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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안동 도산서원 길 - 퇴계종택과 이육사 문학관을 찾다.

by 마음풍경 2010. 11. 4.

 

도산서원, 퇴계종택과 이육사 문학관

 

 

경북 안동 도산면

 

 

퇴계 녀던길을 마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도산서원으로 향합니다.

(퇴계 녀던길 - 낙동강 천삼백리길의 백미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73)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년)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산서원 주차장 입구에서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단풍이 진하게 물들었네요.

 

잠시 길을 걸으니 낙동강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강 건너편의 독특한 모습의 시사단은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라고 합니다.

 

당초에는 돌로 쌓은 제방위에 있었는데 안동댐 공사로 인해 약 10m의 단을 쌓아 그위에 올려 놓은거라고 하고요.

 

도산서원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가을의 느낌이 물씬하네요.

 

대문으로 들어섭니다.

 

대문 오른편으로는 서원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도산 서당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몸소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라고 하네요.

 

 주변에는 꽃밭 가득한 작은 정원도 있습니다.  

 

이곳 서원의 건축물들은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선비와 같은 단아한 느낌이 물씬 배여있습니다.

 

제자들의 기숙사로 쓰인 농운정사도 군더더기가 없는 단정한 모습이네요.

 

진도문을 따라 도산서원의 가장 중심건물인 전교당으로 들어섭니다.

 

보물 210호인 전교당은 서원의 강학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전교당 정문의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로 부터 사액을 받은거라고 합니다.

 

전교당 옆으로는 서원의 관리와 식사 준비를 위한 노비들이 거처하던 일반 살림집이 있습니다.

 

소박한 문을 따라 밖으로 나가봅니다.

 

담장을 따라 옆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니 도산서원이 한눈에 보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 모습이 구권 천원짜리 지폐의 뒷편 모습이네요.

 

과거 지페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ㅎㅎ

모습은 거의 그대로인데 나무들이 많이 자란것 같습니다.

 

 도산서원를 빠져나오는데 재미난 나무의 풍경을 보네요.

4개의 기둥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적당한 간격으로 펼쳐져서 자라는 모습이 독특하지요.

 

다시 단풍길을 걸으며 도산서원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도산서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퇴계 종택이 있습니다.

 

원래 퇴계선생의 종택은 없어졌으나 1929년에 선생의 13대 하정공이 사림 및 중종<中宗>의 협조로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종택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으로 높은 석축<石築> 위에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한 단정한 느낌입니다.

 

이곳은 현재도 퇴계 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하여 건물 뒷편으로는 가볼 수는 없습니다.

 

종택의 우측에는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퇴계 종택의 마당에 서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이 참 차분해 집니다.

 

퇴계 종택에 오면 한가지 꼭 보고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종택 입구 다리 건너편에 작은 집이 3채가 있는데

이곳 동네 주민분의 말에 의하면 이곳이 퇴계선생이 초기에 제자를 가르친 곳이라고 합니다.

 

다시 근처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으로 나섭니다.

이육사 문학관은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인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 그리고 독립운동의 자취를 소개하는 곳으로

시인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습니다.

 

제가 지식이 부족해서 인지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된 2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이육사 시인이 이곳 안동 도산면 출신이라는 것과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라는 사실이네요.

 

이육사 시인을 말할때는 그저 민족 저항시인이고 광야, 청포도 같은 시만 알고 있었지요.

 

사람이 살면서 언행일치를 하며 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문학인이자 시인이기에 그냥 세상을 외면하고 시를 쓰며 살수도 있는데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40여년의 짧은 생애를 교도소에서 마감한 그분의 모습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그분의 유품을 보니 잠시 가슴이 먹먹해오네요.

그때 나라를 팔아먹고 친일 행위를 하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일제에 항거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또 어떨게 살고 있는지요.

아직은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