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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내장사 암자길 - 일주문에서 원적암까지 녹음 가득한 숲길

by 마음풍경 2012. 9. 2.

내장사 암자길

 

 

내장사 우화정 ~ 일주문 ~ 벽련암 ~ 사랑의 다리 ~ 비자림 ~ 원적암 ~ 원적골 ~ 내장사 ~ 우화정 주차장

(약 5km, 2시간 소요/휴식 포함)

 

 

내장사 암자길은 단풍으로 아름다운 내장사 일주문에서 시작해서

내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인 서래봉이 바라보이는 벽련암을 지나고

사랑의 다리와 600여년된 비자림 나무를 지나 원적암을 거쳐 다시 내장사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특히 내장사는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나 한 여름에 찾아와도

녹음이 우거진 그늘을 따라 한적하면서도 자연에 기대어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이기도 합니다.

내장사의 아름다움이 가을 단풍철에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내장사는 내장산 능선 너머 있는 백양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풍 사찰입니다.

과거에는 산행 시 자주 들렸던 산인데 마지막으로 온 것이 몇년전 겨울에 눈이 내려 멋진 설경이 있을 때 였네요.

(내장산 설경길 - 눈쌓인 서래봉 능선을 따라: http://blog.daum.net/sannasdas/4688934)

 

내장산의 가을 단풍 촬영 장소로 유명한 우화정에서 오늘 내장산 암자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배롱 나무 꽃의 붉은 색감과 서래봉의 멋진 암릉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제 카메라 앵글에 들어옵니다.

 

내장사 케이블카를 타본지도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1박 2일에서 소개가 되기도 했지요.

 

과거에는 그냥 지나쳐서 몰랐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에 있던 조선왕조 실록을 이곳 내장산에 보관한 역사가 있네요.

 

내장산 하면 늘 가을 단풍만을 떠올리는데

이처럼 여름 녹음 가득한 계절에 와도 한가하고 참 좋습니다.

 

오늘 걷는 암자길은 벽련암과 원적암이 이어지는 원적골 자연관찰로이기도 합니다.

 

내장사 일주문 입구에 도착해서 오른편 벽련암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야지요. 

 

가을에 오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단풍 터널인데

이처럼 녹음이 가득한 풍경의 모습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바람에 떨어진 밤송이를 보니 가을도 성큼 문턱에 와있는 것 같네요.

 

계곡 건너편에 백련수라는 약수터가 있는데

지금은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한적하고 그늘진 숲길을 따라 차분하게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것이 암자 길을 걷는 묘미이겠지요.

산길에서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참 곱게 보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개길을 넘으니 벽련암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벽련암은 백제 의자왕 20년인 660년에 환해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원래 내장사가 있던 곳인데

근세에 와서 영은암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곳을 백련암이라고 고쳐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내로 들어서니 내장산 능선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멋진 서래봉이 펼쳐집니다.

과거 이곳이 내장사가 있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과거 내장산 산행과의 첫 인연도 저곳 서래봉에서 부터였는데

사람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자연은 여전히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내 대웅전을 등지니 건너편으로 케이블카 전망대가 있는 연자봉이 바라보입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문필봉이 제비 머리이고, 장군봉과 신선봉이 양 날개,

그리고 제비 둥지에서 새끼가 모이를 받아 먹는 자리가 벽련암이라고 하네요.

 

요즘이 백중 기도 기간이라 이곳도 스님의 염불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네요.

 

이제 다시 벽련암을 뒤로하고 오솔길을 따라 원적암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에 사랑의 다리라는 안내판이 나옵니다.

다리라기 보다는 너덜겅으로 만들어진 돌길인데

신랑 신부가 덜컹거리지 않고 지나가면 아들을 낳고 소원이 성취가 된다고 합니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지겠지요.

 

저야 아들 나을 일도 없고 또 특별하게 소망할 것도 없어서 덜걱 거리며 지나갑니다.

자연에 인간의 소망과 희망을 빌어보는 행위도 어쩌면 자연의 위대함이나 존재성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다리옆에 서로 꼭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가 있더군요.

