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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태백산 눈꽃길 - 눈을 맞으며 천제단 장군봉을 오르다.

by 마음풍경 2012. 12. 23.

 

태백산 눈꽃길

 

태백산 관리사무소 입구 매표소 ~ 당골광장 ~ 제당골 ~

문수봉 ~ 부소봉 ~ 천제단(장군봉, 1567m) ~

단종비각 ~ 망경사 ~ 반재 ~ 당골 ~ 주차장(13km, 5시간 소요)

 

 

태백산은 겨울 산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산으로

하얀 눈쌓인 길에서 만나는 멋진 주목뿐만 아니라

정상인 천제단까지 이어지는 1500미터 높이의 능선에

피어오르는 눈꽃의 풍경이 장관이며

당골로 내려서는 길에는 엉덩이 썰매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눈꽃길입니다. 

 

 

지난 12월 초에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를 해서

오늘은 그 기념으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눈내리는 겨울 태백산을 찾았습니다.

 

당골 광장에는 아직 태백산 눈꽃 축제 기간이 아니라 멋진 눈조각상은 없지만

분수가 만들어내는 얼음 풍경만으로도 겨울의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네요.

 

일반적인 태백산 등산 코스는 화방재나 유일사를 들머리로 하나

오늘은 당골 왼편 길인 문수봉 방향으로 향합니다.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일본잎갈나무와 함께

순백의 옷을 입고 있는 자작나무가 반갑게 맞아주네요.

키큰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호젓한 눈길을 한걸음 한걸음 아껴서 걷습니다.

 

올 겨울에는 눈이 많이와서 아직 12월인데도 눈이 상당히 많은편이지요.

 

태백산을 여러번 왔지만 제당골 길은 오늘이 처음이라 더욱 신선한 기분이 듭니다.

 

문수봉을 향해 오르는 길에 거제수나무가 많이 보이더군요.

물론 경남 거제 지명과는 아무 관계는 없고 수피의 껍질이 종이처럼 벗져지는 자작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로

고로쇠 나무처럼 초봄에는 수액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곳에 오르니 같은 자작나뭇과인 사스래나무가 군락을 이루더군요.

산행을 하면서 자작나무와 거제수나무 그리고 사스래나무를 한꺼번에 만나는 경험도 독특합니다.

 

사스래나무 터널을 따라 눈길을 걷는데 어떤 분이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알고보니 신년특집으로 태백산에서 KBS '다큐멘타리 3일' 프로그램 촬영을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와 아들이 이런 저런 질문에 답변도 하고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TV 촬영을 했습니다.

물론 1월 첫째주 일요일 밤에 방영이 된다고 하는데 TV에 나올지는 알 수가 없겠지요. ㅋ

 

촬영 인터뷰를 마치고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길을 걸으니 멋진 주목나무들이 반겨줍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지만 이렇게 가운데가 텅비어있는데도

모진 추위를 견디며 푸르게 자라는 주목의 모습을 보면 길어야 백년 남짓 사는 인간이 초라하게 느껴지네요.

 

능선의 높이를 더할 수록 눈꽃 풍경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가는 눈발도 계속 내리고요.

 

아름다운 겨울 풍경 너머로 돌탑이 보이는 것을 보니 문수봉에 도착한것 같습니다.

 

문수봉(1517m)에서 바라보는 태백산 정상의 모습이 멋진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산을 오르는 내내 눈이 오는 흐린 날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잠시 파란 하늘을 보여주네요.  

 

문수봉을 지나고 소복 소복 쌓인 눈길을 따라 천제단을 향해 편안한 길을 걷습니다.

 

그나저나 최근에 희망보다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시간이었는데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속에 머물게되니 깊은 절망조차도 다 가볍기만한 바람처럼 느껴지네요.

 

후회가 꿈을 대체하면 사람은 늙어간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요. 아직은 절망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걷는 길이 비록 구름에 가려 주변 조망이 시원하게 바라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드러나는 능선에서 고마운 희망의 싹을 느껴보려합니다.

 

오늘도 길을 걸으며 품안에 안도현 시인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라는 책 한권을 담아봅니다.

 

어른들이란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존재,

그리하여 아이들이 살아갈 시간 속에 그것을 막무가내로 우겨 넣는 존재이다.

어른들이란, 우길 줄만 알지 정작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 

 

                                                   <안도현 - 어른>

 

 

최근에 세상 일을 보면 높이 날기위해 나는 방법을 배우는 조나단 리빙스턴 갈매기의 꿈보다는

항구의 썩은 물고기를 찾아다니는 갈매기들만 득실대는 그런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하는 답답한 생각도 드네요.

 

삶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삶이란 그래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꿈이랄까, 희망 같은 것 말이다.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열일곱 살이나 열 여덟 살쯤에 발생한다.

