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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완주 화암사 사찰길 - 안도현 시인이 숨겨 두고픈 절집

by 마음풍경 2013. 9. 29.

 

화암사 사찰길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

 

 

화암사 입구 주차장 ~ 계곡 ~ 철계단 ~ 화암사 ~ 불명산(480m) ~ 화암사 ~ 주차장

(약 4km, 3시간 소요/사찰 구경 및 점심 포함)

 

 

전북 완주군에 있는 화암사(花巖寺)는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으로

깊은 계곡과 폭포를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숨어있는 고찰입니다.

또한 안도현 시인의 글처럼 꼭꼭 숨겨두고 싶은  잘 늙어가는 절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가진 국보 316호인 극락전을 만날 수 있으며

절을 감싸고 있는 불명산(佛明山) 산행까지 겸할수 있는 곳입니다.

 

 

 

워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찰이라 그런지 차를 가지고도 화암사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하여 내비게이션에 "완주 화암사"를 입력하여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네요.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용복으로 들어서서 좁은 길을 따라 가니 화암사 입구 주차장이 나옵니다.

근데 찾아오는 고생을 한 만큼 입구가 무척 근사하지요.

 

누구나 첫 만남, 첫 인상이 참 중요한데 화암사와의 첫 인상도 기대한 대로 무척이나 멋집니다.

특히 부드러운 느낌의 글씨체가 이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곳 화암사를 알게 된 것은 안도현 시인의 시였습니다.

그 시을 읽고 대체 시인이 꼭꼭 숨겨두며 사랑하고픈 절이 어떤지 알고 싶기도 했고요.

이제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사랑" 시를 생각하며 화암사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길을 걸어갑니다.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 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룡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룡속에 주출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작은 편백나무 숲길도 지나고 비가 많이 오면 다닐수 없을 것 같은

사방이 바위로 둘러쌓인 좁은 계곡길도 지나면서 이제 147개의 철계단을 따라 오릅니다.

 

철계단 중간에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사랑"이라는 시가 걸려있어서 다시 찬찬히 읽어봅니다.

 

철계단에는 곳곳에 예쁜 그림과 장식이 되어있는데

2008년에 완주문화의 집 미술반 아이들이 이야기가 있는 계단 꾸미기의 일환으로 설치한 거라합니다.

 

철계단을 지나니 드디어 화엄사 우화루가 나옵니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약 0.7km에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실상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일반적인 사찰길이 아니어서인지 꽤 긴 거리를 온 기분이네요.

 

경내로 들어서기전에 먼저 보물 662호인 화암사 우화루를 만나게됩니다.

현재 건물은 광해군 3년인 1611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비록 주변 건물 복원 공사로 인해 어수선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그 정갈함과 순수함에 반하게 되네요.

 

이 절은 일주문도 없고 사천왕상도 없지만 우화루가 화암사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데

마치 구례 화엄사의 보제루와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구례 화엄사 암자길 - 지장암에서 연기암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855)

 

우화루 옆 계단을 올라서니 입구 반대편으로 우화루의 내부가 나옵니다.

천장은 연등 천장이며 대들보와 고주 위에는 화반 형식의 포작을 짜서 넣어 무척이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네요.

 

절 입구에서보면 2층 누각이지만 경내에서 보면 단층건물로 보입니다.

주변의 경사진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선인들의 지혜가 뛰어나지요.

 

기둥에 걸려있는 거대한 목탁이 무척이나 이색적으로 보입니다.

 

우화루의 소박한 모습처럼 창문너머 보이는 풍경 또한 무척이나 편안하게 다가오네요.

주황색 감을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에서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겨옵니다.

 

이제 우화루를 구경하고 나서 우화루와 경내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극락전을 만납니다.

조선 선조 38년인 1605년에 지은 것으로 당초 보물 663호에서 2011년에 국보 316로 승격이 되었으며

화암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주목을 받게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이 된 이유는 바로 이 하양(下昻) 공포 양식에 있습니다.

하앙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낀 긴 목재로 처마를 길게 하기 위한 백제 시대의 양식으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하앙식 공포를 채택하다보니 극락적이라는 편액도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고

글자마다 따로 따로 공포 사이에 위치하게 되는 것도 다른 사찰 건물에서는 보지 못하는 특이함입니다.

또한 하양 사이로 그림이 그려진 것 또한 길어진 처마로 인한 공간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포식 공포위로 용머리를 한 하앙이 있어서 처마가 더 길어지게 되니 그늘 또한 넉넉합니다.

하앙식 방식이 옛날 백제계 건축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화암사 건물이 조선시대에 중창이 되었지만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진덕여왕 3년인 649년이라고 합니다.

 

 이제 극락전을 휘돌아 건물 뒤편으로 발걸음을 하는데 산사의 정갈함이 느껴집니다.

 

극락전 뒷편을 보니 특이하게도 하앙이 앞쪽과는 다르게 용머리가 아니라

 그냥 기둥을 뽀족하게 다듬어 놓은 모습입니다.

같은 주제라고 해도 디자인의 다양성을 통해 건물의 미학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 같네요.

 

화암사는 아주 작은 절집이지만 사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여느 고찰 못지 않습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것 같네요.

