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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길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5)] 설국의 화봉산 눈길

by 마음풍경 2012. 12. 9.

 

내가 사는 동네 올레길 25번째

 

 

- 설국의 화봉산 눈길을 걷다 -

 

신성동 ~ 탄동천 ~ 꿈돌이랜드 입구 ~ 우성이산(도룡정) ~ 화봉산 ~

대덕 초등학교 ~ 도룡동 ~ 한국표준연구원 앞 ~ 신성동

(총 11km, 3시간 소요)

 

 

대전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한 우성이산에서 화봉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둔산 시내와 대덕연구단지뿐만 아니라

우산봉에서 갑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길입니다.

 

 

당초 일기예보에 올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추운 날이 많다고 하던데

12월 초부터 눈이 참 많이 오네요.

눈이 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에서 가까운 산에만 가도 좋기에

오랜만에 우성이산과 화봉산을 향해 25번째 동네 올레 길을 나섭니다.

  

아무리 춥고 혹독한 겨울이라고 해도 설국의 풍경이 주는 매력때문인지

그 겨울이 늘 기다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한달전만 해도 노란 은행잎으로 가득한 곳이 이제는 새하얀 눈길로 변했으니요.

 

매번 이 길을 걷더라도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매년 찾아오는 겨울이지만 작년에 찾아왔던 겨울이 지금 맞고 있는 겨울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나가버린 계절에 담겨졌던 아스라한 추억과 함께

새롭게 다가오는 계절에는 막연하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는 희망같은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자연의 풍경을 만날 것 같은 설레임..

지친 마음을 타독 타독 해주는 바람의 애무..

 

세상 사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그저 설레임, 기다림, 그리고 작은 소망 하나면 충분하겠지요.

 

그나저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포근한 눈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엑스포 공원 입구로 나온 것 같네요.

 

큰길을 건너서 우성이산으로 오르기 위해 꿈돌이 랜드 입구로 갑니다.

 

작년 5월에 대덕 사이언스 길 1구간을 걷기위해 이곳에 왔었지요.

(대덕 사이언스 길 1코스 : 매봉~우성이산길 - 아카시 꽃향기길,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744)

 

길의 매력은 같은 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르고

같은 계절이라고 해도 또 시간 때에 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무거운 눈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휘어져 있는 대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서 겨우 헤치고 빠져나왔네요.

 

지금은 멈춰버린 눈덮힌 놀이공원이지만 언젠가 활기찬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그나저나 어제가 대설이었는데 그 이름처럼 눈이 참 많이 오긴 왔네요.

 

높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이곳은 온통 설국의 세상입니다.

 

말라버린 나뭇잎에도 주렁주렁 고드름이 달려있네요.

 

외롭게 자리한 무덤도 새하얀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섭고 힘든 세상인데 바르게 살다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요.

 

잠시 내 지나온 삶도 바르게 살았는지 아니면 형편없이 살았는지 뒤돌아봐도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늘 부끄럽고 후회만 되는 것이 인생인가봅니다.

  

참 오랜만에 우성이산의 정상인 도룡정에 올라봅니다.

 

정자에 올라서니 갑천너머 눈쌓인 둔산지역도 한눈에 펼쳐지네요.

 

그나저나 과거에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탁트였는데

그사이 세월이 많이 흘렀는지 자라난 나무들의 키가 커서 조망이 많이 가립니다.

 

그래도 우산봉과 갑하산 능선도 넉넉하게 바라보이고

아득하게 능선너머 계룡산도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아파트도 반갑게 인사하네요.

 

 도룡정에서 따뜻한 커피도 한잔 마시고 화봉산 방향으로 길을 이어걷습니다.

눈이 가득 쌓인 이곳 나무들을 보니 거의 한라산의 겨울 풍경 수준이네요.

 

제 블로그 프로필에 '길에서 행복을 배우고 자연에서 사랑을 배운다'는 글을 올렸는데

자연은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거라는 진리가 자연속에서 머물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고요.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 가운데 가장 손해 보며 살고 있는 것은 자연일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실한 열매를 맺어도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 무엇도 취하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낙엽으로 발밑을 덮어 거름으로 삼을 뿐이다.

