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역사,사찰

진안 천황사 사찰길 - 팔백년된 아픈 전나무를 만나다.

by 마음풍경 2014. 8. 11.

 

진안 천황사 사찰길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전북 진안의 천황사는 신라 헌강왕 때 창건한 사찰로 조선 숙종 때 중건한

대한 불교 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며

특히 팔백년된 전나무와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메타쉐콰이어 숲길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늑한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진안의 운장산 자연휴양림을 떠나 돌아오는 725번 지방도 길가에서

천황사 전나무라는 이정표를 보고 어떤 나무일까 궁금해서 잠시 천황사를 찾아봅니다.

 

마을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천황사를 향해 길을 걷는데

들어가는 입구의 숲이 참 풍성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특히 길가에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더욱 깊고 운치가 있는 숲길입니다.

이곳 사찰은 외부와 경계가 되는 일주문은 없지만 어저면 이 숲길이 그런 경계를 만들어 주는 것 같네요.

 

메타쉐콰이어 숲길을 지나 사찰 입구로 들어서자

거대한 크기의 전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나이는 800년이 넘었고 둘레 5.1m에 키는 35m로 도 지정 보호수라고 합니다.

 

저는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 495호인 전나무인줄 알았습니다. ㅎ

하지만 해당 전나무는 수령 400년으로 천황사 남쪽 중턱에 자리한 남암 앞에 있다고 하네요.

하긴 천연기념물이었으면 당연히 나무 주변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텐데 보호수라는 비석만 있었네요.

 

생각해보면 400년된 전나무가 천연기념물인데

800년이 넘은 이 나무 또한 당연히 1순위로 천연기념물이 되야 할것 같습니다.

나무의 표면을 보더라도 아주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고요.

 

하지만 이처럼 전나무의 윗부분이 잘려나가서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기에 천연기념물로 등재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가지가 잘린 나무를 보고 있으니 제 마음이 괜히 안타까워집니다. 

그래도 절집 담장에 고운 색으로 피어있는 상사화가 제 마을을 위로해 주네요.

 

거대한 은행나무옆을 지나 계단을 따라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섭니다.

 

여느 천년 사찰처럼 규모가 크거나 많은 건물이 있는 절은 아니지만

주변의 풍경을 자세히 보니 이곳에 계시는 스님들이 주변을 참 잘 가꾼 것 같습니다.

 

천황사는 신라 헌강왕 때 창건한 천년 사찰이지만

현재 건물은 조선 숙종 때 중건한 것이라 아주 고풍스런 느낌은 없습니다.

그래도 맛배지붕 및 다포 양식으로 건축이 되어서인지 여느 대웅전 못지않는 웅장함이 있네요.

 

그리고 대웅전에서 염불을 올리고 있는 분들이 모두 비구니 스님들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염불 소리가 더 청아하고 참 듣기에 좋았습니다.

 

천황사 경내를 휘돌아보고 다시 입구에 있는 전나무 앞으로 나왔습니다.

 

전나무 옆으로는 잘려진 나무 부분인지 한곳에 모아놓았더군요.

 

800년된 전나무 보다는 조금은 앳되보이지만

멋진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전나무를 바라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앞선 나무는 시들어 사라진다고 해도

이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겠지요.

 

살아 천년 죽어 쳔년이라는 주목도 시간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삶 또한 백년 천년을 살지 못하더라도 작은 흔적 하나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서 저도 그 흔적을 차곡차곡 이곳 블로그에 남기고 있는 것 같네요.

 

고운 숲길을 되돌아 나가며 생각해봅니다.

삶이란 유한하기에 아름답다고

비록 헤어짐의 슬픔은 있지만 그 끝이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바란다.

흔히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는 건 '보이지 않는 그물'이다.

카르마의 그물.

순간순간, 평생에 걸쳐서, 인연의 얽히고 설킴에 의해서,

홀로 또는 여럿이서 함께 만든 '업'의 그물.

 

< 윤제학 - 바람이 지은 집 절 중에서 >

 

 

상처많은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상처가 가득한 고목을 보니 그 나무 기둥에 새겨진 무늬 하나 하나가 예사로 보이지가 않더군요.

이번에는 비록 천연기념물이라는 전나무는 보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감동과 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천연기념물이 있는 사찰이라고 하면

입구에서부터 천연 기념물 제 495호 전나무라 안내하였을텐데

그냥 천황사 전나무라는 이정표만 있었고 또한 경내 어디에도 천연기념물을 안내하는 화살표는 찾지못했습니다.

어쩌면 천황사 스님이 사백년된 천연기념물보다 팔백년된 아픈 전나무와의 인연을 고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곳을 다시 찾을 기회가 된다면 단풍이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한번 찾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