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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35) - 가을비 내린 뒤 걷는 단풍 길

by 마음풍경 2014. 11. 2.

 

 

내가 사는 동네올레길 35번째

 

[가을비 내린 뒤 걷는 동네 단풍 길]

 

 

늦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후 울긋 불긋한 단풍 풍경이 가득한 동네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에는 화려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쓸쓸함이 모두 담겨져 있었고

고독, 인연, 그리고 사랑 또한 함께 물들어 있었네요.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가을비가 내리고 흐린 하늘이었는데

일요일 오후가 되니 햇살이 비추이기에 카메라를 들고 잠시 동네 마실길을 나서봅니다.

 

가을비에 젖어 있는 낙엽을 보면

늙어가는 내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져서인지

늘 측은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지요.

 

그나저나 올해 단풍은 작년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채 피지 않은 나무가 있는 가 하면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도 있어

만추의 화려함이 가득하지는 않네요.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32)] 아름다운 만추 풍경 길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072)

 

비록 단풍이 작년만은 못해도 참 곱고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은 주위에 가득합니다.

 

여행이란 신발을 다른 곳에 놔두는 것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때론 그 신발을 두는 곳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늘 익숙한 내가 사는 가까이에도 있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내 마음속에 그 신발의 흔적을 남길 수도 있고요.

 

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 놓는 은행나무에게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때 결별하는 은행나무 밑에서 이 음악이 완성되면

어긋나는 우리의 운명도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러나 나는 파멸보다 먼저 가을이 찾아오고

노을이 아직도 내 한쪽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산의 나무들과 내게 이별이 찾아온 걸 고맙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서서 이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를 경배하는 오늘은

이 산의 모든 나무들이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

 

<도종환 - '황홀한 결별' 중에서 일부 발췌>

 

 

우주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하늘로 향해 있는

위성 안테나도 오늘은 단풍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길을 걷는 모녀의 뒷모습에서

가을에는 정겨움과 포근함도 함께 담겨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을이면 이 길은 은행 잎으로 노란 양탄자를 깐것 같은 포근한 길로 변하지요.

 

탄동천을 따라 걷는 동네 길은 사계절 언제나 곱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선사합니다.

 

매년 봄이면 새하얀 벚꽃이 가득 피어서 화려한 꽃의 정취가 가득한 곳인데

가을이 되니 이제는 붉고 화려한 단풍으로 단장을 하고 반겨주고요.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34) - 비 내리는 봄꽃 길을 걷다.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104)

 

비가 와서인지 탄동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고운 노래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낙엽이 떨어진 의자에 앉아 아늑하게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저물어 가는 가을의 햇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행복은 아닐까요.

 

이제 다시 집을 향해 되돌아 갑니다.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서인지 아주 먼길을 온 기분이 드네요.

 

가을이 함께 찾아와

가을이 떠난 후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 있어

겨울이면 장작불처럼

운명을 걸고 함께 불타오르다

 

 

봄이면 꽃망울처럼

터질 듯 팍팍 피어오르다

한번만 더, 여름이면 태양처럼

시뻘겋게 애태우며 달아오르다

 

 

가을이,

또 다른 가을이 오면

단풍 고운 키 큰 나무 아래 앉아

하루쯤 사랑으로 물든 얼굴

눈 한번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마침내

낙엽처럼 흩어져 떠나가도 서럽지 않을

천 년쯤 그리움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질

붉은 가을 사랑 하나

가을아 가을아 보내어 다오

 

< 양광모 - 가을날의 기도 >

 

 

가을이면 그리움 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지는 붉디 붉은 사랑이 그리워지는 걸까요.

하긴 겨울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단풍처럼 불타는 그리움 하나 가슴에 담아야 하나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절이 떠나가면 그 그리움도

바람에 실려 정처없는 하늘로 흘러가겠지요.

 

계절은 늘 떠나가고 또 변함없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네 삶에서도 인연의 굴레는 떠남과 만남을 반복합니다.

 

꽉 차게 살자. 절대 고독을 견디는 것, 그것은 가을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절대 고독을 견디는 자에게 절대 자유가 온다.

저 잘 익어 떨어지는 씨앗을 보아라.

완전한 단절이 완전한 자유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완전히 끊어, 집착하지 않는 삶이 꽉 차게 사는 삶이다.

저 숲길처럼, 외로움을 혼자 고스란히 견디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이다.

 

< 유용주 시문집 -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에서 발췌>

 

오늘도 동네 길을 걸으면서 계절이 주는 삶의 고독을 되뇌이게 되고

또 늘 상념속에 떠도는 인연, 사랑,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