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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선운사 4대 암자 길 - 도솔천의 겨울 정취를 따라

by 마음풍경 2012. 1. 30.

 

선운사 4대 암자 길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 주차장 ~ 일주문 ~ 석상암 ~ 선운사 ~ 참당암 ~

소리재 ~ 천상봉 ~ 용문굴 ~ 마애불 ~ 도솔암 ~ 동운암 ~ 주차장

(약 12km, 4시간 소요)

 

 

고창 선운사하면 서정주 시인의 시와 가수 송창식의 노래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른 봄의 동백꽃이 유명합니다.

또한 화려한 초가을의 꽃무릇과 운치있는 늦가을 단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사찰입니다.

오늘은 그런 화려함과 번잡함을 벗어나 눈 쌓인 겨울 산사의 한적함을 가득 느끼기 위해 선운사를 찾아갑니다.

입구에서 만난 도솔천 계곡은 두터운 얼음으로 덮여있습니다.

 

2009년 가을에 이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이 안내판은 없었는데

그 사이 질마재길 안내도 많이 정비가 된것 같습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도 행복했고 아스라한 추억만 가득하지요.

 

선운사에 오면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천연기념물 367호인 송악도 더 푸르게 자라고 있네요.

선운사는 특히 보물뿐만 아니라 이곳 송악을 비롯해서

동백나무숲(184호), 장사송(354호) 등 천연기념물이 참 많습니다.

 

잔설이 남아있는 길을 따라 선운사 방향으로 걷습니다.

주말인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네요.

 

 우보의 발걸음으로 느릿 느릿 걸어서 일주문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예보상으로는 구름이 많다고 했는데 이곳에서 올라다본 하늘은 무척이나 맑게 개였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선운사 경내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철에 따라 꽃무릇의 화려함과 단풍의 은은함이 가득한 계곡인데

겨울에는 순백색의 얼음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제 이곳 선운사 입구에서 오른편 석상암 방향으로 본격적인 암자길 이어걷기를 시작합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하얀 눈에 덮힌 풀들이 더욱 푸르게 보입니다.

어쩌면 지독하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니 푸르름도 더 진해야 하나 보네요.

 

선운사는 이곳처럼 암자 주변에 녹차밭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2008년 9월에 선운산 산행을 위해 마이재로 가기위해 이 길을 걸을 때는 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는데

이처럼 새하얀 눈길을 다시 걸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251)

 

선운사 입구에서 700미터를 걸어서 석상암에 도착했습니다.

석상암은 선운사의 원로 스님들이 기거하는 암자라고 하네요.

 

석상암 그 자체는 여느 암자에 비해 그다지 색다른 것은 없으나

이곳 암자를 등지고 바라보는 주변 자연 조망이 참 시원하고 아늑하지요.

 

그리고 다시 석상암을 되돌아 내려와 잠시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 봅니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검단선사와 의운 국사가 창건한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입니다.

특히 보물 290호인 대웅보전 뒤편에 자라고 있는 3천여그루의 동백꽃이 가장 유명하지요.

 

경내 구경도 잠시하고 다시 참당암을 가기위해 발걸음을 돌립니다.

 

당초 눈에 덮힌 선운사의 조용한 겨울 풍경을 만나러 왔는데

날이 갑자기 풀려서인지 이른 봄이 오는 느낌이 드네요.

도솔천 계곡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도 듣고요.

 

도솔천 계곡은 어느 계절에 와도 그 계절만의 아름다운 특징을 다 담고 있지요.

비록 날이 포근해서 봄의 느낌도 나지만 아직 이곳은 겨울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연애감정이라는 건 무상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 혹은 허탈함이지요.

자신도 불쌍하고 상대도 불쌍합니다.

연민이라는 건 생명의 동요 같은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동요가 있습니다.

 

꽃이 흩어지는 듯한 무상함, 가련함을 지닌 채로 열심히 살아가는 게 인간일 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일입니다.

마음 깊이 파고드는 감정입니다.

그것은 사랑이거나 우정이거나 연민이기도 합니다.

 

                             <세키 간테이의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 중에서>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처럼 우리 인간은 어쩌면 이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가 불쌍한 것이겠지요.

하여 그런 불쌍한 존재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그다지 많은 볼거리가 없는 소박한 암자길을 걷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신을 좀 더 숙성하고픈 이유인것 같습니다.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수삼을 쪄서 홍삼을 만드는 경우 수삼을 찐 다음에 바로 홍삼을 내리면 거기에는 사포닌 성분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찐 수삼은 일정기간 건조를 시키고 나서 내려야 비로소 사포닌 성분이 가득한 홍삼이 된다고 하고요.

 

마찬가지로 많이 알고 배우기만 하면 어설픈 똑독이가 되겠지만

소박한 길을 걷다보면 사색의 공간이 열리고

내 마음과 가슴이 좀 더 성숙해지고 숙성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가끔씩 한적한 암자길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도솔암 방향으로 길을 걷다보니 참당암으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가던 길을 버리고 오른편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참당암 가는 길에서 바라보이는 주변 봉우리도 소박하지만 고운 풍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자연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일까요.

아무리 봐도 자연의 솜씨보다는 인위적인 사람의 솜씨로 보입니다.

