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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그 여름의 끝 - 그리고 또 다른 가을의 시작

by 마음풍경 2011. 9. 5.

 

"그 여름의 끝"

 

이성복 시인의 3번째 시집 제목이자 대표적인 시중 하나입니다.

 

온 여름 내내 붉은 기운을 품고있는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 나무로도 불리지요.

물론 피는 모든 꽃들이 백일을 가는 것은 아니고 작은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백일동안 한다고 합니다.

 

또한 껍질이 없는 매끈한 줄기 때문에 절에서는 세상의 번뇌를 벗어버리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선비들은 서원이나 향교에 심어 청렴함을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줄기의 모습이 벗은 여인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해서 집에는 심지않고

풍류를 즐기는 양반들이 정자 주변에 심었다고도 하고요.

이름도, 사연도, 의미도 참 많은 나무입니다.

 

그나저나 가을 바람이 제법 살랑거리고 맑은 하늘도 높기만 한걸 보니

새로운 가을이 성큼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속에다 새긴다는 글이 생각납니다.

나는 하루하루 쌓여가는 이 무거운 나이의 흔적을 어디다 새겨야 할지요.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푹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갑사 대적전 앞 배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