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사(金龍寺) 암자길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김룡사 입구 주차장 ~ 일주문(홍화문) ~
운달계곡 ~ 화장암 ~ 대성암 ~ 양진암 ~
김룡사 ~ 김룡사 입구 주차장
(약 8km, 3시간 소요)
올 여름은 장마도 지나갔는데
우기처럼 비가 자주 옵니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비가 오고 있네요.
당초 가려했던 일정을 변경하여
비오는 사찰과 암자를 찾아
길을 걷는 것도 좋을 듯 하여
문경 김룡사로 발걸음을 합니다.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곳에 소개된 김룡사가
제 발걸음을 이끈것 같습니다.
김룡사는 운달산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가 되지요.
당포리 마을에서 성주봉과 운달산을 지나
이곳으로 하산을 하거나
또는 장군목으로 운달산 정상을 올라
화장암 방향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지요.
입구에서 주차비와 입장료를 받는데
관리하시는 주민분이 오셔서
안쪽에도 주차장이 있다고
그리 더 들어가라고 하시네요.
저는 김룡사 입구 숲길을 걷기위해
주차를 하는거라 말씀을 드렸지요.
전영우 교수가 쓴 '절집 숲' 책에
김천식당 길 건너편에
향탄봉산 비석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바로 길 옆에 서있네요.
향탄봉산은 조선 왕실에 숯을 생산하여
봉납하기위한 산이지요.
이제 식당가도 지나고
본격적인 숲길을 걷습니다.
햇빛이 쨍쨍한 날이라 해도
숲길은 울창한 나무로 인해
그늘진 시원한 길이 되겠네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풍경이
참 마음 편하게 다가옵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의미는 모두 다르겠지요.
이 돌탑을 보니 나에게 행복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나무는 무슨 병이 걸렸기에
큰 혹을 옆구리에 지니고 있는 걸까요.
전나무뿐 아니라 다양한 활엽수가
길을 따라 펼쳐지는길이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길을 차로 지나갔다면
얼마나 아쉬울까요.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라
소망을 비는 작은 돌탑들이 있네요.
죽은 나무에 자라고 있는 버섯을 보며
죽어서도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는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무슨 버섯인지 모르겠으나
참 앙증맞게 귀엽네요.
길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몇몇 부도들도 보입니다.
멋진 나무 사이로 김룡사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이 모습을 보이네요.
멋진 숲과 나무때문인지
제가 만나본 일주문 중
가장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홍하문은 성철 스님이 즐겨하시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홍하문의 기둥에 쓰여진
주련의 뜻을 음미해 봅니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
(入此門來莫存知解),
비우고 빈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
(無解空器大道成滿)
비움은 불교로 다가서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발걸음이기도 하겠지요.
길을 걷는 것도 비움의 행위이고요.
전나무가 도열해있는 오른편 길이
김룡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지만
왼편 길로 이어지는 암자를 들러봅니다.
위태롭게 서있는 작은 돌탑은
사람들의 소박한 작은 소망들을
먹고 자라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이면 운달 계곡이 좋아
사람들이 많을텐데
오늘은 비가 와고 여름의
뒷끝이어서인지 한적하네요.
전나무들은 수령이 300년 이상으로
높이도 30여 미터가 된다고 합니다.
변산 내소사 전나무에는 미치치 못하지만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숨어있네요.
전나무 숲길을 이어가니 여여교를 만납니다.
다리를 건너면 대성암과 양진암이 나오고
오른편길로 가면 화장암과
운달산 정상으로 가게됩니다.
저는 오른편 화장암 방향으로 걷습니다.
이전까지는 숲길과 계곡이 떨어져 있었는데
운달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게됩니다.
하여 여름 산행길로도
참 좋은 곳이겠지요.
운달산을 올라 하산길에
더운 몸을 식히는 알탕도 하고요.
누군가 저에게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냐고 묻는다면
소박하지만 여유가 있는 숲길을
걷는 순간이라 대답하겠습니다.
자연과 벗하며 걷는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한 인생의 한부분이고요.
늘상 이야기하는 비움
그리고 휴식의 참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운달계곡을 오르니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푯말과 철조망이 눈에 띄네요.
조금 더 가다가 우렁찬 소리가 들려
계곡으로 내려서니
멋진 폭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름없는 폭포인데 그냥
운달 폭포라고 이름해보네요.
당초 계곡을 따라 장군목이나 아님
운달산 정상까지 갈 생각도 했으나
비도 올것 같고해서 이곳 폭포를
반환점으로 하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계곡 옆에 앉아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과 몸이 다 시원해 지는것 같습니다.
폭포에는 음이온이 많이 나오기에
사람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하지요.
한참을 쉬다가 이제 되돌아 갑니다.
올라오면서 만난 화장암 입구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드네요.
김룡사의 암자들을 순례해야지요.
화장암이 조금 전에 만난 폭포의 위쪽에 있기에
화장암에서 흘러온 물이 멋진 폭포를 만드네요.
최근들어 사찰 주변의 암자들을 찾는
암자길 걷기가 왠지 좋아집니다.
많이 화려해지고 번잡해진 사찰보다는
산속에 호젓하게 숨어있는
암자를 가는 길이 인위적이지 않으며
편안한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인가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암자길을 찾는
기회를 자주 많들어볼 생각입니다.
화장암은 소수의 스님이
은둔하는 암자라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이 사는 모습이
그리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대문이 잠겨있어 문틈으로
내부 모습을 살짝 봤습니다.
일반 암자는 벽이 쳐있지 않은데
이곳은 수양을 위해
외부 사람의 접근을 막기에
돌담이 있는것 같습니다.
세속을 떠나 속세의 인연을 끊고
무엇을 찾고자 고행의 길을 걷는걸까요.
