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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법정스님이 걷던 불일암 무소유 길 - 무소유의 본향을 찾아

by 마음풍경 2011. 7. 18.

 


순천 송광사 불일암 암자 

 

 

송광사 주차장 ~ 청량각 ~ 불일암 ~ 감로암 ~ 율원 ~ 송광사 입구

(약 3km, 1시간 소요)

 

 

우리 현대인에게 무소유라는 화두를

남기신 법정스님의 열반일이 

2010년 3월 11일이니

벌써 한해를 훌쩍 넘겼습니다.

 법정스님이 살아계실 때 부터

꼭 한번은 가보리라 생각한 곳이

송광사에 있는 불일암이었는데

오늘에야 이곳을 찾아보게 되었네요.

송광사 입구는 푸르른 숲으로 가득차서 걷는

입구에서 부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최근에 많은 장맛비가 와서인지 이곳 조계산 계곡도

무척이나 많은 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러갑니다.

마치 법정스님이 살아계실 때 세상을 향해 외치는

그분의 카랑카랑하고도 날이 선 목소리를 닮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오랜 불교 역사 속에서

전통 승맥을 계승한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및 양산 통도사와 함께

삼보 사찰로 불리고 있습니다.

800여년 전 보조국사 지눌이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새로운 불교를 제창하면서

정혜결사를 외쳤던 도량이며

지눌, 진각을 비록한 16국사를 배출한 도량이기도 합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청량각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왼편 비포장된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깊어지고

내 마음의 평온함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 산책이 바로 이런거겠지요.

불일암 가는 도중 내내 법정 스님이

남기신 구절 하나 하나가 다시금 떠오릅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속뜰에서는 맑은 수액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혼자서 묵묵히 숲을 내다보고 있을 때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그저 넉넉하고 충만할 뿐 무료하지 않다."

 

 

걷는 길에서 불일암을 표시하는

이정표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송광사 입구에서 왼편 산으로 오르면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서 왼편 산길로 접어듭니다.

 

그저 한가롭기만 한 산길을 조금 올라서니 편백나무 숲이 반겨주고

그곳에 불일암과 법정 스님에 대한 이정표가 있더군요.

아마도 송광사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불일암 가는 이정표가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빨리 불일암에 가고픈 마음으로

먼저 이곳 산길로 올랐나 봅니다. ㅎㅎ

 

법정 스님의 말씀 중 가장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해주신 글귀이지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다시 작은 오솔길을 걷습니다.

법정 스님이 사색을 하며 수없이 걸었던 그 길이겠지요.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어쩌면 이 아늑하기만한 아름다운 대나무 숲길이

법정 스님을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늘하면서도 왠지 따뜻하고

소박하면서도 왠지 기품이 느껴지는 것이 말입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이라 많은 땀은 나지만

서늘한 숲 그늘과 시원한 바람이

함께 하기에 그리 힘들지 않네요

 어느새 불일암 입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향해 늘 열려있는 그분의 마음처럼

이곳의 문도 늘 이처럼 열려있겠지요.

 

저 세상으로 가신 법정 스님의 흔적을 찾아 가는 이 길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님의 고향인

봉화 마을의 길을 걷는 기분이 들더군요.

(봉하산 숲길 - 대통령의 길을 따라 걷다.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98)

 

이 숲 터널을 통과하면 저도 잠시

세속의 어지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아담한 느낌이 드는 불일암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불일암은 1975년 모든 직함을

버리고 손수 이곳을 지어 칩거하며

한 달에 한 편의 글귀로 세상과 소통하신 곳입니다.

  

1992년에 강원도 작은 원두막으로

거쳐를 옮기실 때까지

약 17년의 오랜 세월을 머무른 곳으로

무소유를 비롯한 법정 스님의 주옥같은

 책들이 이곳에서 집필되었지요.

 

또한 법정 스님이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신

'무소유의 본향'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고요.

 

입구에 법정 스님이 직접 만든

일명 빠삐용 의자가 반겨주네요.

이곳 불일암에서의 무소유한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의자위에는 작은 방명록과 불일암 참배 기념품인

스님의 모습이 담긴 책갈피가 있고요.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나요.

