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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벌교 역사길 - 태백산맥 문학관과 현부자집, 홍교, 소화다리

by 마음풍경 2010. 12. 7.

 

태백산맥 문학관, 현부자집, 홍교, 소화 다리

 

전남 보성군 벌교읍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벌교가 있습니다.

낙안읍성이 순천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보성 벌교가 더 가까웁고요.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여서인지

이를 기념하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벌교 터미널 뒤편 산중턱에 있습니다.

 

태백산맥은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시작해서

빨치산 토벌이 끝나가던 1953년 늦가을 까지의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 하고 있지요.

 

태백산맥은 출간되고 나서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처럼

많은 이념적인 고통과 혼란을 겪었지요.

그래서인지 영화 태백산맥의 시나리오도 이처럼 2편이 있더군요.

 

16,000매의 태백산맥 10권의 육필 원고가 제 키보다 더 크더군요.

 

때론 피 비린내가 나는 소설이지만 이처럼 그 마지막은 고요하기만 하네요.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던 절름발이 사회에

역사와 민족의 관점에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겠지요.

청년시절 날을 새며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언제 시간을 내서 다시 태백산맥을 읽어봐야겠습니다.

 

 태백산맥 문학관 입구를 나서니 바로 옆에 새롭게 복원한 소화의 집이 있고요.

 

소화의 집 건너편에는 멋진 근대 한옥의 모습인 현부자집도 있습니다.

 

이 글을 찬찬히 읽다보니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시 이곳에 살아날것 같지요.

 

일제 시대 건물이라 그런지 한옥과 일본식이

융합된 모습이 조금 이색적으로 다가오네요.

 

대청마루 앞의 작은 문도 그렇고요.

 

대청마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봅니다.

일반 한옥 건물에 비해 조금 화려한 느낌은 들지만 그저 아늑합니다.

 

그리고 현부자집 옆으로 벌교 제석산으로 오르는 조정래 등산길도 있습니다.

담번에 이곳에 오면 벌교에서 낙안읍성으로 이어지는 우리천 올레길뿐만 아니라

이 길도 걸어보아야 하겠습니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빠져나와 벌교천변으로 가니

벌교의 명물인 보물 제304호 홍교가 있습니다.

 

홍교는 1728년에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보시로 홍교를 건립했다고 하며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고 합니다. 

홍교를 뗏목다리라는 뜻의 횡갯다리라고도 하는데

벌교()의 한자 의미도 뗏목을 엮어 만든 다리라는 뜻으로

반 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교 아래쪽으로 1931년(소화6년)에 만들어진 소화다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부용교인데 소화 6년에 만들어 졌다고 해서 소화다리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워졌다고 하네요.

글고보니 태백산맥 소설의 인물도 소화인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ㅎㅎ 

이 다리에서 일제 시대의 울분을 주먹 하나로 달랬던 역사와

여순사건 및 6.25 이념대립 속에 하루에도 여러차례 사상이 다른 이들의 주검이

다리 아래로 떨어졌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라고 합니다.

 

일제때 소화다리는 일본인이 주로 건너다녔는데

그런 일본인들에게 조선사람들이 매서운 주먹을 퍼 부었다합니다.

그것이‘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마라’는 회자되는 이야기도 있고

또한 벌교가 교통의 요지이다보니 상업의 발달로 주먹패 들도 함께 생겨나서 나온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소설 태맥산맥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벌교가서 돈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가서 멋자랑 하지말라"라는 말도 있네요. ㅎㅎ

 

여튼 겨울 무렵에 이곳 벌교를 찾는다면 제철 꼬막의 맛난 먹거리와 함께

재미난 이야기와 볼거리 등의 추억을 듬뿍 담아갈 수 있는 곳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