문득 명진 스님의 글이 생각이 납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걸 묻는 게 불교다.
업을 벗어버리려면 안다는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모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고 분별하는
생각들을 비우고 버리다 보면
불현듯 모든 앎이 다 끊어지고
'알 수 없는 그것'이 내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모든 앎이 끊어지고
조금의 빈틈도 없이
'알 수 없는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그 자리에서 보면
내 마음과 허공이 둘이 아니다.
화장암 암자를 내려오면서
내 존재가 무언지 떠올려 보았네요.
근데 이 나무의 모습이 왠지
찌그러진 하트처럼 보입니다. ㅎ
여여교를 건너 조금 길을 걸으니
대성암이 나옵니다.
대성암은 1800년 정조 24년에
영월대사가 김룡사의 정하전을
옮겨 창건한 비구니 암자라고 합니다.
비구니 암자여서인지 더욱 조용하고
정갈한 느낌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일반 암자와는 다르게
제법 규모가 큰 것 같네요.
그리고 일반 사찰에서 이처럼 2층으로
되어있는 건물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조금 독특한 느낌을 주는 암자네요.
묘한 분위기가 있는 대성암을 나와
양진암 방향으로 길을 이어갑니다.
무궁화 동산이 조성이 되어 있네요.
비에 젖어 화사한 느낌을 주는
무궁화 꽃도 만납니다.
주변에 하늘로 쭉쭉 뻣은
멋진 소나무들도 참 많습니다.
양진암 입구에 도착했으나
더이상 들어갈 수가 없더군요.
어차피 암자를 보기위한 것보다는
암자를 따라 숲길을 걷는 것이기에
아쉬움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다시 전나무들이 반겨주는
숲길로 나왔네요.
주변 운달산 능선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
보장문 입구에 도착합니다.
이제 김룡사 경내로 들어가야지요.
경내 입구에 멋진 모습으로 도열해 있는
전나무 길을 따라 보장문으로 갑니다.
보장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봅니다.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인 588년에
운달조사가 운봉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여
이후 김룡사로 절 이름이 개명된 사찰로
특히 성철 스님이 이곳에서 대중들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김룡사 명물인 3백년된 해우소로 가보네요.
우리나라 사찰 해우소 중에서 그 형태가
가장 잘 보존이 된 곳이라 합니다.
인분을 바로 퇴비로 사용하는
옛날 푸세식 형태의 화장실이지요.
발을 잘못 헛딛으면 빠질것 같은
조금은 스릴있는 화장실입니다.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올라가니
대웅전이 나옵니다.
대웅전 앞 마당의 노주석(爐柱石)
2기가 독특하지요.
노주석은 사찰에서 야간 행사가 있을 때
그 위에 불을 피워 마당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전기가 들어오기에
노주석을 사용할 이유는 없겠지요.
대웅전의 특이한 점은 처마 밑의 살미가
다른 한옥 건물과는 조금 다르지요.
살미는 공포에서 첨차와 직교하며
건물 앞뒤 방향으로 내민 부재를 말하는데
조금은 독특한 모양인것 같습니다.
이처럼 멋진 소나무들이 대웅전
주변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웅전 왼편으로 짐승의 모습처럼
보이는 색다른 바위가 눈에 띄던데
이곳에 이 바위를 두게된 사연이
있을걸 같은데 무엇일까 궁금하더군요.
대웅전 오른편으로 올라가니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극락전도 만납니다.
주변에 상사화가 곱게 피어있네요.
상사화는 잎이 자라고 지고난 후
꽃이 핀다해서
만날 수 없는 아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꽃입니다.
초가을에 붉게 피는
꽃무릇과는다른 꽃이고요.
진하게 피어있는 배롱나무 너머
웅진전이 나옵니다.
웅진전 오른편 뒷쪽으로 오르면
3층 석탑과 약사여래석불이 있지요.
무성한 풀을 헤치고 조금 올라가니
주변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서있는 석탑을 만났습니다.
풍수가에 따르면
김룡사 가람이 소가 누운 와우형으로
지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대웅전 주변이 아닌 조금 떨어진
이곳에 석탑과 석불을 두었다고 하네요.
석탑을 내려와 왼편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니 약사여래석불이 나옵니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입니다.
후덕하고 천진스런 모습이
참 좋습니다.
입가의 미소만 보고있어도
병이 저절로 치료가 될것 같네요.
석불을 보고 경내로 들어서는데
구름에 가려진 운달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지네요.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보니
김룡사가 규모도 크지도 않고
많이 알려진 사찰은 아니지만
깊은 기운이 있는 사찰인것 같습니다.
이제 김룡사를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다리를 건너 명부전쪽으로 가봅니다.
짧은 길이지만 명부전으로 가는 길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멋진 소나무들에 둘려쌓여 있는
명부전이 아름답네요.
명부전 앞 동산쪽으로 작은 길이
산속으로 계속 이어져 있어
따라가 볼까하다가 되돌아 나왔네요.
소나무 향기 가득한 숲속에
잠시 머물러 있기만해도 좋네요.
이제 해우소 옆길을 따라
김룡사를 빠져나갑니다.
일주문인 홍화문도 다시 만나고요.
앞에서 봐도 멋지고 뒤에서 봐도
참 정감이 잇는 일주문입니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해서
약 3시간의 김룡사 암자길
걷기를 마무리합니다.
그 한적한 길과 운치있는 사찰,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에
잠시 제 마음을 내려놓았었네요.
독일의 인문과학 저널리스트인
울리히 슈나벨에 글에 따르면
휴식(Muße)은 빈둥거림이 아니라
행복의 중심이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라고 하지요.
길을 걷는 동안 제 마음도
휴식이 머물렀나 봅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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