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⑦] 한밭수목원으로 이어지는 갑천길

by 마음풍경 2010. 9. 13.


2010. 9. 11(토)

 

 

이제 백로도 지나고 여름이 다 간것 같은데도 아직도 비가 참 많이 옵니다.

원래 초가을인 요즘은 비 보다는 햇살이 많아야 곡식도 여물고 과일도 맛이 깊어질텐데요.  

 오늘 몇몇 분들과 가까운 곳 걷기를 하려했으나 새벽부터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취소를 하고

집에 있다보니 오후에는 비도 오지 않고 걸을만 하더군요.

하여 꿩대신 닭인가요. ㅎㅎ 동네 올레 길을 오랜만에 다시 걷습니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활짝 핀 무궁화가 반겨주네요.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긴 하나 요즘은 길거리에서 자주 보기가 참 힘들지요.

 

여전히 걷기에 매혹적인 연구단지 운동장 옆길을 지나 갑천으로 향합니다.

 

보도 블럭 좁은 사이로 자라는 이끼의 모습을 보며

보잘것 없이 보이는 생명체라고 해도

삶의 의미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멋진 안테나가 많은 항공우주연구원 입구 길도 지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옆으로 차가 지나다니는 큰길인데도

숲이 우거진 산책길이 참 많습니다.

 

카이스트를 지나 갑천으로 내려섭니다.

멀리 계족산도 보이고 시원한 풍경이 확 등장하는 느낌이지요.

 

ㅎㅎ 갑천에 카누를 띄운다.

어느 외국분이 아이들과 이곳에서 카누를 타려나 보네요.

 

몇일동안 비가 많이 와서인지 흐르는 물살 또한 세차게 흐르네요.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제 발걸음도 함께 따라갑니다.  

 

오늘은 새하얀 구름보다는 대덕대교 너머 회색빛 구름이 무척이나 분위기 있게 느껴집니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엑스포 다리도 이제 지척입니다.

 

당초 갑천을 따라 전민동으로 갈까 생각했으나 미리 정해놓은 길이 아니기에

엑스포 다리를 건너 한밭수목원으로 가고 싶어지네요.

 

한빛탑도 참 오랜만에 봅니다.

 

엑스포 다리에 견우직녀 다리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네요.

 

저녁에 와서 조명이 켜진 야경을 봐도 아름답겠지요.

 

엑스포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시원하고 불어오는 바람도 참 시원합니다.

다만 갑천 주변 공사로 인해 마치 지난번 여주 여강 길을 걸을 때 봤던

4대강 공사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은 씁쓸해집니다.

물론 갑천이 4대강은 아니지만 이곳도 4대강 공사의 일환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장대하게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멀리 계룡산 주변 능선도 보이고 우산봉 갑하산 능선도 바라보이네요.

 

 서편 능선만 보면 계족산이 서운하겠지요.

동편 풍경도 늘 익숙한 친구처럼 참 좋습니다.

 

 엑스포 다리를 건너니 오른편으로 작은 산책로가 꾸며져 있네요.

 

나무데크로 만들어져 있어 걷는 느낌도 참 좋고요.

 

ㅎㅎ 근데 이 풍경을 보고 왠지 입가에 미소를 짓게되네요.

 

아마도 피노키오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 라는 시를 설명하고

이를 진지한 모습으로 듣고 있는 고양이와 곰의 모습이 참 귀엽고 정겹습니다. ㅎㅎ

 

 길을 조금 더 이어가니 예쁜 풍차도 있네요.

지난주 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서 본 풍차도 생각나고요.

 

풍차있는 곳에서 되돌아 나와 근처에 있는 한밭수목원으로 갑니다.

한밭 수목원은 거의 상시 개방된 곳이라 출입구가 여러곳이 있지요.

다만 출입구마다 전체 배치도가 있으면 이 길을 걷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소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당초 이 소나무들의 고향은 칠갑산이었네요.

과거 대청호가 생겨서 고향을 잃은 실향민처럼

이 나무들도 그러한가 봅니다.

 

도심 한복판에 소나무 숲을 만나니 기분이 묘하네요. ㅎㅎ

소나무 향기가 가득 배여있는 길이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줍니다.

 

 한밭수목원은 다양한 나무와 야생화들이 많습니다.

옆에 이름표가 있어 하나 하나 나무의 이름을 아는 재미도 좋지요.

좀작살나무의 자주색 열매입니다.

 

두메부추꽃 이고요.

 

ㅎㅎ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가 하나가 아니었네요.

