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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영동 갈기산 능선길 - 시원한 설경과 금강 조망을 함께하다.

by 마음풍경 2012. 12. 30.

 

영동 갈기산 능선길

 

 

소골 입구 주차장 ~ 갈기산 ~ 갈기능선 ~ 소골재 ~ 소골 ~ 주차장

(5km, 3시간 소요)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 위치한 갈기산(595m)은 능선이 말의 갈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산의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제법 스릴있는 암릉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또한 금강을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으며 천태산을 비롯한 주변 산 그리메의 풍경도 멋지게 다가오는 산입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한밭토요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하기위해

발걸음을 한밭수목원 입구로 향합니다.

 

모이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는바람에 잠시 눈쌓인 한밭수목원 근처를 산책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벽 길을 나서본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의 느낌은 늘 안개처럼 혹은 신선한 향기처럼 다가옵니다.

 

약 2년 10개월만에 과거 다니던 산악회를 다시 찾게 되었는데

문득 떠오르는 글귀가 생각이 나네요.

 

정이란 산길과 같아서

자주 가지 아니하면

수목이 우거져서 길은 없어지나니

 

사람사이의 정이란게 참으로 묘한거여서

한번 맺어진 정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쉽게 잊혀지기도 하지만

또는 그 인연때문에 다시 쉽게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ㅎ

 

산악회 버스에서 반가운 회원님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차는 눈길을 헤치고 갈기산 산행입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와본지가 2005년 10월이니 7년의 시간이 지났네요.

 

눈은 내리지 않지만 구름이 낮게 깔려있어서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산행을 시작하자 곧바로 금강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전북 장수의 뜬봉샘에서 시작한 금강이기에 아직은 따끈따끈한(?) 강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금강 발원지 : 전북 장수의 뜬봉샘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58)

 

아직 12월이지만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인지

산길 주변 풍경은 온통 새하얀 설국의 세상입니다.

 

겨울 산에 오면 늘 볼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일지는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언제 보아도 감동이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순백의 자연속을 걷다보니 최근에 읽었던 셰릴 스트레이드의 Wild(와일드)라는 책이 생각이 나네요.

 

누구나 한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번은 길을 만든다.

 

 

와일드는 캘리포니아 주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아홉 개의 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4,285km의 도보여행 길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Pacific Crest Trail)을 걸으며

작가 본인이 체험한 내용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놓은 책이지요.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일부 옮겨봅니다.

 

여행을 하며,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의 슬픈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 걸까.

아니, 어쩌면 내 육체적 고통에만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 상처 같은 건 저 멀리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으며 온 세상에서 혼자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머리 하나 둘 곳 없는 이런 광활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세상은 이전보다 더 크게도,

그리고 더 작게도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는 이 세상의 광대함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발로 걸어보니 1킬로미터가 얼마나 되는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는 법이다.

일이 어떻게 이어지고 또 일을 망치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을 피어나게 하거나 망치게 하거나 혹은 방향을 바꿔버리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잘 모른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저도 주말이면 집을 떠나 길을 걷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왜 길을 걷는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책이더군요.

물론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각자의 이유는 전부 다를터이고요.

저도 임진각에서 목포와 부산을 거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우리나라 해안선을 두발로 걷는다는 계획을 저의 버킷 리스트에 담아두었지요.

 

산악회에서 종산제를 마치고 다시 능선을 따라 오릅니다.

금강 건너편 천태산도 새하얀 모습으로 만나게 되네요.

 

금강변 오른편으로는 아담하지만 오똑한 비봉산(481.8m)도 반가이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새하얀 능선너머로는 아늑한 산 그리메의 풍경이 한없이 펼쳐집니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산 너머에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요.

산에 오면 늘 가슴이 설레이고 두근거리지요.

 

물론 산에오면 설레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변함없이 반겨주는 나무와 얼굴을 애무하듯 스쳐가는 바람의 향기도 만날 수 있지요.

 

눈길을 조심조심 밟으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갈기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악회를 따라오니 참 오랜만에 정상에서 개인 사진을 남겨봅니다.

 

당초 흐린 날이라 조망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멋진 조망은 오늘 이 산을 오기전부터 느꼈던 설레임의 원인이 무언지 알게되네요.

 

가슴을 벅차게 하는 자연과 마주하다보면 말을 잃게됩니다.

아니 말을 잃는다는 표현보다는 말로 표현이 어렵다는 말이 더욱 정확하겠지요.

 

자연에서 느끼는 몸짓들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동원해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라고 할까요.

 

여튼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란 각박한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선물입니다.

 

 정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서면서부터 본격적인 갈기 능선이 시작됩니다.

 

길 좌우로는 절벽이 이어지고 또한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이 연속이 되지만

그래도 이처럼 포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요.

 

눈쌓인 산아래 마을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보이네요.

 

때론 세찬 바람이 부는 가파른 능선길을 걸으니

마치 설악산 공룡 능선을 걷는 기분도 듭니다.

 

아찔한 능선길을 아슬 아슬하게 걷는 모습에서

우리네 삶의 모습도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자연에 머물다보면 늘 희망이 새롭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때론 절망으로인해 등에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무거울 때

그 등을 토닥토닥해주며 위로도 해주고요.

 

능선너머로 성인봉과 월영봉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성인봉에서 부터는 충남과 충북의 경계이기도 하지요.

 

갈기능선을 넘어서니 소골재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초 월영봉으로 길을 이어가려했으나 문득 눈내린 계곡의 풍경이 보고싶어서

오늘은 능선을 버리고 오른편 계곡 길로 내려섭니다.

 

역시 소박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눈길이 이어집니다.

 

눈녹은 계곡물 소리도 조용하게 제 귓가에 속삭이고요.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화려하고 멋진 사진보다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요.

 

물론 어찌 해야 그런 사진을 찍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무언가 그 길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품게 됩니다.

 

눈길을 밟으며 편안한 계곡길을 내려오니 

어느새 당초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 입구에 도착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산행과 송년회를 전부 마치고 뚜벅 뚜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반가운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그나저나 오늘 하루는 참 행복했습니다.

비록 3년만에 다시 찾아간 곳이었지만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얼굴들에서

사는 정이란게 무엇인가 하는 것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고요.

 

도종한 시인의 싯구처럼

산은 늘 저에게 그런 벗이었으며

산에서 만나는 인연 또한 그런 친구인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행복했던 하루였네요.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강물 같은
벗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