 

사랑의 다리를 지나니 천연기념물 153호인 비자나무 숲 군락지가 나오는데

이곳이 비자나무가 더이상 북쪽으로 자라지 않는 북방 한계 군락지라고 합니다.

보통 사찰에서 비자나무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은데 이곳에 비자나무를 심은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비자나무 숲 터널을 지나 다시 햇살이 비추이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깊은 숲 터널을 빠져나오니 원적암이 나옵니다.

원적암은 고려 선종 4년 적암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과거 겨울에 왔을 때 눈을 쓸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앞을 지나갔지만

이제는 앞서 있는 비자나무 군락지에 나무 데크 길이 생겨서인지

원적암 주변이 무척이나 한적한 모습이더군요.

 

정말 오늘 걷는 길은 암자 주변을 빼고는 전부 숲 그늘로 이루어져 있네요.

너무 깊어서 뜨거운 여름의 마지막 햇살 조차도 그리워질 정도입니다.

 

이제 원적암을 내려서서 멍방이골이라고도 불리는 원적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원적 계곡은 주변 내장산 능선인 까치봉부터 불출봉까지 능선에서 시작하는 물줄기가 합쳐져 흐르는

약 3.2km의 계곡으로 원적암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이 계곡은 지형이 완만하여 정읍으로 넘어가는 통로이기도 했답니다.

물론 지금은 원적암 입구에서 능선까지는 자연 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된 상태이고요.

 

잠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신선이 부럽지가 않습니다.

자연의 작은 선물이지만 저에게는 기쁨이자 행복이 되네요.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고 선택이며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라는 말처럼

평화로운 자연속에서 소박한 행복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행복을 나누는 기쁨이 있지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내장사 입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곳 흐르는 물에도 노랗고 빨간 단풍 색으로 염색이 되겠지요.

 

나무들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상대 나무에게 해가 되지 않게

서로의 가지를 다른 방향으로 하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고 그러한 자연의 상생 이치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내장사는 여느 유명 사찰에 흔히 있는 보물이 한점도 없는 소박한 사찰입니다.

하긴 어쩌면 이곳은 가을 단풍 풍경이 진정한 보물인지도 모르겠네요.

 

사찰 지붕 너머 바라보이는 서래봉의 풍경이 아늑하게 다가오네요.

 

법정 스님의 말씀 중에

"산은 내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고 내 뜰처럼 즐길  수 있다"는 글이 있습니다.

 

때론 이와같은 무소유의 생각이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편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 산이 내것이라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 또 아니라고 해서 부족함도 없으니요.

 

경내를 빠져나와 부도전도 지납니다.

 

이제부터 내장사 경내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 터널 길을 걷습니다.

 

숲 터널 길 도중에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어있는 배롱나무를 만났습니다.

마치 곱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 처럼 느껴져서 잠시 이 매혹적인 풍경에 푹 빠져보네요.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라는 소설에 나온 구절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나무와 꽃은 조물주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사람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아름다운 꽃의 풍경에도 취하고 또 포근하게 이어지는 숲의 정취에도 취하고

굳이 가을 단풍이 아니더라도 자연은 저를 늘 취하게 합니다.

 

겨울 눈에 쌓인 모습도 곱고 가을 단풍으로 옷을 입은 풍경도 좋지만

오늘처럼 녹음의 숲 그늘 아래서 느끼는 상쾌함도 고마운 행복입니다.

내장사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가을에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다시 행복의 느낌을 가득 안고 우화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책을 보니 레마르크가 쓴 '개선문'의 주인공인 라비크가 추구하던 삶을 말한 구절이 나오더군요.

 

"돈은 많이 벌지 않아도 좋지만, 내가 기분이 좋으면 팁 줄 정도의 경제력을 갖고,

큰 욕심없이 작은 정의를 놓치지 않는 삶을 좇아가는 것"

 

저도 늘 위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데

어쩌면 오늘 걸었던 한적하고 소박한 길이 그런 삶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