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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진천 정송강사 역사길 - 송강 정철의 사당과 묘소를 찾다.

by 마음풍경 2017. 9. 20.


정송강사(鄭松江祠)



충북 진천군 문백면 송강로




진천 여행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곳은

조선시대 문신인 송강 정철 묘소와 사당이 있는 정송강사였다.


처음에는 이 정보를 접하고 가사문학을 꽃 피운 전남 담양이라면 몰라도

이곳을 찾기전까지는 진천에 송강 묘소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론 송강은 한양이 고향이고 가사 문학 활동을 한 중심지는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이다.

그리고 실제 죽은 후에는 경기 고양에 묘소가 있었지만 손자 정양이 진천현감일 때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묘소를 정하고 이장을 하였다고 한다.


정송강사 입구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송시열이 글을 쓴 신도비를 만난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인 보탑사에 있는

보물 404호인 진천 연곡리 석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갈끔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진천 보탑사 사찰길 - 50미터의 3층 목탑 건물이 장대한 곳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396)


신도비를 구경하고 나서

홍살문을 지나 사당 방향으로 발걸음을 한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정철 시비가 있다.


송강 정철은 가사 문학의 선구자로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난해한 해석과 함께 달달 외도록 했던 분이다. ㅎ


시비 뒷편에는 사미인곡 한 구절이 새겨져 있으며

사미인곡은 국문으로 한글에 대한 아음다움을 살린 걸작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학청 시절에는 송강 정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자세하게 모르고

그저 선생님이 시험을 위해 해석해 주는 글귀만 받아썼던 기억만 있는데

이렇게 그를 다시 만나니 적지 않은 인연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오래전 여행 길에서 그의 흔적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창평에서 식영정과 소쇄원을 지나 가사문학관으로 이어진 길에서였다.

(담양 가사문학 길 - 창평에서 소쇄원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532)


돌계단을 올라 송강정이라는 이름의 사당에 도착한다.


동인, 서인으로 갈라져 당쟁으로 점철된 조선 역사에서

때론 당쟁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당쟁의 수혜자가 되기도 했던 역사적 풍운아라고 할까.


그래도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풍파많은 정치인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문학인으로써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내려서는 길에 잠시 기념관에 들러본다.

송강 정철 일대기가 연보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서니 여러 유품과 다양한 기록물을 만난다.


사당에서 봤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깐깐한 선비 얼굴에서

풍운아적인 정치적 기질이 엿보이고

또 좋은 시를 많이 쓴 문학인으로써 고뇌도 담겨있는 것 같고.


전시된 은배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사고를 치는 송강에게

선조가 하루에 세잔씩만 마시라는 명과 함께 하사한 것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이 은잔을 늘려 키워서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ㅎ


초서체로 쓰여진 글씨를 보니

아주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필은 아닌 것 같다.


기념관 구경을 하고 나서 이번에는 숲길을 따라 묘소를 찾아간다.


가는 길은 사당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제법 가파른 고개를 올라서야 한다.


송강 정철 묘는 부인과 합장을 하고

아래쪽에는 둘째 아들의 묘소가 있다.


추석을 앞두고 아직 벌초를 하지않아서인지 풀들이 무성하다.


하긴 올 여름은 비도 많이 오고 무더워서

아직 벌초를 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송강 정철의 묘소를 보고 있으니

오래전 찾아본 해남땅 고산 윤선도 무덤이 생각이 난다.

그분 무덤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들고.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이기에

두분의 무덤을 찾아보게 된 것도 어쩌면 귀한 인연은 아닐까.

(윤선도 무덤 가는 길 - 고산의 은거지 금쇄동을 찾아서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81)


삶의 끝에는 늘 죽음이 있고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평등해 진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도 이처럼 문학의 자취로 그를 만날 수 있으니

문학의 위대함을 새삼 느껴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나저나 아직 담양에 있는 그의 이름을 딴 송강정을 가보지 못햇으니

언제 시간을 내서 찾아가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