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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지리산 천왕봉 설산길 - 미지의 설국에 머물다.

by 마음풍경 2007. 12. 31.

 

지리산 천왕봉 설산길

 

 

백무동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법계사 ~ 중산fl

(약 15km, 6시간 30분 소요)

 

 

2007년 마지막 산행으로  지리산을 갑니다.

남도쪽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

혹시 산행통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안고요.

여하튼 아침에 이곳 대전에도 눈이 살포시 내렸습니다.

대전 출발 전 기대하지 않은 풍경을 보니

오늘 눈꽃 산행의 기대감도 조금 생기네요.

 

10시경에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날이 상당히 춥더군요.

 

산 능선너머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모습을 보니

오늘 산행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하튼 산행을 하더라도 오늘은

바람을 무척이나 많이 맞는 산행이 될것 같네요.

 

하지만 얄밉게도 건너편 하늘은

파란 하늘을 잠시 보여주고요.

오늘 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꽃 핀 풍경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산행 내내 그러지 못했지요.

 

백무교를 넘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다행히 산행 통제는 하지 않더군요.

 

세석과 장터목의 갈림길..

한신계곡의 겨울 정취도 좋을거라 생각하며

왼편으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반겨주는 것은 눈보라네요. ㅎㅎ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눈을 뜨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계곡 깊숙히 들어오니 바람도 잔잔해지고

내 몸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만 들립니다.

 

누군가 큰 소망을 기대한 모양이죠.

소망의 돌들이 제법 크지요. ㅎㅎ

 

40여분 산행을 하니 하동바위에 도착합니다.

 

미끄러운 철다리도 지나고요.

 

생각보다 이곳에도 눈이 많이 왔네요.

남원쪽에서 산행을 시작했더라면 오늘 지리산 산행을 하지 못할뻔 했는데..

 

눈덮힌 겨울 산에도 봄 새싹은 움트고 있네요. 

 

참샘에 들려 잠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입니다.  

 

바람에 쓸려가지 않은 낙옆 하나..

쓸쓸히 뒹구는 낙옆보다는 나아보이네요.

그래도 편해보여요.

 

잠시 파란 하늘을 다시 보고요.  

 

바람때문에 날은 추웠지만

눈 쌓인 한적한 산길을 12월 30일날 걷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풍성한 눈 풍경을 보게됩니다.

 

마른 낙옆위로 하얀 옷을 입고 있는 풍경들..

 

 

그런 풍경을 보다보니 어느새 소지봉을 지납니다.

벌써 1시간 30분 산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힘들지가 않네요.

어느곳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좋은 풍경이 이어지니요.

 

해발 천미터를 훨씬 넘어서인지

주변 봉우리는 온통 눈꽃 세상입니다.

 

설국의 세상에 와있는 기분

 

가지 가지에 핀 눈꽃들..

 

그런 눈길을 홀로 걷는 기분에서

산다는 것, 홀로 산다는 것이

어떤가 하는 느낌도 새삼 드네요.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잠시 착각을 합니다.

세상은 흑과 백만이 있는 세상이 아닐까 하고요. ㅎㅎ

 

 

봄에는 꽃들로 좋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단순한 눈꽃 풍경으로..

이러니 우리나라의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요.

 

너무나 명료한 느낌에 어떤 말로 설명을 해야할지 망설여집니다.

 

 

발에 밟히는 눈의 느낌이 참 좋습니다.

왠지 눈싸움 하기에 좋은 눈이라는 생각이..  

 

올초 1월 6일 첫 산행을 강원 감악산에서 했는데

그날도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눈산행으로 시작해서 눈 산행으로 끝내게 됩니다.

 

잠시동안만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하늘이 조금 밉네요. ㅎㅎ

눈꽃핀 파란 하늘이면 더욱 좋았을텐데요.

 

그래도 이만한 풍경이 어딥니까.

12시경에 망바위를 지납니다.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고 정겨운 모습들이지요.

 

 

  

나무가지 하나 하나에 살포시 쌓인 눈들이

만들어 주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 

산행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어느 판타지 설국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요.

 

 

 

정말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하기에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고요.

 

 

 

이제 제법 올라온 모양입니다.

멋진 눈꽃 옷을 입고 있는 나무들도 자주 눈에 보이네요.  

 

그나저나 이런 눈속을 한참 걷다보니

저도 하얀 모습으로 변해가는것 같습니다. 

하긴 내리는 눈에 하얀 모습이긴 하네요.

 

 

이제 가파른 길보다는 편안 길이 이어지는 걸보니

장터목 대피소도 그리 멀지 않은것 같습니다.

 

주변 나무들을 통해 겨울 패션쇼를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산행한지 2시간 30분인 12시 30분경에 장터목에 도착합니다.

대피소도 하얀 눈으로 새 단장을 했네요. ㅎㅎ

 

사람들로 인사인해인 취사장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바람부는 날에 지리산에 오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하긴 저도 그 사람중에 한명이니..

그나저나 워낙 춥고 바람이 세서 우체통에 넣을 편지한장 쓸 여유가 없네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12시 50분경에 제석봉을 향해 다시 산행을 이어갑니다.

 

이정표 또한 회색인 지리산..

 

흑! 장터목 대피소에서 처음 장착한 아이젠이 말썽을 피워

그냥 아이젠 없이 눈길을 걷습니다.

그래도 눈이 계속 내려서인지 다행히 그리 미끄럽지는 않네요.

 

세찬 바람에 눈꽃이 되어버린 나무들...

눈옷이 몸을 따스하게 해주겠지요.

 

그리곤 봄이 되면 또 더시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나겠지요.

