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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 길 ③] 서리꽃 핀 화봉산

by 마음풍경 2009. 1. 17.

 

2009. 1. 17(토)

 

다시 오랜만에 동네 올레길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우성이산도 갔고 충남대 뒷산도 갔으니

이번에는 어느 올레 길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다

우성이산의 메인 봉우리인 화봉산이 생각나더군요.

 

하여 새로운 동네 올레길을 만드는 기분으로 집을 나섭니다.

 

 집을 나서는데 온통 안개가 자욱합니다.

갑자기 날이 풀려서겠지요.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서리꽃일까요. 참 예쁘네요.

평범한 속에도 자세히 관심을 갖는다면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지요.

 

 여하튼 오늘도 뚜벅뚜벅 길을 나섭니다.

 

화학연구소 옆 개천은 청둥오리들과 큰고니들의 놀이터이자 생존하는 보금자리이지요.

 

아무래도 오리들 숫자가 많다보니 고니들이 밀리네요. ㅎㅎ

 

이곳에 눈이 내리면 참 아름다운데

갈수록 겨울 눈 풍경은 인색해지네요.

 

그래도 화학연구원 담장에 예븐 노란 열매가

삭막한 겨울 풍경에 색을 줍니다.

 

여하튼 겨울이 모든게 사라지는 시간은 아니겠지요.

 

안개가 자욱해서 작은 산인 매봉산의 모습이 마치 높고 깊은 산의 느낌을 주네요.

 

겨울 꽃눈들도 꽃망울을 간직한채

봄이라는 희망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보내야 겠지요.

세상사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 풍경을 보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지난 늦가을 우성이산으로 올레길을 떠날때보다 더욱 간결한 풍경이 되었네요.

 

집에서 9시 10분경에 출발을 햇는데

대덕터널 산행입구에 오니 10시가 넘었습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이름이 참 예브죠. 화봉산..

 

산길을 오를수록 안개는 더욱 깊어지고 정취도 더욱 진해집니다.

 

 오늘은 정말 짧은 산행이지만 높은 산이 부럽지 않습니다. ㅎㅎ

 

여성산악인 남난희님의 "낮은 산이 낫다"라는 제목의 책이 생각납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 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않다.

또 어느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책을 찾아 이 글귀를 다시 적어봅니다.

참 좋네요,, 언제 읽어보아도...

 

이런 멋진 서리꽃들을 만나니 마음이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때론 색의 화려함보다 이처럼 단순함이 더욱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이제 주 능선을 만나 왼편 길로 갑니다. 오른편 길로 가면 우성이 산으로 가지요.

 

가는 길 이곳 저곳 핀 서리꽃이 어찌나 아름답고 예쁜지..

 

 

겨울산의 묘미가 무채색의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해주는 풍경입니다.

 

동네 산은 군데 군데 쉼터가 잘되어 있지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지나간 시간보다 무척이나 짧을

노인 한분이 앞서 걷습니다.

산다는게 이처럼 외로움을 견디며 묵묵하게 걷는 것이 아닐까요...

 

안개낀 희미한 길을 정리하며 걷는..

 

종점이 가까워지지만 그렇다고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막연함..

오늘 산 길을 걸으며 그런 삶의 마무리를 생각해 봅니다.

 

작은 산이지만 멋진 소나무들이 참 많습니다.

소나무 향 또한 진하고요.

 

10시 반경에 화봉산 정상인 화봉산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과거 군초소가 있던 곳이지요.

충대 뒷산에도 이런 초소가 있고요.

아마도 박정희때 핵폭탄 제조와 관련된

원자력원구소를 경계하기 위한 시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초소 위에 올라 사방을 보지만 오늘은 조망은 접어야 하나봅니다.

하긴 안개의 정취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무척이나 만족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이치가 아닐까요.

 

저는 아들을 보면 멀리 있는 잘나고 멋진 산이라는 생각보다는

주변의 편안한 산이라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오늘도 아들 얼굴에서 그런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봅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인연..

 

바위에 핀 눈꽃을 보며 겨울 눈이 풍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오늘은 전민동쪽으로 가지않고 중앙백신연구소쪽으로 해서 돌아오기로하고

조금은 한적한 길로 접어듭니다.

그래서인지 길에 눈도 제법 있습니다.

 

숨어있는 서리꽃들의 애잔함은 더욱 깊고요.

 

저처럼 서늘한 풍경을 내 가슴속에 담고싶네요.

 

버리고 버리고 단순함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한다 생각해보고

다짐해보지만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네요.

 

근데 이길로는 처음인데 참 한적하고 느낌이 좋네요.

이런 길을 한 두시간만이라도 걸었으면...

 

여하튼 생각하지 않은 좋은 풍경을 만나니

카메라에 담을게 참 많습니다.

 

잠시동안이지만 산에서의 미끄러운 눈길도 조심 조심 걸어보고요.

아들놈이 앞서가다 새 집을 찾았다고 보여줍니다.

 

정말 작은 나무가지에 만든 작은 새 집입니다.

이곳에는 어떤 새가 살지.. 궁금해지더군요.

저도 머지않아 시골로 내려가면 이처럼 작고 소담스러운 집을 짓고 싶네요.

 

산수유 열매 색이 무척이나 아름답지요.

 

 11시경에 다시 산길을 벗어나서 소란스러운 세상으로 들어섭니다.

 

근데 당초 중앙백신연구소 길로 내려선 줄 알았는데

ㅎㅎ 천문 연구원 옆으로 나왔네요.

쩝 안개때문일까요. 알바를 했네요.

 

그래도 푸른 대나무 줄지어 있는 이 길도 생각지 않은 선물입니다.

 

벌써 화암사거리까지 왔습니다.

 

집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는데 주변에 조경 회사들이 있어 예쁜 풍경들이 길가에 참 많습니다.

 

차소리만 들리는 단조롭고 딱딱한 길이지만 이런 풍경이 있어

잠시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낡은 집 한채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을 텐데 왜 차를 타고 가면서는 한번도 보지 못햇을까요.

느림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기계연구원의 자기부상 열차 궤도 옆을 지납니다.

 

근데 투명 방음벽에 예쁜 풍경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치 화랑에서 멋진 그림들을 보는 기분으로 감상해봅니다.

 

ㅎㅎ 자연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네요.

이곳에도 삶의 소중함은 있고

그런 삶의 모습을 인간에게 아름다운 수묵화같은 풍경으로 보여주니요.

 

가는 길에 철지난 논도 걸어봅니다.

포근포근한 발을 내딛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동네로 다시 들어오니 벌써 12시가 가까이 되어

소머리 국밥이 정말 맛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천리집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이지요.

 

밑반찬도 참 깔끔하고 맛납니다.

 

물론 소머리국밥은 맛난 고기도 많고 국물 또한 무척이나 진하고요.

소머리 국밥의 고기는 일반 고기부위와는 다르게

마치 돼지고기의 껍질이 있는 부위처럼 쫀득 쫀득한 부위가 참 맛납니다.

 

여하튼 당초 계획한 방장산을 가지는 못했지만

3시간 남짓한 화봉산 동네 올레길은 다양한 풍경을 남겨주었네요.

 

정말

"낮은 곳의 편안함이 너무 고맙다"라는

글을 다시 되뇌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사 무거워지는 마음의 짐을

잠시 잊을 수 있어 저에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화려하거나 위대하거나 큰 결과를 만들어야하는 세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소박하고 가볍고 작은 결과라 하더라도

그 또한 소중하다는 의미를 가슴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