 

잠시 사찰 위 언덕에 올라 화암사를 바라봅니다.

우화루와 극락전은 남북으로 마주하고, 불명당과 적묵당은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입구(口)자형이네요.

자연 지형을 해치지 않고 좁은 공간에 사찰을 만들어야 하는 고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화루 앞 은행나무 옆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들머리를 따라 불명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조금은 가파른 길을 따라 조릿대 숲도 지나게 됩니다.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는 일상적인 느낌의 아늑한 숲길도 지나고요.

 

화암사에서 30여분 산길을 오르니 불명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에서 화엄사를 구경하고 이곳까지 약 1.7km에 2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사찰 구경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것 같습니다.

 

불명산 정상에서 간단하게 빵으로 식사를 하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정상 주변이 바위로 되어서인지 약간의 밧줄 길도 있더군요.

물론 이 불명산 능선 길은 신금남정맥 구간이기도 합니다.

 

불명산 능선은 대부분 나무로 가려있어서 주변 조망을 감상할 조망처가 거의 없지만

건너편 천등산과 멀리 대둔산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를 겨우 찾아서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지금 이 풍경도 아름답지만 왼편으로 시야가 좀 더 트인다면 정말 멋진 풍광이 펼쳐질것 같은데

시야가 좀 더 트이는 겨울에 다시 찾아와서 멋진 풍경을 꼭 담아보고 싶습니다.

 

대둔산쪽에서 천등산을 보면 일반적인 육산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불명산에서 바라보니

멋진 암릉 풍경이 펼쳐지는 멋진 산이며 또한 산 능선이 아래 옥배마을을 감싸듯이 이어지는 능선미가 무척이나 뛰어납니다.

마치 새 한마리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불명산은 조망에 인색한 산이라 남쪽 방향의 조망처도 겨우 겨우 찾았습니다. ㅎ

산 그리메가 그려지는 산 능선의 모습이 아늑하게 다가오네요.

 

오른편으로는 신금남정맥이 이어지는 미륵산 암릉의 모습도 절경으로 바라보입니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이제 화암사 방향 이정표를 따라 왼편 길로 내려섭니다.

 

숲길을 빠져나오니 포장이 된 임도 길을 만나게 되고요.

화암사 입구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화암사로 넘어 올 수 있는 포장길입니다.

 

오늘 걸었던 능선의 모습도 참 풍요롭게 바라보입니다.

단풍이 붉게 물들면 참 곱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임도길을 따라 내려서니 돌담의 풍경이 아름다운 화암사가 나옵니다.

 

대문이 열려있어서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요사채로 잠시 발걸음을 하네요.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진짜 시골 내음이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이곳 요사채 마당에서 꽃과 나비는 제 카메라에 담겨집니다.

과거에는 호랑나비를 보기가 참 어려웠는데 요즘은 참 자주 보게되네요.

 

화암사 우화루 입구를 지나 주차장으로 되돌아 가는데

오른편으로 조그만 길 흔적이 있어서 휘돌아 가니

철 계단이 없던 시절 다니던 화암사 옛길을 만나게 됩니다.

 

바위 절벽 지대를 휘돌아 이어지는 길의 풍경도 참 운치있습니다.

안그래도 같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조금 그랬는데 이처럼 옛길을 걸어보는 행운도 있는 것 같네요.

 

돌계단을 지나 내려서는 길이 바위들을 지나는 조금은 험한 길인데

이 길이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지 주변 바위에 비룡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위 지대를 내려서니 다시 철계단 입구가 나옵니다.

화암사 옛길을 걸어나오는 행운을 얻다니 보너스를 얻은 기분이네요.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비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 잘 늙은 절, 화암사 중에서- 안도현>

 

 

계곡을 따라 올랐던 길을 내려오니 다시 화암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를 읽고 꼭 한번 오고싶었던 절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이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정말 시인의 글처럼 잘 늙어가는 절이자 사랑을 하며 꼭꼭 숨겨놓고픈 그런 곳이네요.

늦 가을이나 겨울에 꼭 다시 찾고 싶다는 약속을 하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오늘은 행운이 많은 날인지 화암사를 빠져나와 17번 국도가 다니는 용복 마을로 나오니

천변이 온통 코스모스의 물결로 화사합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정취는 정말 가을이 내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과거에 다녀온 하동 북천역의 코스모스 풍경도 떠오르네요.

(하동 북천역 코스모스 길 - 코스모스 축제장에서 이병주 문학관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63)

 

수많은 꽃들이 마치 나를 향해 방긋 웃는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ㅎ

 

 며칠전 세종시 영평사에 가서 수많은 구절초 꽃 향기에 빠져서 참 행복했는데

오늘 이곳에서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의 색감에 푹 빠져봅니다.

(세종 영평사 구절초 길 - 구절초 가을 향기에 빠지다.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053)

 

무작정 자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행복이자 고마운 행운이네요.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싱그런 가을 바람 부는 뚝방에 서서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꾸역꾸역 밀려옵니다.

그리움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그리움이 없으면 기다림도 없겠지요.

늘 그런 그리움으로 자연을 향해 길을 걸어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