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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4번째 걷는 대전둘레산길 : 3구간] 기다림으로 가는 길

by 마음풍경 2012. 3. 4.

 

대전둘레산길 3구간

 

만인산 휴게소 입구 ~ 정기봉 ~ 마달령 ~ 국사봉 ~ 닭재 ~ 삼괴동 덕산마을

(약 12.5km, 4시간 소요/점심 및 휴식 포함)

 

 

 내일이면 경칩이기에 다른 해 같으면 영춘화도 피고

남녁 지리산에서도 산수유가 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올텐데

올해는 꽃피는 봄이 더디게만 오기에 기다림의 마음 또한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기다림이 있네.


우리네 삶은 시작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 받고
기다려 달라는 부탁하며 살아가네.


봄을 기다림이
꽃으로 피어나고
가을을 기다림이
탐스런 열매로 익어가듯


삶의 계절은
기다림은 고통, 멋, 그리움이지 않은가?
기다림은 생명, 희망이지.

우리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데
어느 날 인가?
기다릴 이유가 없을 때
떠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
기다림에 설레이는 것


기다릴 이유가 있다는 것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여 이번 3월에 걷는 대전둘레산길 3구간의 주제를 기다림으로 정하고

먼저 용혜원님의 "기다림"이라는 시로 걷는 길을 열어봅니다.

 

집에서 2번의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30여분을 오니

지난 달 대둘 2구간을 마무리했던 만인산 휴게소 입구에 도착합니다.

 

과거 봄이면 이곳에서 노란색으로 담장을 장식한 영춘화를 보았었는데

올해는 아직 그런 풍경을 만날 수는 없네요.

 

흐린 아침이라 그런지 낙엽송 길을 걷는 마음이 더욱 차분해집니다.

과거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기억도 아스라하고요.

 

본격적인 대둘길 걷기에 앞서 길 옆에 있는 태조 태실을 먼저 찾아봅니다.

 

태조 태실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태를 보관한 석실입니다.

지난번 전주 한옥 마을에 갔을 때 보았던 예종 대왕의 태실도 생각이 나네요.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846)

 

태실옆으로 스릴 넘치는 밧줄을 타고 지났던 추억을 떠올리니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합니다.

 

태조 태실 구경을 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니

대전시에서 식장산(598m) 다음으로 높은 산인 정기봉(580m) 봉화대 터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봉화대 터는 한성에서 오는 봉신을 받아 영남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고

이곳에서 2km 떨어진 2구간에 있는 만인산 정상의 봉화대는 호남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정기봉에서 바라보니 서대산이 회색 구름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야할 식장산으로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 능선의 풍경도 시원하게 펼쳐지고요.

그러나 산봉우리가 많은 것을 보니 가야할 길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같이 흐린 날에 부는 이른 봄의 바람은 차가울 수 있지만

정기봉으로 부는 남풍은 왠지 차가움보다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 포근합니다.

오늘 걷는 길에서 만나는 바람에서도 봄의 기다림이 느껴지는것 같네요.

 

대둘 3구간도 지난 2구간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구간이지만

그래도 길의 한적함이 가득하기에 발걸음 또한 여유롭습니다.

물론 걷기에 아주 매력적인 길도 이어지고요.

길을 자주 걷다보니 화려함과 볼거리가 많은 길이 결코 좋은 길이 아니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이 좋은 길이더군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친구처럼 가는 길 군데 군데 대둘 시그널도 만납니다.

이 시그널을 처음 만난것도 벌써 6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가지요.

 

산길을 휘돌아 나오니 갑자기 시야가 탁트이면서 식장산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입니다.

외롭게 서있는 한그루 나무에서 기다림의 모습이 더욱 크게 느껴지네요.

 

하여 잠시 길 옆 의자에 앉아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을 감상합니다.

이 풍경속에 있으니 기다림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바라보는 공간에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무언가 일을 하기위해 나무를 제거한 모습이 조금 안좋아 보이는데

이런 산 중턱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인지 궁금합니다.

 

 만인산에서 계족산까지는 삼국시대의 산성 흔적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백제와 신라간의 군사 요충지였다는 증거이겠지요.

 

산 능선을 이어 걷다보니 어느새 마달령에 도착했습니다.

만인산 휴게소 입구에서 이곳까지 7km에 2시간이 소요가 되었습니다.

 

말이 넘어다니는 고개라 해서 마달령이라고 하는데

머들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답니다.

나중에 충남 추부면 요광리에서 대전 삼괴동으로 이어지는

이 고개길만을 따로 넘어가보고 싶은데 길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머들령을 지나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이런 낙엽이 쌓인

소나무 숲 사잇길을 걸으니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국사봉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날이 더 흐려지더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당초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를 안했는데 조금 마음이 급해지네요.

거기다가 오전에는 바람이 남풍이라 그다지 춥지가 않았는데

오후가 되니 바람 방향이 세찬 북풍으로 바뀌어서 제법 추워집니다.

 

하지만 산에서 만나는 바람은 어떤 바람이든지 다 좋습니다.

내 뺨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언제나 상큼한 애무의 느낌이 들고

내 온몸을 쓰쳐지나가는 바람은 나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는 기분이 들지요.

 

그나저나 2007년 3월에 2번째 대둘길을 걸을 때도

 국사봉에 도착해서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 오늘도 국사봉에서 비를 만났습니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하니 어느새 닭재에 도착하네요.

 

돌탑도 자라는지 2년전에 봤을 때 보다 왠지 더 키가 커진것 같습니다.

탑은 사람의 소망을 먹고 자라기에 이처럼 커진 것은 아닐까요. ㅎㅎ

 

이제 바로 마을로 내려서면 되기에 비가 내려도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하여 이곳에서 추운 몸을 덥힐 따뜻한 커피한잔 하네요.

산길을 걷다가 이렇게 마시는 커피 한잔은 참 각별하고 소중합니다.

때론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때론 외롭고 쓸쓸하다는 기분도 들고요.

어쩌면 홀로 길을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아닐까요. ㅎㅎ

 

오늘도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산길을 혼자서 걷지만

외로움 만큼의 자유로움도 있기에 이제는 그 매력도 좋은가 봅니다.

 

마을로 내려서는 길에 아직은 계곡에 남아있는 잔설도 만납니다.

이 잔설이 전부 사라져야 올 겨울 내내 기다리던 봄이 오겠지요.

 

 덕산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약 4시간의 대둘 3구간 걷기를 마무리합니다.

 

봄비에 젖은 낙엽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기다림은 삶의 무거움이 아니고 애절함이나 안타까움은 더더욱 아니라고..

기다림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고단한 삶을 이기게해주는 힘을 준다고...

 

비록 흙으로 돌아갈 초라한 낙엽이지만 이 나뭇잎에도

지난 봄의 화려했던 기억을 통해 다가오는 봄의 기다림이 가득 배여있는 것 같네요.

 

오늘은 비도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흐린 날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기다림은 더욱 커진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