 

 

자연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적자만 보고 살았다.

조금씩 손해 보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기주의자다.

 

 

내 마음의 평화야말로 어떤 이익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모두 하나의 그물코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하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어떤 행위든 돌고 돌아서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당장 잃고 얻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다른 존재들의 무수한 희생과 도움 덕에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인생의 자잘한 손익에 애면글면 하지 않는다.

 

                                              < '아무것도 하지않을 권리' 중에서 - 정희재 >

 

 

환상적인 눈 터널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군 초소 시설이 있는 화봉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집에서 이곳까지 약 6km에 2시간 가까이 걸렸네요.

 

지금은 폐쇄가 되었지만 과거 이곳에 군초소가 있었던 것은

정상에서 바로 바라보이는 원자력연구소때문이었겠지요.

 

화봉산 정상에서 잠시 쉬고 이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갑니다.

 

이곳에 올 때는 날이 맑있는데 어느새 회색빛 구름이 가득하네요.

안그래도  12시부터 눈이 온다고 하는데 요즘 일기예보는 상당히 정확한것 같습니다.

 

 항상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같은 길을 걸어도 걷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만나는 풍경도 다른 느낌이지요.

 

세월이야 되돌아 갈 수 없지만 길은 언제든지 되돌아 갈 수 있고

또 그 풍경 또한 새롭게 다가오니 이렇게 멋진 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ㅎ

 

이제 능선에서 내려서서 왼편 대덕초등학교 방향으로 갑니다.

 

내려서는 길 또한 눈이 소복 소복 쌓인 환상의 눈길이네요.

 

솜털로 장식이된 듯한 아름다운 눈 터널 풍경도 만나게 됩니다.

 

대덕 초등학교 입구로 내려서니 개발을 반대하는 프랭카드를 만났습니다.

과거 도룡동은 참 한적하고 사람이 여유롭게 살기에 좋았는데

이곳도 개발의 광풍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과거에 롯데호텔을 매입하여 연구원의 복지시설로 사용했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텐데

과학자들이 재주만 부리는 곰의 신세 취급을 받는 시대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겠지요.

 

여흥 민씨의 사적지 담장을 따라 산길을 바져나갑니다.

 

겨울 설경의 풍경이 곱게 내려앉은 표준과학연구원 정문 앞을 지나갑니다.

 

모든 반복은 지겨움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빚지만 걷기만은 예외이다.

걷기의 반복은 활기찬 중독으로 이어진다.

걷기는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세계를 친근하게 알아가는 수단이다.

 

 

인간의 권리장전 중에서 윗부분을 차지해야 마땅할 걷기.

똑같은 길도 날마다 다르게 변주되기에 어제의 그 길이 아니다.

걸으면서 나는 어제의 나, 한 발을 내딛기 직전의 나와 흔쾌히 결별한다.

 

                                         < '아무것도 하지않을 권리' 중에서 - 정희재 >

 

 

출퇴근 때 늘 지나가는 다리이지만 눈이 내리고 있어서인지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풍경이네요.

 

흰눈에 쌓여있는 빨간 피라칸다 열매의 모습이 이색적이지요.

여튼 눈쌓인 길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삶의 큰 축복이자 행복입니다.

우리 사는 주변에는 늘 그 행복이 자리하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욕심이 커서인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도 역시 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전해지는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제 블로그 글에는 최근에 읽은 정희재님의  '아무것도 하지않을 권리' 에 나오는 글귀를 많이 인용을 했네요.

마지막으로 책에 나온 행복에 대한 글을 인용하며 오늘 걷기를 마무리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최대한 낮춰 잡고, 나쁜 일의 기준은 최대한 높여 잡을 것.

행복의 그물코는 작은 기쁨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 촘촘하게 만들고,

불행의 그물코는 왠만한 것쯤은 다 빠져나가도록 크고 넓게 만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