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외산면
주차장 ~ 일주문 ~ 도솔암 ~ 태조암 ~
무량사 경내 ~ 무진암 ~ 무량사 주차장
(약 5km)
지난 주는 순천 송광사에 다녀왔는데
이번 주는 무량사로 발걸음을 합니다.
오래전부터 만수산 무량사라는 절이
충남에 있다는 말을 듣고
늘 가봐야지 생각만 했는데
오늘 무량사를 찾게 되네요.
무량사(無量寺)는
9세기인 신라 문성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부여군과 보령시 미산면에 있는
만수산(萬壽山) 남쪽 고찰입니다.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무량사에서 먼저 보는 것은
일주문입니다.

만수산무량사
(萬壽山無量寺)라고
새겨진 편액의 글씨는
전국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긴
차우(此愚) 김찬균이 썼다합니다.

편액 오른편 위쪽에 남겨진
조그만 한반도 지형의
두인(頭印)이 독특하지요.

기둥은 옹이를 다듬지 않고
투박하게 사용한 모습이
더욱 정감있게 다가오네요.
무량사 경내로 들어가기에 앞서
주변 암자들을 찾아가 봅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 같지만
덥지도 않고 한거롭게
걷기에는 딱입니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가 옆에
무량사 구지라고
옛터가 남아 있습니다.
무량사는 신라 때 창건한 이후
고려 고종 때 중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 무량사는 조선 인조 때
진묵선사에 의해 중수된
절이라고 하네요.
20여년전 대전에 내려온 후에
부여에 만수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왠지 마음이 끌렸었습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에 나오는
개성 송악산의 다른 이름인
그 만수산은 아닙니다.
비록 한자가 똑같은
이름이지만요.
포근한 숲길을 따라
태조암으로 가기전에
오른편에 있는 도솔암에
잠시 들러봅니다.
암자로 가는 길은 늘 한적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기에
마음이 가나 봅니다.
도솔암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멋진 암자는 아니고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더군요.
그래도 앞 마당에 나리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습니다.
화사한 꽃과 함께 크고 멋진
검은 나비도 만나보았네요.
도솔암을 되돌아 나와서
태조암 방향으로 걷습니다.
길가에 재미난 모습의
나무가 있더군요.
같은 나무의 가지들이
얽혀있는 줄 알았습니다.
옆에서 보니 다른 나무가
서로 몸을 맞대고 있는데
모습이 거시기 합니다.
연리목은 아니지만
찐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랑나무라 할 수는 있겠네요.
비록 포장된 길이긴 하지만
시원한 그늘을 따라 한적하게
걷는 참 좋은 길입니다.
정해진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은
목적지만이 남는 경우가 있지요.
때론 목적의 길이 아닌
과정의 길이 아름답기에 말입니다.
숲길을 따라 평화로운 마음으로
길을 걷다보니
태조암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걷기의 반환점이고요.
태조암은 암자라기 보다는
숲속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고택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태조암 앞 마당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다시 태조암을 등지고
무량사 방향으로 걷습니다.
태조암에서 만수산 정상인
문수봉으로 오를 수도 있으나
휴식처럼 가볍게 걷고 싶네요.
다리를 건너 무량사로
들어가야지요.
입구에서 무량사 당간지주를
먼저 만납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앞서 만난 일주문 기둥처럼
꾸밈없이 소박한 모습이지요.
당간지주는 다른 불교 수용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삼한 시대 소도(蘇塗) 신앙이
불교의 토착화 과정 중
수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이 나옵니다.
무량사 경내의 모습이
한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오네요.
무량사 경내는 큰 규모가 아니어서
모두가 보물인 석등부터 석탑
극락전이 한눈에 바라보이네요.
극락전을 보니 지난 5월에 가본
3층 구조의 국보 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이 생각이 납니다.
https://sannasdas.tistory.com/13389741
금산사 모악산 길 - 안개 자욱한 산길을 걷다.
금산사 주차장 ~ 금산사 ~ 부도전 ~ 연리지(사랑나무) ~ 심원암 ~ 복강3층석탑 ~ 북봉 ~ 모악산 정상 ~남봉 ~ 장근재 ~ 배재 ~ 금산사 입구 ~ 금산사 주차장(원점 회귀)(약 13km, 5시간 30분 소요/금산
sannasdas.tistory.com
극락전 바로 앞 석탑은
보물 제185호로
고려 초기의 것이지만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은
백제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석등은 상대석과 하대석에
연꽃 위로 팔각 화사석을 갖춘
고려 초기의 양식으로
보물 제233호라고 합니다.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석탑과 석등이
서로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극락전 우측에 자리 잡은 명부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눈길이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중앙 불단 위 지장보살 옆으로
사바 세계를 떠난 사람들이
명부전 밖 사바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네요.
무량사의 하일라이트인
극락전을 찾아야지요.
보물 제356호인 무량사 극락전은
법주사 대웅보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국내에 몇 안 되는 복층 불전으로
내부는 상하층 구분 없는
통층 구조입니다.
