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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2)] 울긋불긋 동네 단풍길

by 마음풍경 2012. 10. 31.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2번째

 

- 울긋불긋 동네 단풍 길 -

 

 

세상이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저도 잠시 제가 사는 동네에 피어오른 단풍 구경을 하러 동네 마실을 나서봅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화려한 가을 단풍의 모습에는

왠지 그림자처럼 쓸쓸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듯이 너무나 아름다워도 또 다른 비애인가 보네요.

 

 

10월 들어서 양구다 변산이다 하면서 단풍이 핀 아름다운 풍경들을 찾아다녔지만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제가 사는 주변에도 단풍의 화려한 물결이 가득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빨간 단풍보다는 노란 단풍이 더 좋습니다.

아마도 노랑색,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머스타드 색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인것 같네요.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성격이 조금 거시기 하다는데 그래도 그냥 좋은걸 어쩝니까. ㅎ

 

물론 가을에는 단풍만이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은 아니고

환한 얼굴의 들국화들이 단풍에 한발 앞서서 먼저 가을을 맞아주는 전령사이지요.

 

이제 집 앞을 나서서 노란 은행나무 잎이 깔린 동네 길을 걷습니다.

 

땅에 떨어진 고운 낙엽을 밟으니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가 마치 산사의 풍경 소리처럼 정갈하게 느껴지네요.

 

화려한 결실의 계절이니 쓸쓸한 이별의 계절이니 하는 것 말고

가을이 주는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매년 새롭게 가을을 맞이하지만 나에게 가을은 늘 어떤 의미였을까요.

 

뒤돌아보면 새로운 만남의 가을도 있었을 것이고 또 새로운 이별의 가을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계절의 흐름처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았겠지요.

 

가을은 그처럼 변화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뜻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도 변화하고 사람도 늘 변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늘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가을은 변화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에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절이 모두 담겨져 있는 것 같네요.

 

떨어진 낙엽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걷다보니

봄이면 벚꽃으로 화사한 화폐박물관 입구 탄동 천변으로 나서게 되었네요.

 

바깥쪽으로 휘돌아 가려했는데 문득 물소리가 듣고 싶어서

물가쪽 돌다리를 건너봅니다.

 

징검 다리를 하나 하나씩 건너는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가을의 늦은 오후의 정취가 물 바람에 담겨오네요.

 

늘 이곳 나무 터널 길을 걸으면 느끼는 거지만

한번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곳은 계절이 변하고 세상이 변화해도 늘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고요.

 

흰색 꽃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의 풍경도 아름답고

이처럼 쓸쓸함이 가득 배여있는 낙엽의 모습도 가슴을 저며옵니다.

 

가을의 화려함 속에는 그림자처럼 쓸슬함의 비애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요.

 

O.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수 이정의 마지막 잎새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더라도

참 쓸쓸한게 인생이라는 것을 조용히 속삭여 주는 것..

 

그저 이별이기에 쓸쓸한 것이 아니고

사는 것 자체가 그저 쓸쓸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가을의 숨은 뜻은 아닐까요.

 

그나저나 제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몰라도 참 좋네요.

참 곱고 아름답네요.

 

사계절 아무 때나 걸어도, 낮과 밤, 그리고 새벽 아무 시간이나 걸어도

그 때마다 개성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겨주는 이 편안한 산책길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길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에너지가 숨어있지요.

어쩌면 이별마저도 혹은 쓸쓸함 마저도 행복하게 만드는 묘한 힘.

그래서 저는 늘 걸어야 사는 남자 인것 같습니다. ㅎ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유안진 교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이 유행인 적이 있었지요.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

 

 

어쩌면 제가 걷는 동네 길이 바로 그런 친구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 때나 허물없이 찾아갈 수 있는 친구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사랑과 여유와 행복을 주는 친구처럼.

 

낙옆 쌓인 꿈속 세상같은 길을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길가 담장에 핀 고운 장미꽃을 만났습니다.

세상이 하수상이니 계절도 하수상한 모양입니다.

 

애구 이 풍경은 한술더 뜨는 것 같습니다.

잎은 단풍으로 물드는데 봄에 피는 철쭉이 가을에 꽃을 피다니요.

비록 계절의 이치에는 맞지 않아도 꽃도 피고 단풍도 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가을 속에 담긴 쓸쓸함을 잠시 잊어버리고 살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때론 가끔은 꿈결같은 세상이면 하는 소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