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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16)] 눈 내리는 구암사 길

by 마음풍경 2011. 12. 11.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16번째

[구암사 길]

 

신성동 ~ 유성구 예비군 훈련장 입구 ~ 대전당진 유성터널 ~ 박산 ~ 하기동 ~ ADD 입구 ~ 구암사 ~ 흔적골산(우산봉) 길 ~

반석 7단지 세미래 공원 입구 ~ 반석역 ~ 송림마을 ~ 신성동(약 14km, 4시간 소요)

 

 

 

지난 9월 우산봉으로 15번째 동네 올레길을 걷고나서

그 이후로는 자전거길을 가느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창밖을 보니 조금씩 눈이 내리고 있어서 16번째 동네 올레길 걷기를 나섭니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이지만 그래도 그 색은 다 바래지 않았네요.

내리는 눈은 무척이나 반갑지만 그래도 사이 사이 쓸쓸함도 배여있는가 봅니다.

 

아파트 뒤 약수터가 있는 금성 근린공원으로 넘어갑니다.

함박눈은 아니지만 살포시 내리는 눈 또한 반가운 모습이네요.

 

하기마을 방향으로 바람에 날리는 눈을 맞으며 길을 갑니다.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터널도 지나가고요.

늘 다니던 산책길이지만 눈이 내리는 날에 걷는 길은 무척이나 특별합니다.

 

유성 예비군 훈련장 앞을 지나 하기동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어제 내린 첫눈은 바라보기만 하고 몸으로 맞아보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눈을 맞으며 걸으니 참 좋습니다.

 

첫눈의 설레임과 기다림의 느낌은 애틋한 첫사랑을 닮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첫눈은 내리자 마자 녹아버리기에

첫사랑의 마지막 모습도 그러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제 당진 고속도로 유성 터널 옆으로 올라가야지요.

 

저 멀리 계족산 능선도 보이고 시원하게 뚫린 길 조망이 참 좋습니다.

함박눈이 펑펑온다면 더욱 풍요로울 것 같은데 그리 하지는 못하네요.

 

박산 정상에 도착해서 따뜻한 커피 한잔합니다.

눈이 조용히 오는 날 산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각별하지요.

 

 

이제 박산 정상에서 당진고속도로 터널 위를 지나 외삼동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여러 차례 박산에 왔었지만 이쪽 길로 내려서기는 처음입니다.

 

흔적골산 봉우리너머 우산봉 능선도 가깝게 보입니다.

날도 조금 밝아지면서 눈도 거의 내리지 않는 것 같네요.

 

박산을 내려서서 작은 논둑길을 따라 외삼동 마을로 들어섭니다.

 

타버린 연탄과 빨래줄에 걸린 빨래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는 흔하게 보던 풍경이었는데

이제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지요.

 

이곳 시골 마을에 멋진 건물이 있어서 보니 장원이라는 회사 건물이더군요.

 

건물 입구 정원에 옛우물의 모습이 있어 새롭기도 하고 정겹기도 합니다.

 

마을 옆 천변을 따라 계속 길을 이어갑니다.

 

하나의 나무인데 어느 줄기는 죽어가는 모습이고

다른 줄기는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우리네 삶도 늘 살아있기는 하지만 죽음의 모습도 그림자처럼 가까이 있겠지요.

 

이곳 주변 마을 이름이 큰말(서당골)인가 보네요.

계속 국방과학연구소 방향으로 걷습니다.

 

길가 담장에 예쁜 장미 벽화가 있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실제로 이곳에 장미 덩쿨이 있으면 더욱 좋겠네요. ㅎ

 

이제 ADD라 불리는 국방과학연구소 입구에 도착해서 왼편 길로 나갑니다.

 

대전에서 세종시로 가는 국도 1호선은 확장 공사로 어수선한 모습입니다.

 

공사중인 국도 길을 가로질러 구암사로 향합니다.

