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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대청호의 동막골 "벌랏마을"을 따라 가을 길을 걷다.

by 마음풍경 2009. 10. 25.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

 

임진왜란 때 피난 와 정착 화전하며 생계를 영위한 곳으로,

닥나무로 한지를 생산하는 마을이었으며 잡곡과 과일이 풍성하고 1987년부터
1992년까지는 잠업으로 번창한 곳이었습니다.
벌랏이라는 지명은 마을전체가 골짜기로 발달되어 주위가 대부분 밭이고 논은 거의 없는 마을이며

수몰 전 금강의 벌랏나루가 있어 지금의 벌랏마을로 불리어진다고도 합니다.

자연환경보전 지역의 수자원보전지역으로 신축된 건물이나 개발이 없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청정지역이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작고 소박한 마을입니다.

 

-벌랏 마을 홈페이지에서(http://bulat.go2vil.org/)

 

 

 오늘은 오랜만에 멀리 가지 않고

대전에서 가까운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예전에 한번 가보고나서

가을이 되면 한번 걸어서 가고픈 곳이었지요.

 

대청호 주변에도 가을이 자꾸만 자꾸만 깊어가네요.

 

 물은 이렇게 조금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이 좋은것 같습니다.

 

 

중턱에 현암사가 있는 구룡산을 바라보니 가을이 오는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대전에서 대청호를 넘어 문의 마을로 가는 드라이브 길중

개인적으로 제일 맘에 드는 길이지요.

 

509번 지방도를 따라 청남대 입구를 지나

염티삼거리에 차를 두고 이제 소전리 방향으로

약 7km의 길을 걷습니다.

 

7km 거리야 차로 가면 10여분 정도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가을이 주는 선물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기 위해

2시간이 소요되는 길을 걷습니다.

 

비록 분위기 있는 흙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한 느낌이 가득한 길이지요.

 

대청호를 따라 이어지는 잔잔한 가을 풍경도 감상하고요.

 

가을 아침 햇살이 참 곱네요.

다른 계절보다 가을의 햇살은 곱디 고운 풍경을 렌즈에 담게 해줍니다.

 

빨간 단풍잎이 하늘을 가득 가리는 화려함은 없지만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잔잔한 평온함이 가득한 시간입니다.

 

 

물론 아직은 온 산과 들녁을

붉게 물드는 마음의 들뜸도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길에 내 마음을 놓아봅니다.

왠지 걷는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지네요.

머리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발은 길과 함께하고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ㅎㅎ

 

 

 

길은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고 하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 많은 길이 수없이 이어져 있지만

닫히고 소통이 어려운 마음들이 많은 것은 무슨 연유인지요.

 

각자 진실된 두 마음이라 해도

때론 그 마음끼리의 소통이 답답해 지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일까요.

 

"사람의 말도 듣지 못한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조차도 때로는 듣지 못한다.

마주 서서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이다.

마음으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제 생각으로만, 제 뜻으로만 듣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는게 쉬우면서도 때론 지난한 일인가 봅니다.

 

세상사 어쩌면 눈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슬픈 연극은 아닐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눈물을 애써 피하려고

비극보다는 희극을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저 허허 웃으면 살고 싶다는 바램만 있고

더 이상 가슴 아프고 저린 그런 눈물은 없었으면 해서.

 

아~~ 그나저나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물나게 아름답습니다.

눈물도 때론 희망이 될 수도 있겠네요. ㅎㅎ

제 마음이 오늘은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것 같습니다.

 

나무로 이어지는

저 길을 따라 가면 기쁨만 가득한 희망이 찾아질까요.

 

그저 두려움없이 두발로 걷기만 하면

저 길너머로는

기쁨만 가득한 남은 삶이 보여질까요.

 

입으로 흥얼거리며 길가에 노래 몇소절을 이곳 저곳에 버리고 갑니다.

 

그나저나 이 깊은 산속에도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그리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도 죽기전에 한번의 지독한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벼 또한 이 가을에 그런 지독한 사랑을 하는걸까요.

 

 

마치 사랑으로 환하게 빛나는 그런 얼굴처럼 보이네요.

 

때론 살랑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랑의 풍경과도 같고요.

 

 

 시간이 흐르면 모든게 다 과거형이 되지요.

나 또한 몸부림쳐도 결국은 언젠가 과거로 남을터이고요.

 

그래도

저와 같이 붉은 마음이라도 오래 오래 남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툴툴 떨어버리고 나서

 하나도 남지 않은 쭉정이는 되고 싶지 않네요. ㅎㅎ

 

투벅 투벅 걷다보니 벌랏 마을 가기전 소전2리 마을을 지납니다.