 

흙길을 따라 다양한 색깔, 다양한 모습의 꽃들을 만나게 되네요.

 

우리 사는 세상에 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자연의 길을 따라 걷다가 눈에 익숙한 꽃을 만나거나 새로운 꽃을 만나면 얼마나 기쁜데요.

 

늘 옆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듯이

한밭수목원 근처를 자주 지나다녔지만

이곳을 들어와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네요.

근데 생각보다 참 좋습니다.

 

참 화사한 느낌이어서 한참을 바라봤는데

"큰 꿩의 비름"이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한밭 수목원을 갈림길이 많아 마치 미로찾기 같은 느낌도 드네요. ㅎㅎ

 

잔디광장 옆으로

오래된 팽나무 두그루가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사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수목원 길을 걷는 주변 풍경이 너무나 좋아서 마치 놀이공원에 온 어린아이 같은 심정입니다.  

 

중심 산책로를 걷다가 습지원 방향으로 길을 옮겨봅니다.  

 

가는 길에는 물레방아도 있고요.

 

물레방아 주변에 배롱나무 꽃도 피고 비비추도 피어있습니다.

 

물레방아를 지나니 습지원이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연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징검다리도 있네요.

 

 다만 여름이 지나서인지 연꽃의 풍경을 볼 수는 없어 아쉽습니다.

 

뒤늦게 피고 있는 한송이 연꽃이 귀하게만 보이니

가을의 계절이 오긴오나 보네요.

 

앞으로는 연꽃을 보기위해서 먼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좋은 곳을 두고도 몰랐었으니요.

 

 습지원을 지나 이제 한밭수목원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갑천 길을 걸어서 되돌아 가야지요.

 

이곳에 올 때는 갑천 북쪽 길을 걸었다면 이번에는 남쪽 길을 걷습니다.

 

이왕 국가 세금 들여서 만드는 사업인데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깔끔하게만 보이는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되지 않길 바래봅니다.

 

이제 강을 거슬러 걷습니다.

문득 배낭에 담아온 시집이 있어 강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읽어보네요.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안도현 - 구월이 오면 >

 

 

시 한편을 읽고나니 마음이 참 가볍고 걷는 발걸음 또한 가벼워집니다.

당초 돌다리를 건너 바로 갑천을 건너려했으나 비가 많이 와서 돌다리가 있는 2군데 전부 건널 수가 없어

한참을 더 걸어서 내려가고 있는데도요. ㅎㅎ

 

갑자기 비가 오네요.

하여 우산도 쓰고 카메라도 들고 손이 바빠집니다. ㅋ

 

 ㅎㅎ 결국은 유림공원까지 와서 갑천을 건너가게 됩니다.

 

유림공원 입구 길을 따라 이정표 안내대로 "천천히" 걷습니다.

 

회색빛 하늘과 회색빛 강물, 그리고 회색빛 그림자 풍경을 한번 천천히 바라보며 갑천을 떠나갑니다.

 

이제 한빛 아파트 옆 카이스트 길을 따라 가야지요.

 

 자전거가 많이 있는 카이스트 길을 걷습니다.

제가 카이스트를 다닐때는 거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서울 홍릉에 있어서

이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지요. ㅎㅎ

 

한빛 아파트가 인접해 있는 카이스트 길은 언제와도 한적하고 좋습니다.

 

카이스트를 빠져나오려는데 길옆으로 과거에는 보지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시비가 보여 잠시 발걸음을 멈춰봅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시비인것 같은데요.

 

산길이든 숲길이든 혹은 차가 다니는 길일지라도

걸을 수 있는 길이면 저는 다 좋습니다.

 

누군가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혹은 삶의 목적이 무었이냐고 묻는다면

과거에는 딱히 할말이 없었을겁니다.

명예? 재물? 일의 성취감? 등등

이런 보편적인 개념은 이제 아닌 것 같고요.

 

그런데 길을 걷고 또 걸으며 깨달은 것은

이제 내 삶의 목적은 그 길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걸으면 그저 행복해집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자꾸 짧아지는 지금

명예, 권력, 재물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유한한 삶이기에 죽으면 전부 다 사라지는 것을...

 

저는 이제 그 길위에서 행복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참 고맙고 소중하지요.

 

날마다 비가 와서 답답했는데

참 편하게 동네 올레길을 3시간여 걸었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동네 올레길을 만들었습니다. ㅎ

 

앞으로도 어떤 동네 길이 있을까 내 스스로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이기에 그 또한 또 다른 삶의 행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