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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올레길 (28)] 여름비 오는 동네 가로수길

by 마음풍경 2013. 7. 28.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8번째

 

 

- 여름비 오는 동네 가로수길을 걷다 -

 

 

여름비 내리는 날 아침에 한적한 동네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촉촉하게 빗물을 머금은 분홍색의 배롱나무 꽃이 반겨주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당초 토요일에 제천으로 자드락 길을 걷기로 예정이 되어있었으나

갑자기 배탈이 나는 바람에 가지못하고 일요일 아침에 동네 길을 잠시 산책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어느새 분홍빛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늘상 다니는 길이지만 마음의 문을 열어야 무의식적으로 스쳐가는 꽃들도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오나 보네요.

 

인연이란게 너무 가벼우면 쉬이 부는 바람에도 날아가버릴 터이고

또 너무 무거우면 마음의 생채기를 내는 응어리로 남기도 한다는데

무엇이 옳고 또 무엇이 그른지 참 선택이 어려운 삶입니다.

 

탄동천이 세차게 흐르는 신성교를 지납니다.

늘 물에서 놀던 오리들은 비가 와서인지 보이지 않는데 새들은 비가오면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다리에서 줌으로 풍경을 조금 당겨보니 동네의 작은 천이라기보다는

작은 쪽배라도 타고 거슬러 올라가고픈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말 비가 많이와서 수량이 풍부하면 자운대에서 시작해서 갑천이 합류되는 중앙과학관 앞까지

탄동천을 배로 래프팅을 하고픈 무척이나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네요.

 

화학연구소를 지나니 초봄이면 연노란 얼굴로 반겨주는 영춘화를 만나게됩니다.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0)] 봄꽃 가득 피어있는 동네 길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865)

 

지난 초봄만해도 가지에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노란 꽃이 피어있었는데

여름에 보니 초록의 잎만 가득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네요.

 

담장으로 이어지는 줄기의 풍성함을 올려보니 마치 대나무 숲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능수벚나무들을 지나 녹음 가득한 가로수 길의 끝에 오니 다시 배롱나무 꽃들이 가득합니다.

 

한여름에 분홍빛으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배롱나무 꽃의 꽃말은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 한다."라고 합니다.

 

또한 배롱나무를 백일홍 나무라고도 불리는데 한번 피어서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고

피고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백일동안을 간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하고요.

 

쉬운 만남과 쉬운 이별을 반복하며 사는 우리에게 배롱나무 꽃은 비록 100일이지만

늘상 새로운 꽃을 피워 사랑의 존재를 새롭게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화려한 꽃들이 다 지고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올 여름의 이별은 영 이별이 아닌 새로운 만남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다시 신성교를 지나갑니다.

늘 과거만이 남는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건너 갔다가 다시 건너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ㅎ

 

운동장 옆 가로수 길로 접어듭니다.

차도와 인도 옆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서인지 이 숲길을 걸으면 늘 기분이 좋아지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길이지요.

오늘도 노래 한곡 흥얼거려집니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 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소중한 것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아직은 조금 성치 않는 몸을 이끌고 만나는

 내 주변에 있는 작은 것, 소박한 것들임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 됩니다.

 

그런 길에는 빠름이란 있을 수가 없겠지요.

 

점점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

빨리 달리는 데 취해 있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그건 정말 비극이다.

빠르다는 것은 서로 더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안도현 시인의 빨리 달리다 보면>

 

 

비오는 날 아침 동네 가로수 길을 한바퀴 휘돌아 걸었습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비가 오는 날이지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그립더군요.

 

하여 바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길에 부는 바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꽃이 좋아하는 바람이 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