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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⑪] 입춘 날 걸어본 하기동 농장길

by 마음풍경 2011. 2. 4.


2011. 2. 4(금)

 


집 ~ 신성동 뒷동산 약수터 ~ 신성동 동사무소 앞 ~ 유성구 예비군 훈련장 입구  ~

하기동 농장 길 ~ 노은골프연습장 입구 ~ 송사리둠벙 생태습지 ~ 집

(약 7km, 1시간 30분 소요)

 

어제 설날을 보내고  입춘인 오늘 가볍게 동네 길 산책에 나섭니다. 

 

오늘은 앞쪽으로 나서지 않고 약수터가 있는 뒷동산으로 올라서봅니다.

 

아파트 바로 뒤에 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기 참 좋은 길이지요.

 

커피 맛도 좋으며 가격도 싸고 분위기도 편안한

"레체"라는 카페도 있습니다.

 

사시사철 좋은 물이 나오는 약수터가 있어

더운 여름철 시원한 물로 목도 축일 수 있고 잠시나마 더운 몸을 식힐 수도 있지요.

 

날 좋은 봄 가을에는 벤치에 앉아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요.

 

동산을 넘어가니 신성동 동사무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호남 고속도로가 있는 방향으로 들어서면

제 오랜 단골 음식점인 박속 낙지탕을 만나게 됩니다.

박속을 넣은 육수에 산 낙지를 넣어서 먹는 충남 서산 지역 음식이지요.

전라도에서는 낙지 연포탕이라고 하고요.

여튼 벌써 20여년 가까운 단골인데 음식맛이나 인심은 늘 변함이 없어 좋습니다.

 

ㅎㅎ 이 식당 주인장 아저씨의 작품입니다.

겨울이 되면 꼭 물을 뿌려서 멋진 얼음 조각상을 만드시더군요.

 

식당옆 굴다리를 지나니 두갈래 길을 만납니다.

오늘은 오른편 길로 가서 다시 왼편 길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보통 시골에 있는 개들은 낯선 사람이 가면 짖는데

이 개는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더군요. ㅎ

 

농장을 빠져나가니 호남 고속도로가 나옵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귀경 차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고속도로 위 다리를 건너 유성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

왼편으로 당진 고속도로를 따라 길을 걷습니다.

이 주변이 호남고속도로와 당진 고속도로의 교차점이지요.

 

하기동 방면으로 길을 걷다 왠지 이 길로 가고파서

오른편 농장길로 빠져봅니다.

 

그리고 농장 옆으로 제법 넉넉한 흙길이 이어져 있어

그길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농사랑 참거리 직원들의 실습 농장도 지납니다.

 

ㅎㅎ 집 근처에 걷기에 아주 좋은 흙길 하나를 더 발견했네요.

이런 좋은 동네 길을 발견할 때마다 마치 소중한 보물 하나를 얻은 기분이지요.

 

한적하고 소나무 향기가 가득한 편안한 흙길이 이어집니다.

 

조금 아쉽게도 그 길은 계속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농장으로 내려서야 하네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곳이 보안이 철저한 국방과학연구원(ADD)의 경계지역이라

길이 계속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튼 농장쪽으로 다시 내려서니 마치 작은 골프 연습장 처럼 보이는 잔디 풍경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게이트 볼 경기장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주변에 골프 공이 있더군요. ㅎㅎ

여튼 차가 다니는 길도 없는 이 구석진 곳까지 누가 와서 골프 연습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월은 참 혹독할만큼 날이 추웠는데

설을 맞이하여 날이 갑자기 풀리는 느낌입니다.

물론 오늘이 입춘이니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도 커지네요.

 

다시 농장 길을 따라 이어갑니다.

 

고개를 넘어서는데 구급대 차 소리가 요란하여 보니

하기동 송림마을 아파트 앞에 있는 당진 고속도로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더군요.

아마 교통사고가 난것 같습니다.

 

들어올 떄는 그냥 길을 따라 왔는데 나갈 때 보니

지나온 곳이 새미래 농장 땅이었네요. ㅋ

 

송림 3단지 근처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초가 원두막도 있고 벤치도 있는 작은 쉼터도 만납니다.

 

콘크리트 아파트 숲 사이에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풍경이지요.

 

이제 흙길을 완전히 벗어나 차가 다니는 송림마을 아파트 앞 길을 걷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실제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참 한가로운 길이지요.

 

하기마을 생태습지인 송사리 둠벙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산과 하천을 연결해주는 둠벙 형태의 습지로

요즘에는 보기 드물어진 송사리가 많이 살아서 송사리 둠벙이라고 한답니다.

 

그나저나 집 가까운곳에 이처럼 넉넉한 자연의 풍경이 있어

어느 곳 부럽지 않는 충만감이 있습니다.

 

터벅 터벅 걷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행복해지는 길이고요.

 

다시 처음 갈림길로 돌아왔네요.

 

이제 동네 길로 접어듭니다.

 

오늘 처음에 걸었던 뒷 동산 약수터로 오르는 계단 길이 매력적으로 이어지네요.

 

1시간 반 남짓한 짧은 거리였지만

입춘이라 그런지 봄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11번째의 좋은 동네 흙길 하나를 더 만난 기쁨도 큽니다.

 

동네 올레길 후기를 마무리 하는데

문득 지난번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신문 칼럼이 생각이 나서 공감이 가는 내용 몇 부분을 옮겨봅니다.

 

"걷기가 국가적으로 유행한다. 아무리 세상에서 유행이 가장 급속하고 획일적인 나라라고 해도 그렇지,

입는 것만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 타는 것, 사는 집까지 유행해 정말 놀라운데,

이제는 걷기까지 유행하고 상품화되고 있다.

 

도시는 물론 시골에 사는 사람들까지, 아니 시골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자신이 걸어다닐 수 있는 제 동네의 길을 잃었는데,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탓인지

자본은 이제 제 기능을 잃은 우리의 다리조차 그냥 놔두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걷는 길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있어야 하고,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데 필요한 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는 바다 건너 섬이나 산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곳을 걷는다고 한다.

그러나 365일 대부분을 내가 사는 마을이나 동네가 아름답지 않은데,

일년에 겨우 3~4일 걷는 섬이나 산이 아름다운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평생 사는  마을이, 시골이, 도시가, 거리가 아름답지 않다면

아름다움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 한것이 아닌가?

 

세상의 여러 시골은 물론 도시에도 아직 인간을 위한 길이 있다.

그런 인간의 길이 없고, 인간의 걸음까지 유행 상품으로 타락시키는 비인간의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인간답게 내 동네를 걷게 하라. 단 한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아도 좋다.

포장이 아니라 흙길이어야 하니 돈 들 일도 없다.

그냥 인간으로서 내 동네 흙길을 걷게만 하라.

그 밖에 필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저도 주말마다 가까운 동네 길이든 멀리 섬에 있는 길이든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람으로

한번은 쓰디쓰게 곱씹어볼 글인것 같아 조금 길지만 발췌해서 옮겨보았네요.

 

저 개인적으로도 집단적인 유행 풍조의 시시비비를 떠나

멀리 좋은 풍경이 있는 길을 걷는 행위를 굳이 마다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사는 주변에 아무때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