 

우산봉을 가기위해 구암사를 몇번 와보긴 했으나 걸어서 와보기는 처음입니다.

구암사 입구에 오른편으로 시가 있는 산책길이라는 푯말이 있는 임도가 있네요.

 

이 길은 유성 세종 올레길이기도 하는데 다음번에 이 길을 따라 걸어봐야겠습니다.

 

강아지가 마치 보살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구암사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이곳까지 약 7km에 2시간이 소요가 되었네요.

 

구암사는 다른 절과 다르게 납골당이 있는 절이지요.

하여 대웅전 뒷편에 부도 형태의 탑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암사를 구경하고 다시 입구로 와서 다시 흔적골산 방향으로 산길을 걷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이 마침 점심 때인지라 점심 공양을 꼭 하고 가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오늘은 그냥 길을 먼저 걷기로 하네요.

 

이곳 산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어 길을 걷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오늘은 어제처럼 눈이 많이 오지 않았기에 아마도 어제 내린 첫눈인것 같은데요.

 

내린 눈의 차가움을 느끼고 싶어 손바닥에 눈을 붙여 보았지만 너무 빨리 녹아버리네요.

어제 첫눈이 와서 먹은 술의 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있나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늘 기뻐하고 아파하는 사랑의 마지막 모습도

이 눈처럼 찰나의 차가움을 주고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짧디 짧은 인생이란 어차피 일장춘몽이라고 하지요.

딱 한번뿐인 삶이기에 다만 그 꿈이 악몽은 아니길 바라고

아름다운 꿈 한편 잘 꾸었다가 저세상으로 가길 바랄뿐이고요.

 

조용 조용하게 발걸음을 하고 산길을 가다보니 우산봉으로 오르는 주 능선 길을 만났습니다.

지난 9월에 왔을 때는 초록의 숲이 반겨주었는데 어느새 앙상한 회색빛 풍경만 가득하네요.

 

많은 눈이 쌓여있는 길은 아니지만 자박 자박 걷는 길도 참 느낌이 좋습니다.

지난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오늘은 추워서인지 사람들도 거의 없고요.

 

늘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자연의 섭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말라가는 열매의 색감이 너무 고와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산길을 이어가다가 반석동 아파트 전체 조망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파트 만이 가득한 삭막한 도심의 풍경도 이처럼 자연의 품에서 바라보면 왠지 정겹게 다가오지요.

 

그리고 반석 7단지 옆 세미래 공원으로 내려서서 산을 빠져나갑니다.

이곳은 지난 9월에 우산봉 길을 걸을 때 왔던 곳이네요.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786)

 

공원내에 온갖 꽃들이 화사한 모습을 자랑하는 내년 봄에 다시 와봐야겠습니다.

 

공원을 빠져나와서 이제 반석역 길을 따라 차가 다니는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걷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눈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참 시원하고 아름답네요.

추운 겨울에 보이는 하늘이 더 푸르고 깊다는 느낌이 들지요.

문득 2년전 12월 무척이나 추운 겨울에 사량도 지리망산 정상에서 바라본 그 하늘이 떠오릅니다.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95)

올 겨울에는 어느 섬으로 가서 차갑지만 깊고 시원한 풍경을 만날지....

 

송림마을 아파트를 빠져나와 신성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시인 - 겨울 사랑>

 

 

아직 가을의 늦정취가 남아있는 이곳도 머지않아 새하얀 눈으로 덮이겠지요.

이제 저도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지만 추운 겨울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마도 추운 겨울을 녹일 따뜻함이란 마음 속에 품는 작디 작은 희망이면 되겠지요.

 

비록 희망이 헛된 꿈이 될지는 몰라도

노래 가사처럼 삶에 속고 사람에 속고 또 사랑에 속으며 사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허허~ 허탈한 웃음 지으며 사는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조금은 아쉬운 눈이 내리는 날 걸어본 16번째 동네 올레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