 

능선길을 오르며 맞는 눈보라는 어찌나 세던지

지리산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걷는 기분이 들더군요.

 

지난 여름경에 왔던 제석봉의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계절의 변화 

 

자연이 만들어 준 눈꽃 세상을 구경하며 세찬 바람부는 능선길을 이어갑니다.

 

 

 

바위들도 왠지 잠자고 있는 듯 고요합니다.

 

어찌보면 평소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다가오는 바위 모습이지만

눈이 쌓여 있는 풍경은 새로운 정취를 만들어 주지요.

 

여하튼 올 겨울들어 눈다운 눈을 보지 못하다가

올해가 끝나가는 시간에서야  많은 눈을 보게되네요.

 

 

 

세찬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ㅎㅎ

 

 

간간히 만나는 산객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행복한 미소가 보이네요.  

 

 

온통 하얀 세상..

그런 길을 걷다보니 왠지 모든게 단순해집니다.

 

지난 일년동안의 앙금들이 전부 비워지는 느낌이고요.

 

 

바람을 많이 맞아서인지 발도 시럽고 손도 많이 시럽네요.

어디만큼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도 알수 없는 시간.

그래서인지 익숙한 모습의 통천문이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통천문을 지나니 눈보라는 더욱 세차집니다.

 

평소에는 그저 쉽게만 오르는 지리산이지만

지리산 정상을 오르기가 항상 쉬운것 만은 아니지요.

 

 

이제 정상이 바로 앞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옮깁니다.

힘은 들지만 묘한 즐거움이 몸을 감싸는 시간이지요.

 

눈보라속에 바라본 눈꽃 세상은 꿈결같은 세상이라고 할까요.

 

 

이제 저 눈보라 속으로 정상이 보이네요.

 

2시경에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올해만에도 벌써 3번인가 이곳을 왔는데

눈보라 속에 올라서인지 이 정상석이 더욱 각별합니다.

 

이 고생을 하며 이곳을 오르는 묘미..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겨울산의 묘미이겠지요.

 

이제 중산리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그나저나 아이젠도 없는데 가파른 길이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하지만 눈이 많이 왔고 또 내려서일까요.

가파른 길이지만 그냥 내려갈만 하네요.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눈이 없다고 하지요.

킬리만자로 정상에도 눈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고요.

하지만 아직 지리산은 겨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천왕샘을 지나는데 눈발이 더욱 거세집니다.

 

세찬 바람도 여전히 함께하고요.

 

 

누구도 밟지 않은 곳..

그대로 아름답게 남겨두고 싶네요.

 

오늘은 오르는 길보다는 내려서는 길이 더욱 시간이 걸립니다. ㅎㅎ

 

 

눈꽃들이 나무잎을 대신하는 걸까요.

 

만약 단풍이 하얗게 피어오른다면 이런 모습이겠지요. ㅎㅎ

 

 눈쌓인 개선문도 지납니다.

 

그리곤 새하얀 눈길을 걸어갑니다.

정말 매혹적인 길이지요.

이어폰을 통해 이글스의 sad cafe를 듣습니다.

세상에 이런 낭만이 어디있을까요.

살아있다는 것이 이처럼 황홀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낭만ㄷ ㅗ잠시고요. ㅎㅎ

여전히 세찬 눈보라를 맞기도 하고요.

볼어오는 바람에 눈을 뜨기가 어렵습니다.

 

3시경에 법계사에 도착합니다.

일주문이 새롭게 바뀌었네요.

 

로타리 대피소도 들리고요.

 

깨진 알모양의 망바위에도 들립니다.

그리고 보니 오늘 산행에서 망바위를 2번 만나네요.

백무동에서 오르는 길에도 망바위가 있는데..

매번 다녀도 모르다가 오늘에야 처음 알았네요.

 

중산리에 가까와지니 눈발도 약해집니다.

4시경 칼바위를 만나니 오늘 산행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곳 중산리는 백무동쪽에 비하면 눈이 얼마 오지 않은것 같네요.

 

그래도 살포시 내린 계곡 풍경이 시선을 이끕니다.

 

중산리 위쪽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기위해서는

아래 대형 주차장으로 2km 거리를 더 걸어야 합니다.

다행히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눈길에도 편하게 걸을 수 있네요.

 

ㅎㅎ 중간에 지름길로 가고요.  

 

여하튼 이곳도 등뒤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눈들이 쌓이지 못하고 길에 이리저리 뒹구네요  

 

4시 40분경에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약 15km 가까운 거리를 걷는데

6시간 40여분이 걸린거네요.  

 

2007년 마지막 산행을 지리산에서

세찬 눈보라와 화려한 눈꽃 풍경과 함께 보냅니다.

도시에 내리는 눈들은 이내 스러지기에

마치 인간의 유한한 삶처럼 느껴지는데

산에서 만나는 눈들은 깊이 쌓이기에

그래도 넉넉한 삶의 여유를 배우게 됩니다.

 

박두규 시인의 지리산이라는 책을 펼쳐봅니다.

글중에서 오늘은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아무래도 올 한해가 가고 있다는 느낌때문일까요.

 

내가 무엇인가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나의 것이 아니다.

사는 동안 얻은 재물이며 지식이며 깨달음이며 사랑까지도

산이, 계곡이며 나무들 그리고 지빠귀며 비비추 같은 꽃들까지

많은 것을 품었어도

그것은 산의 것이 아니듯

내가 품고 있는 모든것도 내 것이 아니다.

돌려줘야 할 누군가의 것이다.

 

산에서 느끼는 비움의 의미

2007년 가슴에 담았던 것들을 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지리산 산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