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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⑬] 장맛비 맞으면 걸어본 하기동 박산 길

by 마음풍경 2011. 7. 9.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13 번째

[하기동 박산 길]

 

 

집 ~ 대전-당진 고속도로 유성터널 입구 ~ 박산 ~ 노은2동 주민센터 ~ 송림마을 3단지 입구 ~ 하기동 ~ 집

(약 8km, 2시간 소요)

 

 

 당초 올해 장마가 빨리 끝난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조금 길게 장마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밤새 많은 비가 와서 멀리 길을 떠나기도 어렵고 해서

오랜만에 새로운 동네 올레길을 개척해보려 길을 나서봅니다.

벌써 13번째 동네 길을 개척하네요.

 

아파트 화단에 배롱나무 꽃도 화사하게 피는 것을 보니

여름의 계절 속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동네 올레 길의 시작인 이 길을 따라 아파트를 나섭니다.

오늘도 어떤 새로운 길을 걸을까하는 셀레임을 갖고 말입니다.

 

걷는 길가에 나비와 애무하고 있는 노란 꽃 풍경도 만납니다.

우리가 그냥 상식이라고 치부해버리니 무심코 넘어가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동물은 동물끼리 그리고 식물은 식물끼리 어울리는 모습은 흔하지만

나비인 동물과 꽃인 식물이 이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예를 보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록 꽃과 나비만큼은 못하더라도

우리 인간에게도 어울리는 소중한 식물이 있네요.

바로 나무이겠지요.

때론 인간의 배신에 아프지만 그래도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다리위 호남고속도로에 차들이 쌩쌩 달리지만

저의 발걸음은 그저 황소 걸음이지요.

 

하기 마을 생태 습지인 송사리 둠벙도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려봅니다.

 

비를 맞으며 피어있는 꽃의 모습이 왠지 가슴을 저리게 해서

쉬이 발걸음을 옮기기가 어렵네요.

딱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저 편하고 좋네요.

 

길가 옆으로 참깨 꽃도 만납니다.

우리가 먹는 채소 종류의 식물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 때론 놀랍게 다가옵니다.

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시 되는 삶에 젖어서 일까요.

우리에겐 수확만이 전부일 것 같은 감자, 참깨 등의 식물도

모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살지요.

 

비를 맞으며 한가로이 걷는데

문득 나도 모르게 입에서 중얼거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이 가물가물하여 스마트 폰으로 찾아보니 "이정희의 그대 생각"이라는 노래네요.

 

꽃이 피면 꽃이 피는 길목으로

꽃만큼 화사한 웃음으로 달려와
비 내리면 바람이 부는대로
나부끼는 빗물이 되어 찾아와

머물렀다 헤어져 텅빈 고독 속을
머물렀다 지나간 텅빈 마음을

바쁘면 바쁜대로 날아와
스쳐가는  바람으로 잠시 다가와
어디서도 만날 수 있는 얼굴로
만나면 인사할 수 있게 해

머물렀다 헤어져 텅빈 고독 속을
머물렀다 지나간 텅빈 마음을

 

잘부르지는 못하는 노래이지만

그래도 비를 맞고 환한 얼굴로 저를 반겨주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왠지 고마워서 눈물이 핑도네요.

때론 지겹기만한 인간의 군상 보다도 그저 편안한 자연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올 때가 있네요.

 

이별이란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거라는데

길을 떠나는 여행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행위이기에

이별의 또 다른 모습이겠지요.

다만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도 다시 되돌아 오기에 영원한 이별은 아닐테고요.

 

비가 오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길은 더욱 한적하고 정취가 있습니다.

노은 골프 연습장을 지나 당진 고속로로 유성 터널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멀리서 보면 막혀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터널 입구로 가니 산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을 따라 터널을 위로 지나고요.

흐린 하늘이지만 길만큼은 시원하게 바라보입니다.

 

제 발목을 잡는 무성한 풀들을 제치고 숲 길을 오르니 박산 정상이 보이네요.

 

집에서 이곳까지 3.5km에 대략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특별하게 정상 표시 같은 것은 없고 이정표만 덜렁 있네요.

 

정상에서 왼편 송림 마을 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오른편 외삼동으로 빠지면 집과는 너무나 멀어지고요.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데 남쪽 노은 방향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내려서는 길에 빗소리, 좁은 골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촉촉하게 물은 머금은 나무의 진한 향기만이 가득합니다.

물론 자박자박 걷는 제 발소리와 함께요.

 

이곳 박산 능선은 너무나 짧은게 아쉽지요.

한 2~3km만 되고 너무나 좋을텐데요.

 

그래서인지 이 소나무 숲길이 너무나 운치있게 느껴집니다.

그 길이 너무나 아까워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반걸음씩 걷고 싶은 길이고요.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뒤로 걷지 않는 이상

길은 강물처럼 앞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지요.

오늘 걷기의 반환점인 노은 2동 주민센터 옆의 약수터에 도착합니다.

 

이곳 약수터의 이름이 초숫골 약수라고 합니다.

1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목도 마르고 해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입니다.

물맛이 참 좋네요.

 

송림마을 아파트 단지 옆길을 따라 큰 길로 나오니 작은 원두막이 있는 쉼터를 만납니다.

 

원두막 옆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능소화 꽃이 빗물을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사랑하는 임이 오시길 기다리는 애절한 사랑의 전설이 있는 꽃이지요.

동백처럼 시들지 않고 땅으로 뚝 떨어져 버리는 꽃이기도 합니다.

 

이제 차가 쌩쌩 다니는 길을 따라 돌아갑니다.

 

짙푸른 언덕 너머 회색빛 하늘 풍경에 왠지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인간은 사는것 자체가 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메아 쿨파(Mea Culpa), 메아 쿨파(Mea Culpa), 메아 막시마 쿨파(Mea Maxima Culpa)

나의 탓이다. 나의 탓이다. 아주 큰 나의 탓이다.

 

 

문득 에디트 피아프의 메아 쿨파(Mea Culpa)라는 샹송이 떠오르네요.

 

노래의 가사에서

사랑을 하게되면 7가지의 죄를 범한다고 하지요.

 

"교만의 죄, 소망의 죄, 폭음과 폭식의 죄,

나태의 죄, 분노의 죄, 음란의 죄, 그리고 탐욕의 죄"

 

사랑때문에 범하게 되는 죄라고 하지만

사랑이 원한다면 기꺼이 다시 그런 죄마저도 감수한다는 마지막 노래 구절이 기억에 남는 노래네요.

 

여튼 장맛비 오는 아침에 화사한 꽃들과 문득 떠오른 정겹지만 왠지 애틋한 노래

그리고 터벅 터벅 걷는 나의 발걸음이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