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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퇴계 녀던길 - 낙동강 천삼백리길의 백미

by 마음풍경 2010. 11. 2.

 

퇴계 녀던길

 

 

안동 농암종택 ~ 학소대 ~ 정자 및 연못 ~ 건지산 등산로 ~

헬기장(건지산) ~ 녀던길 전망대 ~ 갈대밭 ~

공룡 발자국 ~ 학소대 ~ 농암종택(약 9km, 3시간 30분 소요)

 

 

퇴계 녀던길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이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이웃한 봉화 청량산을 즐겨 찾았는데,

도산서당에서 낙동강을 따라 청량산을 오갔던 옛 길(녀던길)을 말합니다.

 

 

 

오늘은 도산서원에서 청량사 입구까지의 약 18km 거리의 길이 아닌

농암종택에서 시작해서 녀던길 전망대를 반환점으로

다시 농암종택으로 되돌아 오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안동 농암종택 - 도산구곡의 비경을 품고있는 고택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74)

 

전체 녀덜길 중에 나머지 길은 대부분 차도이지만

오늘 택한 길은 온전히 발걸음만을 허용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갈 때는 천지산 산길로 가고 올 때는 낙동강 강변길을 걷습니다.

 

농암종택 입구에도 도산 옛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요. 

근데 퇴계 오솔길, 퇴계 녀던길, 도산 옛길 등  안내도 마다

이름의 명칭이 다양해서 하나로 통일하면 좋을 듯합니다.

 

농암 종택은 퇴계의 숙부와 철진한 사이였던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라고 합니다.

농암종택의 단아한 모습을 보니 조선 선비의 기개가 느껴집니다.

 

학소대, 벽력암 등 농암종택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변의 풍경은 정말 절경이지요.

 

농암 종택 앞 길을 따라 너뎐길을 시작합니다.

 

농암종택 옆으로는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분강서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소대 절벽 아래쪽으로

 애일당과 강각의 멋진 정자 건물이 계속 이어지네요.

 

비록 1975년 안동댐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등은 이곳 낙동강 풍경과 참 잘 어울립니다.

 

 이제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네요.

 

강 건너편 절벽 바위의 풍경도 멋지고요.

 

늘 그렇지만 강가를 따라 걷는 기분은

마치 강물과 하나되는 기분이 들어 좋습니다.

 

멀리서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낙엽밟는 소리만이 들리는 참 좋은 시간입니다.

 

제일 먼저 경암을 만납니다.

 

퇴계 이황은 이 바위를 보며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남겼다고 하네요.

 

"부딪는 물 천 년인들 다할 날 있으련만

중류에 우뚝 서서 기세를 다투누나

인생의 발자취란 허수아비 같은지라

어느 누가 이런 곳에 다리 세워 버텨보리"

 

 

경암을 지나자 바로 학소대를 만납니다.

물론 머리위로 펼쳐지는 풍경인지라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는 없지만

조금전 낙동강가에서 바라본 멋진 학소대의 풍경을 그려보네요.

 

정말 이름처럼 의지의 나무입니다.

삶이란게 멀찍하게 떨어져 바라보면 편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이처럼 치열한 모습이겠지요.

 

풍혈 바위도 지나고요.

여름이 아니어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불지는 않더군요. ㅎ

 

풍혈바위 앞에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애틋하게 마주 보고 있는 듯한

한쌍의 바위가 더더욱 눈길이 가더군요.

 

뽕나무 두 그루가 한 몸이 된 남녀를 연상하게 하는 연인나무도 지납니다.

 

옹달샘이 있는 정자에 도착했습니다.

 

옹달샘 가운데에 서있는 바위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곳에 퇴계 선생의 시비가 많습니다.

 

저도 시를 좋아하는데 퇴계 선생도 시를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ㅎ 

하긴 많은 영남의 문인, 묵객들이

이 길을 걸으며 남긴 시가 천여편이 넘는다고 하네요.

 

이제 편안한 강변 길을 버리고 가파른 산길을 오릅니다.

 

이어 하늘이 트이는 임도 길을 만나고요.

 

이 길은 마치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시원한 조망과 멋진 능선 풍경도 비슷하고요.

 

임도 길에서 다시 왼편 산 능선 길로 접어듭니다.

 

ㅎㅎ 이곳에서 내가 걷는 길의 안내 시그널을 만나게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소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능선을 올라서니 저멀리 청량산이 바라보이네요.

이 멋진 풍경을 친구삼아 따뜻한 커피한잔 합니다.

날이 추워질수록 커피 맛이 차암~ 좋습니다.

 

 건지산 아래 헬기장을 지납니다.

이곳이 오늘 걷는 길의 정상이라고 할수 있고요.

 

편안한 임도 길을 따라 전망대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제가 늘상 좋아하는 숲속의 흙길이네요.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참 좋습니다.

 

산길을 빠져나가니 다시 시원한 능선이 펼쳐집니다.