어른이란 열일곱, 열여덟 살에 대한 보충 설명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나이를 지난 후에는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갈 수 없다.

 

                                             <안도현 - 그래도 견뎌야 하는 것이 삶이다.>

 

 

눈길을 헤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오다보니 어느새 부소봉(부쇠봉)에 도착합니다.

부소봉은 소백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이 태백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하지요.

 

 다만 문수봉에서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편한 길은 부소봉을 거치는 길이 아니기에

이곳에서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희미하고 구름까지 끼여서 길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아무도 살지않는 원시 속에 머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여 비록 탁트인 조망은 없지만 눈꽃 가득한 풍경을 바라보는 아늑함만으로도 행복해지네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사랑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보다는 편한 게 사랑 아닌가.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 안도현 - 사무친다는 것 >

 

 

눈발 날리는 안개속을 걷다보니 정상 아래쪽에 있는 작은 천제단에 도착합니다.

 

지난 2년동안 아주 추운 철원 땅에서 고생하면서 군 생활을 보냈기에 이런 눈오는 곳이 별로 반갑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산을 사랑하고 즐기는 마음으로 내 뒤를 따라주는 아들이 참 고맙네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작은 천제단을 지나 조금 가파른 길을 오르니 눈 구름이 자욱한 태백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과거에 왔을 때는 사방으로 탁트인 조망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차가운 바람만이 부는 눈 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듯이

세상에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그런 것은 없겠지요. ㅎ

  

태백산은 삼국사기를 비록한 여러 기록에 신산을 섬겨 제천 의식을 하는 장소였다고 하는데

정상에 있는 천제단은 이런 제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라고 합니다.

 

이곳 정상의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장군단이 있고 남쪽으로는 조금 전에 만났던

이름없는 제단 등 모두 3기의 제단으로 구성이 되어있고요.

 

이곳 정상에서도 KBS 다큐멘터리 3일 촬영은 계속되어 저희 가족도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산과 자연의 치유의 힘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상심하고 힘든 마음들을 산에 올라와 툴툴 털어버리라고요.

그리고 인터뷰 중에 아들이 하는 말 " 군에서는 내리는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 였는데

이제 민간인이 되니 멋진 눈 풍경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ㅋㅋ"

 

인터뷰를 하느라 시간이 지체가 되어서 이제 정상에서 당골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비운의 왕인 단종을 위한 비각이 나옵니다.

단종이 죽어서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 따라 비를 건립했다고 하네요.

 

단종비각을 지나니 이번에는 망경사가 나옵니다.

망경사는 신라 진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합니다.

다만 6.25때 모든 것이 소실되어 고찰의 정취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자욱한 구름속에 바라보이는 사찰의 모습속에 태백산의 기운이 배여있음을 느낍니다.

 

입구에 자리한 용정 샘물은 삼국시대부터 태백산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물맛은 정말 시원하고 좋더군요.

 

망경사를 지나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도 좋은 포근한 눈길을 차분한 마음으로 걷습니다.

아주 오래전 오궁썰매를 타고 이 길을 내려가던 추억도 아스라하게 떠오르네요.

 

사람들은 살수록 힘들고 외롭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하루 종일 커 놓고 있는데도 외롭다고 한다.

사람들의 말이 맞다.

전화벨 소리가 없는 곳으로 피신하고 싶다. 그곳에서 외로움이라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

 

 

이 희망은 아주 간절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외로울 때는 사랑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뒤에는 외로움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랑하고 싶거든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에 빠지고 싶거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 안도현 - 사랑하고 싶거든 >

 

 

내려오는 길에 반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당골을 향해

멋진 바위가 펼쳐지는 계곡 길을 따라 걷습니다.

  

 과거에는 그냥 내려가기가 바빴는데 오늘은 마음에 여유를 주니

당골로 가는 주변 풍경도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ㅎㅎ 귀여운 곰 인형을 이곳 길가에 놔둔 이유가 무었인지 모르겠지만

곰 인형을 보니 종교나 믿음이라는 것도 무겁거나 난해한 것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늑한 눈길을 따라 조금은 어둑해지는 시간에 당골에 도착했습니다.

당초 생각보다 중간에 인터뷰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지체가 된것 같네요.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삶, 답이 없다.

 

                                < 안도현 -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

 

최근 세상 일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서다 보니 

상실감이 커지고 어찌 살아야 하는가 막막함이 가득했는데

그래도 산은 저를 위로해주고 자연의 풍경은 저를 포근하게 꼭 안아줍니다.

역설적으로 절망이 바닥이라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겠지요.

하여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가파른 산길을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심정으로

고마운 자연과 벗하며 내 앞에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가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