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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4번째 걷는 대전둘레산길 : 2구간] 외로움과 걷는 길

by 마음풍경 2012. 2. 12.

 

대전둘레산길 2구간

 

금동고개 ~ 떡갈봉 ~ 안산 ~ 먹치재 ~ 만인산 정상 ~ 만인루 ~ 만인산 휴게소

(약 12km, 5시간 소요)

 

 

2012년도 벌써 1월이 지나고 어느새 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하루 하루는 참 길게 느껴지는데 한달을 놓고 보면

무척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 시간인것 같네요.

 

오늘 걷는 대전둘레산길 2구간의 주제를 외로움으로 정해보았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이 한권 있는데 그 글의 주제가 외로움이더군요.

길 후기를 쓰기전에 먼저 그 책의 서문에 나온 내용을 일부 옮겨봅니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은 평생을 함께하는 그림자이자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론리니스(Loneliness)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솔리튜드(Solitude)이다.

 

사람들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서로에게 의존해 외로움의 텅 빈 허전함을 메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홀로'라는 선택을 통해 더 좋은 것, 솔리튜드로 도약할 수 있다.

솔리튜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리튜드는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솔리튜드에 이르는 길이 사실상 시작된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혜의 그물을 짠다.

솔리튜드는 그 과정에서 내면의 성숙과 함께 하는 일이다.

인생은 엄밀하게 보면 혼자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그래서 모든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삶의 순간들을 어떤 것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각자의 선택뿐이다.

론리니스인가, 아니면 솔리튜드인가.

     

                                              <한상복 -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중에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2월 둘째주 주말에

대전둘레산길 2구간을 걷기위해 금동고개로 갑니다.

2월 들어 날이 갑자기 추웠다가 또 풀렸다가를 반복하더니

오늘은 그래도 날이 맑고 바람도 없는 걷기에 좋은 날인것 같네요.

 

대둘길이 활성화 되더니 이제는 구간별로

기관이나 업체가 파트너로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만인산을 향해 10km 넘는 길을 나서야 합니다.

대둘 12구간 중에 2구간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해 가장 힘든 구간 중 하나이지요.

 

이곳을 오기위해 금동 고개 아래 마을을 지나오는데 상여가 동네 산으로 올라가더군요.

참 오랜만에 보는 상여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않그래도 오늘 걷는 2구간의 주제를 외로움으로 정했는데

길 걷기에 앞서 상여나가는 모습을 보니

오늘 걷는 길의 프롤로그를 보는 느낌이 드네요.

 

어렸을 때 내가 죽으면 내가 아는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없을 텐데

죽음의 세상은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요.

물론 삶속에도 늘 외로움은 존재하지만 죽음은 그 외로움의 종착점은 아닌지요.

 

3년전인 2009년 2월에 이곳에 왔을 때 밭을 만드느라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던데 그 밭이 인삼밭이었군요.

그떄 이곳에서 대둘길 초입을 찾느라 잠시 헤매였는데

오늘도 역시 잠시 왔다갔다 했습니다.

벌써 4번째 걷는 길인데도 늘 이곳에서만 헤매이니 대둘의 징크스일까요.

 

그나저나 오늘은 하눌도 참 푸르고 맑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 산의 고요함도 느껴지고요.

 

산 능선의 나무들의 모습도 새 잎을 피우는 봄을 기다리며

작은 소망 하나씩 가슴에 지니고 있는 것 같네요.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걷다보면 전혀 낯선 길인것 같다가도

이처럼 반갑게 느껴지는 나무를 만나기도 합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 소나무는 여전하네요.

 

아침 햇살은 능선너머 나무 사이로 아스라하게 비추이고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는 내 숨소리만 거칠게 들립니다.

 

잠시 거친 숨소리를 고르기 위해 이곳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합니다.

늘 그렇지만 길을 걷는 동안 가장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지요.

비록 몇백원 남짓한 커피 믹스로 만든 커피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있는 커피네요.

 

길이 직선으로만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이처럼 곡선으로 휘휘돌아 가는 길이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지난번 1구간은 식장산을 조망하면서 가는 길이라면

오늘은 충남에서 제일 높은 서대산을 바라보면서 걷는 길인것 같네요.

 

떡갈봉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지나는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오간 흔적들이 많은 길이지만

오늘 걷는 이 길은 그저 나 혼자뿐인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이곳 숲길을 걸으면서 신기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음악없이 그냥 걸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스피커 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걸으면 주변의 새들도 따라서 지저귑니다.

새들도 사람의 소리보다는 음악 소리가 좋은가 보네요. ㅎㅎ

 

한시간 남짓 한적한 눈길을 걸어오니 443봉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단촐하게 즉석떡국으로 점심 식사를 합니다.

과거 겨울 산을 다닐 때는 눈밭에서 사람들과 라면도 끓여먹고 했는데

요즘은 산행보다는 길걷기를 주로 하기에

가는 길에서 만나는 식당에서 매식을 하거나

또는 이처럼 간단하게 때우기도 하네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이어갑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자주 이어지고

또 때론 지그재그 길도 이어지기에 그리 지루하지는 않네요.

 

이곳에서 서대산을 바라보니 넉넉하게 펼쳐지는 능선의 모습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인 무등산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나서인지 이곳 대둘길에도 여러 산악회의 시그널이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 대둘길 오리지날 리본을 보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참 반갑습니다.  