극락전 내부에는 보물 1565호인
5.4m의 아미타삼존불이 있으며
4.8m 높이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은 소조불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극락전을 구경하고 나서
이곳 무량사를 찾게된
가장 큰 이유인
김시습 영정을 보러 갑니다.
멋진 모습의 배롱나무가
인상적이네요.
아주 멋진 색으로 피어있는
수국이 있습니다.
수국은 꽃말이 성남과
변덕스러움이라고 하네요.
수국은 환경에 따라
토양이 중성이면 흰색,
산성이면 청색,
알카리성이면 분홍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고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이
있는 곳입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대표적인 전기소설집인
금오신화를 쓴 소설가이자
다섯살 때 대학과 중용을
깨우친 타고난 천재이며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저항했던
생육신의 한 사람이지요.
죽을 때까지 불편부당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과 원칙을
고수한 구도자이고요.
금오신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다 죽게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 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와
염라국과 용궁을 배경으로 한
사회 비판이자
현실에서 이루지못한 꿈을 그린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등 5편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외우기만 했던
제목들이었지요.
3년전에 죽은 혼령을 모르고
사랑한 양생이라는 남자,
사랑한 여자와 결혼했으나
홍건적 난으로 죽은 부인의 혼령을
다시 사랑한 이생이라는 남자,
천상계의 선녀를 사랑했던
흥생이라는 남자가 나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는 주제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작품들입니다.
주인공 모두가 능력은 갖추었지만
부당한 사회현실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마치 김시습 자신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시습 초상화를 보고
삼성각으로 발걸음을 합니다.
삼성각 입구 옆으로
멋진 계곡이 숨어있네요.
물 흐르는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물소리를 오래 오래 들어봅니다.
물소리가 단음이 아니라
다음으로 화음을 이루네요.
좋네요. 참 좋습니다.
김시습 초상화를 보고
바로 뒤돌아 가려 했는데
이런 멋진 곳이 있었기에
발걸음을 이끌게 했나봅니다.
계곡에 참 오래동안 있다가
극락전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무량사의 3개 보물들이
한줄로 서있네요.
큰 나무 그늘에서
무량사를 바라봅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고요가 있는 사찰입니다.
이제 계곡을 따라
무량사를 나섭니다.
일주문의 이름이 광명문이었네요.
이곳 편액도 오른편 위로
한반도 모양의 두인이
남겨져 있고요.
주차장 근처에 있는
무진암으로 걷습니다.
가는 길 도중에 김시습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있습니다.
일제 시대 때 폭풍우가
나무가 쓰러지면서
부도도 함께 넘어졌는데
밑에서 사리 1점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김시습 부도를 만나고
조금 더 길을 걸으니
암자길의 종착점인
무진암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찾아본 무량사는 어쩌면
김시습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이곳에서
마지막 생애를 마치게 된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알려지지 않은
만수산 무량사일까를..
태조 이방원이 만수산 드렁 칡을
이야기하면서 회유했지만
정몽주는 결국은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 하였듯이
김시습 또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며
부귀영화를 버리고
생육신이 되었기에
혹여 그 사건을 생각하며
이미 세조도 죽은 이후이기에
역설적인 마음으로
개성의 만수산은 아니지만
한자도 같은 이곳을 찾게 된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알려지지 않은
만수산 무량사가 은둔자였던
매월당이 머물기에
좋은 곳이었겠지요.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일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다간
그분을 생각하니
매월당이 자신의 묘비명에
새겨달라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늙어서도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꿈은 과연 무었이었을까요.
그래도 처마 끝에 달린 풍경 너머
아늑한 모습이 참 좋네요.
나 죽은 뒤 내 무덤에 표할 적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준다면
나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할 것이니
품은 뜻을 천년 뒤에 알아주리
- 김시습의 나의 삶 중에서 -
'문화,역사,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0년된 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 (0) | 2011.08.23 |
---|---|
문경 김룡사 암자길 - 운달 계곡을 따라 걷다. (0) | 2011.08.22 |
화순 운주사 와불 길 - 천불천탑의 전설을 따라 걷다. (0) | 2011.07.22 |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길 - 숨겨진 아늑한 천자암 숲길 (0) | 2011.07.20 |
법정스님이 걷던 불일암 무소유 길 - 무소유의 본향을 찾아 (0) | 201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