길가의 돌탑은 사람의 작은 소망을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

이 기묘한 모습의 돌탑을 만든 분의 소망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ㅎㅎ

 

참당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이런 기묘한 바위가 제법 됩니다.

 

재미난 돌도 구경하고 한가로이 걸으니 고즈넉한 분위기가 가득한 참당암에 도착했습니다.

2009년 가을 질마재길 때 와보고 참 오랜만에 다시 찾았네요.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82)

 

참당암은 선운사 암자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그 이름의 뜻이 죄를 뉘우치고 참회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보물 803호인 대웅전을 등지고 바라보니 가운데 소리재를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천왕봉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개이빨산 능선이 바라보입니다.

  

참당암을 빠져나와 당초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도솔암으로 가려했으나

질마재 때 걸었던 길을 거슬러 가고 싶어서 소리재 방향으로 산길을 걷습니다.

 

고도를 조금씩 높일수록 겨울 산의 정취도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래쪽은 눈이 많이 녹았는데 이곳 산길에는 눈이 제법 많이 쌓여있네요.

 

과거에는 이 길을 따라 내려왔는데 오늘은 다시 이 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감을 합치면 검은 색이 되고 조명 빛을 합치면 투명한 색이 되는데

예전에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면 이 길은 어떤 색이 되는걸까요.

 

소리재에 도착해서 이제 왼편 낙조대 방향으로 길을 이어걷습니다.

 

그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천상봉에 도착합니다.

 

이곳 천상봉에서 바라보는 천마봉과 도솔천 내원궁의 자연 풍광은 언제봐도 참 멋집니다.

 

바위위에 자라고 있는 이 작은 소나무도 여전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더욱 반갑고요.

문득 무등산 중봉아래에 있는 이와 비슷한 모습의 소나무가 보고 싶어집니다.

올 겨울이 가기전에 한번 꼭 가봐야 하는데 아직은 그리하지 못하네요.

 

조망 바위에 올라 바라보니 능선 너머 저멀리 방장산도 한눈에 아득하게 보입니다.

 

머리위의 하늘과 구름의 풍경은 더욱 감미롭게 다가옵니다.

이런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무아지경이라고 할까요.

내 마음과 정신을 쏙 빼가는 느낌이 드니까요.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지만 이곳은 더욱 아련하게만 느껴집니다.

 

선운산은 그다지 큰 산도 아니지만 참 장쾌하고 멋진 자연의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천상봉에서 잠시 황홀속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낙조대 방향으로 가지않고 바로 용문굴로 내려서네요.

 

양쪽이 크게 뚫려있는 제법 큰 굴입니다.

낙조대 및 선운사 녹차밭과 함께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해졌지요.

 

늘 느끼는 거지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자연의 예술품들은

우리 인간이 쉽게 흉내내기 어렵지요.

 

용문굴을 지나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 계곡을 빠져나갑니다.

 

계곡을 빠져나가자 바로 보물 1200호인 도솔암 마애불상도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애불상을 지나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도솔암 내원궁에 도착하네요.

 

늘 이곳에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바위 절벽위에 지어진 암자라 그런지 주변 풍광이 멋집니다.

 

특히 건너편 천마봉의 모습은 정말 하늘을 항해 비상하는 거대한 천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검은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풍기는 그런 봉우리이지요.

물론 천마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은 선운산 최고의 조망이기도 합니다.

 

도솔암을 다시 내려서서 입구에 있는 찻집에 들러봅니다.

생각해보니 오늘 암자길에서 한번도 쉬지를 않았었네요.

 

선운사에 오면 꼭 들러서 차 한잔 마시고 가는 곳이지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창밖이 고운 가을 단풍 풍경이었는데

오늘은 잔설이 남아있는 겨울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따뜻한 작설차 한잔 마시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섭니다. 

 

선운사에서 만나는 세번째 천연기념물 354호인 장사송도 반가운 친구처럼 만나봅니다.

 

반가운 장사송을 지나 이제 선운사 방향으로 되돌아 갑니다.

 

허허롭게만 보이는 저 하늘처럼 아득하게 흘러가는게 인생이겠지요.

 

아주 편안한 길을 걷다가 마지막으로 4번째 암자인 동운암을 찾아갑니다.

동운암은 선운사 앞을 흐르는 도솔천 건너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 길이 구황봉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어서인지

다른 한적한 암자에 비하면 눈길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제법 어지럽습니다.

 

물론 동운암 그 자체는 여느 암자처럼 소박하고 한적한 모습입니다.

때론 볼것 없음이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동운암을 보고 되돌아 나오는데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저물어 가는 햇살이 잠시 비춰줍니다.

서로 얼키고 설킨 나뭇가지처럼 우리네 삶도 저와 같이 이리저리 이어진 인연속에 살고 있겠지요.

 

벌거숭이로 태어나 여러가지를 즐기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에서 느끼는 감정, 즉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실컷 즐기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몸뚱이 하나, 벌거숭이로 죽어야 앞뒤가 딱 들어맞는 인생이지요,

그런 삶의 자세가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키 간테이의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의 뒷 부분에 나오는 문구이지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게 인생이라 말을 하지만

그래도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게 인간의 모습인것 같습니다.

 

선운산 능선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고즈넉한 겨울 정췰를 느끼며 다녀온 선운사 4대 암자 길 걷기를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