

끝청의 해발이 1600미터인데 제 고도 시계도 딱 1600미터를 가르킵니다. ㅎㅎ

 

2시경에 중청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오는 중청 대피소는 처음입니다.

설악산을 여러번 왔지만 비를 맞으며 산행하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대피소에 들어가 시집도 펼쳐보고 휴식의 시간을 보냅니다.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의 모습.. 이제는 산은 나의 영원한 친구이자 애인이고 카메라는 나의 분신과도 같지요.

 

잠시 동안의 휴식이었지만 사람도 없고 한가합니다. 항상 붐비기만 하는 대피소가 아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여하튼 다시 정상인 대청을 향해 갑니다. 빗물을 머금은 식물 하나 하나가 다 소담스럽고 아름답네요.

 

안개에 가려진 정상이 주는 묘한 설레임과 기대감이 느껴집니다.

 

오르는 길에 한마리 새를 만났습니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포즈까지 취해주는 센스???

 

고독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뒷모습도 좋네요. 가끔씩 산 정상 근처에서 만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묘한 인연을 느끼게 됩니다. 혹시 전생에 나의 친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여하튼 소중한 인연이지요.

 

죽음의 계곡으로 가는 길엔 출입금지 푯말이 있네요. 과거 이곳으로 내려가던 사람들이 겨울 산사태 등으로 목숨을 많이 잃었다고 합니다.

물론 중청과 소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무너미 고개로 내려서는 빠른 백두대간 길이기도 하지요.

 

3시경에 대청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비안개로 인해 주변 조망은 전혀없지만 그래도 그 느낌은 충만하고 뿌듯합니다.

 

여유로운 느낌으로 정상 사진을 찍어봅니다.

 

이곳은 강원도 양양 땅이라고 하네요. ㅎㅎ 어디 땅이면 어떻습니까.. 다 대한민국 땅이지요.

 

한계령에서 대청까지 8km를 넘게왔고 이제 오색까지는 5km가 남았네요.

 

대청에서 오색으로 내려서는 길은 하산의 지루한 일반 느낌을 그대로 말해주는 코스이지요.

조망도 없고 묵묵히 내려셔야만 하는 길이기에.. 차라리 비오는 안개 길이 더욱 맘이 편한것 같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함박꽃은 여전히 예쁘네요. ㅎㅎ 여전히 화사한 미소를 한 예쁜 여자의 얼굴처럼 느껴지고요.

 

아직까지 이 바위는 그 모습을 지키며 서있습니다. 철 계단 옆으로 서있는 바위인지라 기억에 남아 있지요.

 

안개 비오는 숲속에 깊이 잠겨있는 느낌이 듭니다.

 

안개속을 걸으며 노래도 흥얼 거려보고요. 어쩌면 삶속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하산길이 때론 지겹고 힘든 길이지만 마음의 여유를 조금 넓히면 참 한가롭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하지요.

안개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경.. 회색에도 다양한 색감이 있다는 걸 다시 느껴봅니다.

 

과거에는 참 편한 흙길이었는데.. 다 사람탓이지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흙길로는 한계가 있겠지요.

 산을 다니기에 묵묵히 감내해야할 시간입니다.

 

대청에서 2시간을 내려서니 5시경에 남설악 매표소에 도착합니다. 하산의 마지막은 성취감과 아쉬움이 늘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내려오면서 침낭을 지고 오르는 산객들을 보면 나도 다시 저곳에 올라 설악산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고 싶다는 유혹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까지 마지막 길을 홀로 걸으며 생각해 봅니다.

오늘 산행에서는 지나는 바람에 실려 무얼 버리고 왔는지를..

마음의 가벼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내려서는 길 곳곳에도 수해 복구 작업이 한창이더군요.

비오는 이곳 오색에서 오늘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처럼 때론 비오는 안개낀 산길을 걷는 시간도 참 소중합니다.

망이 시원하게 트이는 산행도 좋고, 눈오는 하얀 산길도 좋고 안개낀 비오는 산행도 다 좋습니다.

산에만 올 수 있다면 어느 산길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까.. ㅎㅎ

여하튼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을 향해 혼자 터벅 터벅 차도를 걸으며 안개낀 산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책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산봉우리가 비에 가려 보이지 않앗다.

 바람 한점 없었다.

 산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 같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실신한 채로 비를 맞는 여자 같았다"

 

보통 지리산을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하고 설악산을 어여쁜 애인과 같은 산이라고 합니다.

여기저기 수해의 상처를 안고 있는 비오는 설악산을 보니 그 글처럼

오늘 설악산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여자처럼 느껴집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슬픔이 치유되어 다가오는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예전의 모습 그대로

화려함만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나의 애인과 같은 산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