소박하지만 그렇다고 누추하지 않은

이곳 모습이 법정 스님을 꼭 닮은 것 같습니다.

 

  뒷굼치가 헤여져 실로 꼬맨 흰 고무신에서

그 분의 청빈한 모습을 느낄 수가 있고요.

 

"한참 장작을 팼더니 목이 말랐다.

개울가에 나가 물을 한 바가지 떠마셨다.

이내 갈증이 가시고 새 기운이 돌았다.

이 시원한 생수를 어찌 가게에서 파는

달작지근한 청량음료와 견줄 수 있을 것인가."

 

 

"산골에 사는 덕에 맑게 흐르는 물을

마음대로 거져 마시고 쓸 수 있음에 다행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 부뚜막 풍경을 보니 왠지 법정 스님이 금방이라도

팬 장작을 가지고 군불을 땔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근데 빠삐용 의자가 하나가 아니었네요.

이곳에도 비슷한 모양의 의자가 더 있으니요. ㅎㅎ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시장기를 느끼게 하는 저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마음 속에 묻은 때도 씻기는 것 같다."

 

잠시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주변 풍경을 살펴봅니다.

넉넉한 조계산 자락이 적당하게 펼쳐지는

 이곳에서 며칠 지내고픈 생각이 듭니다.

 

"무상이란 말은 단순히 덧없고 허망하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생겨나고 없어지고 변화하면서

잠시도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음을 가르킨다."

 

 

불일암 옆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건너편 숲속에 있는

송광사 7대 자정국사의 부도에도 잠시 들러봅니다.

불일암은 원래 자정암(慈靜庵)이라 하였는데

이는 자정국사의 부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제 불임암을 등지고

다시 밖으로 나가야할 시간입니다.

참 편하고 아늑한 곳 오래오래 있고 싶더군요.

 

불일암을 내려서는 길은 오던 길을 되돌아 가지 않고

입구 대문에서 왼편으로 산길을 더 이어갑니다.

 

마주 치는 사람들은 없고

몇몇 스님의 모습만 만나게 되네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즐기려면 아

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조용히 있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그 대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은 팍팍한 우리 일상에 가장 정결한 기쁨을 안겨 준다."

 

 

그나저나 자연을 대하는 마음처럼

사람을 대하면 좋을텐데

사람이 자연이 아닌지라 참 어려운게

사람과의 인연인가 봅니다.

인간사 희노애락애오욕이라고

 온갖 감정과 마음을 다 담고 있으니

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올리고

살 수 밖에는 없는 숙명인가 보네요.

 

불일암 숲길을 걷는 내내 몰랐는데 이곳 감로암에 오니

참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입니다.

 

불일암과 비교할 때 너무나 대조적인 암자입니다.

불일암이 시골의 정겨운 모습이라면

 이곳 감로암은 새로 지은거라 그런지

무척이나 세련된 도시의 모습을 닮았지요.

 

보조국사 지눌이 출가 후의 행적과 업적이 새겨져 있는 보조국사 비도 지납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능소화 꽃이 인상적인 율원도 지나가네요.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는

청정한 나무 아래 서면 사람이 초라해 진다.

수목이 지니고 있는 그 질서와 겸허와 자연에의 순응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부끄러워진다."

 

 

"사람은 나무한테서 배울 게 참으로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 나무에게서 옳바른 삶의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늘 이런 저런 후회와 회한만이

 남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무에게 조용히 속삭여 봅니다.

어찌하면 올바른 충만함과 행복으로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살 수 있는지를요.

하지만 나무는 그저 묵묵부답이네요.

그건 때가 되면 너 자신 스스로가 저절로 알게 되는 거라고요.

 

이런 저런 사색의 마음으로 숲길을 걷다보니

율원을 지나 어린이 법당이 있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참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본 불일암 길이었네요.

잠시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법정 스님의 참 정신과

그 분의 흔적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욕심만 커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무소유 길을 걷는 동안 내내

충만한 가벼움을 조금은 느껴보았네요.

그나저나 마음이 허허로워지면

가끔씩 다시 찾아보고픈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