 

여튼 지나치는 주변 풍경을 보고 느끼며

이런 저런 생각을 길에 흘리다 보니

이제 도착지가 1km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나저나 다른 때 갔으면 얼마남지 않은 거리가 무척이나 반가울텐데

오늘은 왠지 아쉽기만 합니다.

 

여튼 마을로 가까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풍경이고 단풍이네요.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은 때론 세차고

또 때론 시원하고 감미롭네요.

 

나무는 바람을 통해서만 제 소리를 내는데

나무에게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요.

 

여름과 가을의 정취를 전부 담고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요즘 시기인것 같습니다.

 

 

 이제 마을로 접어듭니다.

노란 단풍이 길가에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을 보니

문득 떠오른 시가 있네요.

 

박재삼 시인의 " 하늘에서 느끼는 것"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자네는 마치

어려운 기상을 걷고

환하게 열린

휘영청한 가을 하늘을

우러르는 일과 같으리라.

 

 

무심코 저 하늘을 보아라,

해와 달, 별들이 언제나

번차례로 꽉 차

여백이 없는 듯하고,

다시 보면

너무 빈 듯이

허전하게 갈리는 것을 ......

 

 

사랑의 차고 이즈러짐도

이같은 것인가

그러나 이 빤한

결과밖에 안될지라도

그 복잡한 과정 속에서

죽네 사네 아우성을 치리라.

 

 

그나저나

벌랏 마을은 여느 시골 마을과 같으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의 정취가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

예전에 이곳에 포구가 있었던 곳으로 내려서봅니다.

ㅎㅎ 남아있는 건물이 마치 시골 버스 정류장 같지요.

 

아직은 그 흔적이 뚜렸합니다.

지금처럼 차길이 없었을 때는

배를 타고 가는것이 이곳 마을의 유일한 외부와의 빠른 통로였겠지요.

 

 

문득 저도 저 강물을 따라 배를 타고 떠나고 싶네요. 

 

"저 만장 같은 넓은 못물 위에

사람은 작은 배를 만들어

띄워보지만

결국은

물결의 반짝반짝

빛나는 영원한 무늬를

약간은 지웠다는 것만

아픈 자국이 되어 남는데.

 

사랑이여

나는 그대에게

가까이 가려고 한 욕심이

그대의 그지없는 조용한 가슴에

상처만 남겼느니..

 

  박재삼 시인의 "나룻배를 보면서"

 

 

가을은 쓸쓸하고 외롭고

하염업음이 가득할때

어디 먼곳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지요.

 

늙은 고목이 되든 속이 텅빈 쭉정이가 되든..

그저 바람과 친구되어 흘러가고 싶네요.

 

마을안 식당에서 함께하신 분들과 맛난 식사도 하고

마을 산책도 하고요.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시간이 되었네요.

 

 벌랏 마을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깊은 여운이 오래 오래 남을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왠지 그 길을 떠나기 아쉬워

다시 뒤돌아 봅니다.

눈물이 날까봐 뒤돌아 보지 않을려 했건만..

 

내 마음속에서 그 슬픔이 스멀 스멀 기어나오네요.

내가 왜 슬픈지도 모르게

그렇게 나도 모르게

 

짧은 만남이 아쉬운

긴 이별 때문이어서 그럴까요.

 

아님 왠지 이세상에

나만 남겨질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와서

힘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온통 기쁨과 풍요만 가득한 그런 시간인데

왜 그런 슬픔이 가슴에 배여왔을까요.

 

풍요라는 기쁨에 겨워 바람에 이리 저리 춤을 추는

풍경만 가득한데요.

 

저 빛나는 풍요속에 왜 애잔한 슬픔이 보이는 건지..

 

오후의 가을 햇살때문일까요.

차분하고 쓸쓸하네요.

 

호수가에 비치는 햇살도 이제 이별을 이야기 하는것 같고요.

 

봄 여름을 지나며 초록의 옷이 화려한 단장을 하고

조금씩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

 

그러기에 더더욱 가슴 저리는 황홀함입니다.

 

나는 이제 저 한그루 나무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할것 같습니다.

 

봄과 여름이 있어

온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 단풍도 있는거고요.

 

혹독한 추위를 묵묵히 지내다보면

또 희망이라는 봄이 설레임속에 오겠지요.

  

"삶이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가슴 시린 아픔을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녹여내며

승화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손 내밀어 붙잡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삶이란 그런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사랑으로 손 내밀어 마주잡고

설렘으로 부둥켜 안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