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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안개 가득한 덕유산 능선길을 걷다.

by 마음풍경 2010. 8. 16.

 

덕유산

 

설천봉 ~ 향적봉 ~ 중봉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설천봉(약 6km)

 

올 여름은 장마도 진작 끝났는데 비가 자주 내립니다.

오늘 대둘 몇몇분들과 당초에는 안성계곡을 따라 덕유산 동업령으로 오르려했으나

어제 비가 많이 오고 오늘도 지역에 따라 많은 비가 온다고 해서

무주리조트에서 곤도라를 타고 덕유산에 올라

편안한 능선 길을 걷기로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산행이 아닌 그냥 좋은 능선 길 걷기가 되네요. 

 

무주리조트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관광 곤도라는 분주하게 사람을 실어나릅니다.

 

녹색 잔디밭에 진한 색감의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반겨주고요.

 

곤도라는 진한 구름속으로 저를 안내하네요.

 

곤도라로 약 1,500미터 높이의 설천봉에 도착해서 산행이 아닌 숲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그나저나 곤도라를 타고 이곳으로 와본적도 꽤 오래된것 같네요.

물론 흰눈으로 상고대를 이룬 추운 겨울이었고요.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온통 구름 안개에 가려있습니다.

 

물론 향적봉도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이고요.

정상석만 겨우 보이네요.

 

이제 중봉을 향해 안개 가득한 능선 길을 걷습니다.

 

향적봉 대피소도 희미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안개 자욱한 숲길을 걷는 기분은 항상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촉촉한 숲길을 따라 이어가면 저 안개속 너머에는 또 어떤 모습이 저를 반겨줄까요.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주목의 담백한 실루엣을 봅니다.

 

덕유산은 주로 겨울에만 오는지라 눈에 익숙한 새하얀 눈이 덮힌 주목의 모습과는

또 다른 깊이 있는 아름다운 정취를 보여주네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도 보고요.

 

그 옆으로 참 오래된 주목나무 한그루 서 있습니다.

이들은 참 오랜세월동안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로 존재하겠지요.

겨울 산행시 사진작가의 촬영 포인트이기도 하지요.

 

안개 낀 덕유산 능선 길이 이처럼 아름다울지는 몰랐습니다.

너무나 편안한 길이고요.

 

 

마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주변 풍경도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안개 터널을 이어가며 가다보니 어느새 중봉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의 바람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여름이나 겨울이나 부는 바람은 다를바가 없을텐데

그 겨울 춥기만 한 이 바람이 오늘은 아주 시원하게 느껴지니

상대적이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됩니다.

 

중봉을 내려서는 길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능선의 풍경이 참으로 멋진데

오늘은 안개때문에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합니다.

 

세상사 다 그런거겠지요.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버릴줄도 알아야 한다는것..

다 가질려고 하면 욕심이 되고 집착이 된다는 것..

 

송계 삼거리 봉우리로 바람을 따라 구름이 넘어가고 흘러가네요.

 

정말 꿈속같은 길을 걸어서인지 참 편한 발걸음으로 송계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그리 긴 거리가 아니기에 여느 산행때처럼 걸으면 아주 짧은 시간에 올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산행이 아니고 입산이라고 할까요.

그런 기분으로 와서인지 몸과 마음은 불어오는 바람처럼 참 가볍습니다.

 

송계 삼거리에서 되돌아가는데

덕유산의 대표 여름꽃인 원추리꽃을 만났습니다.

여름이면 이곳 능선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인데

이처럼 시들어가고 보기도 힘드니

이제 덕유산의 올 여름도 지나가나 봅니다.

 

ㅎㅎ 멋진 남자의 옆 모습처럼 보이지 않나요.

과거 여수 앞 사도에서 본 거대한 얼굴 바위가 생각이 납니다.

 

김용택 시인은 "그리운 것은 산 뒤에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 그리움이 저 안개속에 있는것 같습니다.

 

그 안개속으로 스며들면 또 외로움도 살짝 얼굴을 보이고요.

 

어느 시인은 골목 귀퉁이에 외로움이 있다고도 하는데

오늘은 비어있는 주목 나무 구멍 사이에도 있고

 

안개 자욱한 촉촉한 숲길 사이에도 있나봅니다.

 

안개 자욱한 산길을 걸으며 떠오르는 그리움과 외로움..

오늘은 그냥 그 정취속으로 스며들고만 싶네요.  

 

 

 

그나저나 이곳 덕유산도 이제 조금씩 가을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마치 풀빠진 차분함이라고 할까요.

 

안개속 느낌이 너무나 좋아 정상에서 참 오랜만에 개인 사진도 한장 찍어봅니다. ㅎ

  

향적봉을 지나 이제 설천봉을 향해 되돌아 갑니다.

 

걸어왔던 길이지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오던 길과 가는 길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지요.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래서 사는게 참 쉽지가 않구나 생각도 해봅니다.

 

뒤돌아 서서 안개 자욱한 향적봉 정상을 바라봅니다.

구름이 넘나드는 풍경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자연속에서는 생각의 비어있음도 황홀함이네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수많은 길 위에서

꽃들은 우리와의 인연을 기다리며

한 송이 꽃잎들로 피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그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우리가 그 꽃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이 어떻게 한 생을 피고 지어 살다가

한 알의 열매로 영글어 자라는지를,

그 자연의 신비와 우수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최인호의 인연 중에서>

 

 

아무리 사소한 거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은 늘 깨닫고 있어야지요.

 

다시 설천봉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 안개는 여전하고요.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안개속 정취있는 산길을 걸어보았습니다.

마치 마법과 같은 나라에 잠시 다녀온 느낌이고요. ㅎㅎ

 

늘상 힘들게 낑낑대며 걸어야만 하는게 산행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삶의 악착스러움을 포기하면

몸도 마음도 편하게 다녀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오늘은 덕유산 산행이 아니라 입산이었고

힘든 산길이 아니라 아름다운 숲길이었나 봅니다.

 

우연하게 보게된 네잎 클로바처럼

늘 행운과 행복만이 가득한 그런 시간만 있었으면 하고 소망해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