혹여 제가 달아놓았던 시그널은 아닌지하는 마음도 들더군요. ㅎ

 

자연은 계절에 따라 자주 변하는 것 같지만

이처럼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비록 다른 나무에 비해 휘어서 자라고 있지만

오래 오래 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랍니다.

나중에 다시 이 길을 걸을 때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은 하나쯤 있었으면 하네요.

 

인간은 외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발명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말입니다.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개의 자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첫번째 자는 강철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상대를 잰다. 가차 없다

두번째 자는 고무줄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자신을 잰다. 재량껏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절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상복 -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중에서 발췌>

 

사람은 다 이기적이고 자신의 욕심을 우선하기에 이래서 사랑이 어려운가 봅니다.

평생 살면서도 진실된 사랑 한번 해보기 쉽지 않으니요.

 

문득 최근에 우연하게 본 소지섭과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아주 뻔한 줄거리의 진부한 사랑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보여지고 느껴지는

그대로의 순수한 시절로 잠시 돌아가본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여튼 사랑은 삶을 무척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휘적휘적 걷다보니 

저 멀리 만인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쪽으로는 금산너머 진악산 능선도 아스라하게 바라보입니다.

눈을 감고 이 풍경을 그려보니 파도치는 바다를 보는 느낌이 드네요.

산 그리메 하나 하나가 다 거대한 파도처럼 다가옵니다.

 

한 평생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나무들의 외로움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외로움은 사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산 속에는 늘 외로움이 가득 배여있지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론리니스가 아닌 솔리튜드의 그런 외로움이기에

저는 홀로 산에 들어와도 늘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네요.

 

치유받는 마음때문일까요.

최근 목감기에 허리 또한 정상이 아닌데

어느새 만인산이 지척인 먹티(먹치)고개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 한점 없이 맑기만 합니다.

가을에 이곳에 와서 낙엽송의 황홀함을 감상해도 좋겠네요.

 

먹티고개를 지나 약 1.5km 정도 남은 만인산으로 향합니다.

 

고개까지 내려서서 다시 봉우리를 올라야 하는 길이 조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이처럼 아름다운 길이 있기에 마음만은 가벼운 발걸음이 됩니다.

 

거기다가 등뒤로는 대둔산 능선이 온전히 펼쳐지고요.

 

시원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다보니 만인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금동고개에서 이곳까지 약 10km에 4시간이 소요가 되었네요.

 

정상에서 바라보니 사방팔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집니다.

 

서대산의 멋진 모습도 온전히 내 시선 속으로 들어오고요.

정상 주변만 보니 그 모습이 마치 지리산 천왕봉을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곳에서 저멀리 서편 능선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홀하게 지는 일몰이면 더욱 행복하겠지요.

 

잠시 벤치에 누워 하늘을 쳐다봅니다.

몸은 무거운데 머리 속은 텅 비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날만 춥지않다면 이곳에서 한숨 자고 싶어 집니다. ㅎ

 

그래도 아직 겨울이라 잠시 쉬었더니

몸이 추워지기에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하네요.

이곳부터는 대둘길에서 벗어나서 태조 태실 방향으로 가지 않고

중부대학교를 바라보며 만인루 방향으로 바로 내려섭니다.  

 

만인루는 만인산 휴게소 뒷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과거에 대둘길 2구간을 마무리 하면서 바라 보기만 했던 정자이지요.

 

그래서 언제 저곳을 가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대둘길을 벗어나 이곳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만인루에 올라 바라보니 서대산이 더욱 가깝게 다가섭니다.

사람들과 함께 저곳에 올라갔던 과거의 시간도 떠오르고요.

그나저나 이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 했으면 좋았을텐데

중간에 따뜻한 물을 다 써버려서 이곳에서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네요.

 

아쉽지만 다음번에 이곳 만인산 임도길만을

휘돌아 걷기위해 다시오는 그때를 기약해봅니다.

 

만인루를 내려와서 휴게소 방향으로 바로 내려섭니다.

 

물론 2주차장 방향으로 소복히 쌓인 눈길로 마음이 쏠리긴 했지요.

 

가파르게 구불 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섭니다.

내려서는 길에 귀여운 아들을 앞세워

가족과 함께 오신 아는 분을 만나 잠시 인사도 나누었네요.

 

만인산 자연휴양림내에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 숲 체험 길이 이리 저리 이어져 있지요.

이곳은 산 정상을 가지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참 좋습니다.

 

이제 오늘 하루 걸었던 길을 정리해 보면서 편안한 눈길을 따라 걷습니다.

내려서면서 비닐 포대를 이용해서 미끄럼을 타는 모습도 보고

 커피 한잔을 들고 데이트 하는 연인의 모습도 보네요.

 

그리고 끝으로 만인산 휴게소에 도착해서 대전둘레산길 2구간을 마무리합니다.

 

사람들은 남의 삶을 사느라 너무 바쁘고

자기 삶을 못 살아 외롭다는 글이 있습니다.

어쩌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우리네 욕심때문은 아닐까 하네요.

 

인간 각자의 운명은 인연이라는 씨줄과 우연이라는 날줄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씨줄과 날줄을 아름답게 짜게 해주는 것이 행복이고요.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론리니스가 아닌 솔리튜드로 만들어 주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하기에 그런 행복을 일상에서 자주 자주 느끼는 삶이 되도록 욕심을 버리고 노력해야

외로움 또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 되겠지요.

 

외로움과 함께 걸어본 대전둘레산길 2구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