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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김제 벽골제 - 쌍룡과 단야 낭자의 전설이 담긴 곳

by 마음풍경 2017. 7. 31.


김제 벽골제



전북 김제시 부량면



전북 김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벽골제와 지평선으로

특히 벽골제(碧骨堤)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시설로 교과서에서 자주 접하던 내용이지만

실제 이를 보기위해 현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약 19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벽골제 단지내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체험 시설이 있는 관광지로 조성이 되어 있다.


벽골제는 백제 시대에 축조된 제방으로 삼국사기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고

1963년에 국가사적 제11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벽골지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서니

잘 단장이 된 한옥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농경 사회의 중심인 소를 테마로 한 소테마 공원도 이색적이며

소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이 조각을 통해 표현이 되어 있다.


소테마 공원 옆으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단도 설치가 되어 있고.


단야루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단야낭자의 전설이 깃든 단야각을 만날 수 있다.


단야낭자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비련의 여인으로

벽골제에 남겨진 가장 숭고한 전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으로 발걸음을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과거 쌀을 저장했을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나무 통이 먼저 반겨준다.


그리고 전시실에서는 농경의 역사를 비롯해서

농경 도구 등 농경 사회 문화를 한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의 가장 기본 먹거리인 쌀이 그 가치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전시물은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 공간이 될 것이다.


쌀(米)을 한 톨 얻기 위해서는 농민의 손길이 88번 들어간다는 한자의 의미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3전시실에는 벽골제의 발굴부터

정치, 문화, 경제적 관점에서 벽골제의 의미를 보여준다.


박물관을 나와 1415년에 건립된 벽골제 중수비도 구경하고 다시 되돌아 간다.


벽골제는 통일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를 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관개수로롤 이용하면서 그 원형을 상실했다고 한다.


벽골제 제방은 모두 3km로 이중 장생거와 경장거의 2개의 수문만 남아 있다. 


물론 제방 전체에는 모두 5개의 수문이 있었지만

그중 장생거가 벽골제 단지내에 있다.


제방에 올라 바라본 초록의 풍경이 참 시원하게 다가온다.


9월에 이곳에서 지평선 축제가 있다고 하는데

누렇게 익어가는 주변 들판의 풍경이 참 장관일 것 같다.


제방을 내려서니 이곳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쌍룡의 조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쌍용 조형물은 제방을 훼손하려는 청룡과

이를 보호하려는 백룡이 살았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농사에 필요한 물은 전적으로 자연의 힘이었기에

물을 다스린다는 상상적 동물, 용에 대한 추구도 뿌리깊었다고 한다.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 앞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펼쳐지는

분수로 인해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그리고 끝으로 만나본 한옥 건물은 전통가옥 숙박 체험 및

민속 놀이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동헌내아, 이정직 생가, 그리고 망해사 낙서전 등

모두 3채의 한옥 건물이 있고 인터넷을 통해 숙박 예약이 가능하고.

(http://www.벽골제마을.com/)


짧은 시간이지만 벽골제 단지내 이곳 지곳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지평선 축제에 참여하여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