 

그 능선 너머에 청량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고요.

 

이곳 등산로 우회길은 안내가 잘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에 개설해서 그런가 보네요.

 

퇴계 녀던길이 칸트가 걸은 독일 '철인의 길'보다

몇십배는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풍경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제 낙동강의 풍경이 다시 보이는 것을 보니 전망대가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농암종택에서 약 2시간만에 녀던길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거리로는 약 5.6km 정도 걸었습니다.

 

 퇴계 녀던길은 시와 풍경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시심의 길인것 같습니다.

 

과거 이곳 풍경 사진을 보고 꼭 가을에 오고 싶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전망대로 올라서봅니다.

 

S자로 뒤돌아 흐르는 낙동강과 학소대 그리고

저멀리 병풍처럼 이어지는 청량산의 모습이 한폭의 산수화같습니다.

퇴계 선생은 이 아름다움을 ‘미천장담(彌川長潭)’이라는 시로 풀어냈다고 합니다.

 

"굽이굽이 맑은 여울 건너고 또 건너니

우뚝 솟은 높은 산이 비로소 보이네

맑은 여울 높은 산이 숨었다가 나타나니

끝없이 변한 자태 시심을 돋워주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있으니

문득 양희은의 봉우리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더군요.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진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가끔 어쩌다가
혹시라도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땐,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거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이제 길을 되돌아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네요. ㅎ

 

하지만 발 아래로 펼쳐지는 저 아름다운 강변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레임으로 오른편 강변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강가로 내려서는 짧은 길이지만 가을의 정취와 함께

옛길의 느낌이 물씬 배여있습니다.

 

강가로 내려서서 억새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습니다.

 

과거 이곳으로 생태 길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곳 사유지 주인이 땅을 팔지않아

건지산 방향으로 새롭게 길을 내고 이 길은 비공식적으로 사람들이 다닌다고 합니다.

 

이 멋진 길을 걷다보니 저는 비록 시인은 아니어서 멋진 시를 쓸 수는 없지만

좋은 시를 느낄 수는 있기에 마음에 와 닿는 시 하나 읊어봅니다.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잎이라든가

어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 채 짓자고 앉아 있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사원이라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떨리지만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멀고 멀군요

이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인 줄 누가 알까요

 

                                                    - 장석남 시인의 오막살이 집 한 채 -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봉화 청량산을 지나며 비로소 강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

청량산을 지나 안동으로 흐르는 이 길이 

낙동강 1300리 길중에서 가장 멋진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이곳도 4대강 개발 공사의 광풍에 휩싸이지는 않겠지요. 

그건 아마도 앞서가신 우리 조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대까지도 큰 죄를 짓는 일이 될것 같습니다.

하긴 개발을 원하는 그들의 눈에도 이곳은 손을 대지않아도

너무나 아름답기에 그냥 이대로 두는 것이 더욱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볼것같네요.

 

 공룡발자국이 있는 강변길을 지납니다.

 

실제 이 흔적이 공룡 발자국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흔적들이 이곳 저곳에 있더군요.  

 

S자로 휘도는 낙동강이 흐름을 멈춘 듯 담을 이룬 한속담을 바라보며

퇴계 선생이 남긴 시 한수적어 봅니다.

 

"벌벌 떠는 여윈 말로 푸른 뫼를 넘어가서

깊은 골짝 굽어보니 찬 기운이 으시으시

한 걸음 두 걸음 갈수록 선경이라

기괴한 돌 긴 소나무 시냇가에 널렸구료"

 

 

이 녀던길은 2006년 환경부에 의해

생태탐방로 20선에 선정된 길이라고 하는데

새로운 시설 설치보다는 지금 이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보존이 되길 바래봅니다.

 

학소대가 멋지게 나타나는 것을 보니

농암 종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ㅎㅎ 잠시동안 사유지를 침범했나봅니다.

참 아쉽네요. 합법적으로 길이 이어져서 힘들게 산길을 택하지 않고 

우리나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한 발걸음으로 

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본다면 참 좋을것 같은데요.

강의 소중함, 자연의 소중함 그리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길이기에 더더욱....

 

다시 옹달샘이 있는 정자로 돌아왔습니다.

 

 한속담을 휘돌아 농암종택도 보입니다.

 

이렇게 봐도 농암종택은 참 멋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녀던길 전망대에서 농암종택까지 약 3km 거리가 1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물론 전체 약 9km 거리를 걸은 시간은 약 3시간 반 정도이고요.

그 거리에는 산길도 있고 숲길도 있고

시골 임도길도 있고 또한 낭만적인 강변길도 있었습니다.

 

퇴계 녀던길을 마치고 농암종택을 나서는데

강 건녀편에 우리나라 10대 정자중 하나인 고산정이 잘가라고 인사를 합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그림같은

아니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왔습니다.

정말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말이 딱 맞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낙동강 천삼백리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참 아름다운 우리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