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역사,사찰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과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을 가다.

by 마음풍경 2017. 7. 28.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과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



전북 김제시 죽산면/부량면




김제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집필한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인 '아리랑'의 주무대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소설속의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는 '아리랑문학마을'과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소설의 집필 활동을 전시한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 있다.


처음에는 아리랑 문학마을과 아리랑 문학관이 동일하거나 혹은 같은 지역에 있는지 알았는데

각각 서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먼저 아리랑 문학 마을을 찾아본다.


이곳 아리랑 문학 마을은 2013년에 개관한 곳으로

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주재소 등 다양한 건물을 현실감 있게 재현을 하고

등장인물이 살았을 법한 초가집 등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먼저 면사무소나 우체국 등과 같은 근대 기관 건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한다.


면사무소는 근대 시대의 건물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특히 벽돌로 조성이 된 벽의 모습이 이채롭다.


내부에는 그 시절에 사용이 되었던 다양한 생활 물품들이

내부에 전시가 되어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해당 건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과 현장감이 있는 대사로 제공을 하고 있다.


주재소는 일제시대 순사가 사무를 보았던 곳으로

현재로 따지면 파출소나 경찰서와 같다.


일제치하에서 이곳은 일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신문하고 고문하는 곳이라

소설 속의 관련 이야기를 삽화와 함께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다양한 고문 도구들도 함께 전시가 되어 있어서

그때의 참옥하고 어두운 역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근대기관의 여러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정미소이다.


정미소 내부에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기계가

웅장하고 실감있는 모습으로 전시가 되어 있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바로 가동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릴 때 시골에 가면 이런 모습의 정미소를 쉽게 볼 수가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다시 만나보니 옛 추억이 새삼스럽다.


건물의 모습도 생각 이상으로 정밀하게 재현이 되어 있어서

정말 과거에 머물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한다.


옛 정미소를 나와 이번에는 우체국 건물로 향한다.


그 시절 우체국은 소식을 전달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편지를 사찰하는 것이 주된 임무 중 하나였겠지.


그리고 근대기관을 지나면 내촌과 외리마을 등

아리랑의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곳을 재현한 초가집을 만날 수 있다.


정말 이곳은 실제 사람이 살 것 같은 실재감이 있을 정도로

잘 지어지고 꾸며진 세트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길을 휘돌아 아리랑 문학마을의 가장 큰 건물인 하얼빈 역사 건물로 가는데

조그만 연못에 피어있는 예쁜 수련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본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이는 여린 코스모스도 편안한 시선으로 담아본다.

그나저나 아직 여름은 절정기를 향하는데 가을의 코스모스라니 ㅎ


잘 단장이 된 정원길을 따라 걸어가니

정말 실제 역과 같은 하얼빈역사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입구에는 일제의 수탈에 못견디고 만주로 떠난 사람들이 머물렀던

초라한 모습의 이민자 가옥도 재현이 되어 있고.


하얼빈 역사 내부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웠던 광복군 및 애국지사의

다양한 활동 내용이 전시가 되어 있다.


그중 애니메이션 삽화 형태로 소설 아리랑

전체 줄거리를 보여주는 내용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시작 장면부터 강렬하게 다가온다.


또한 추운 만주 땅에서 쓰러져간 광복군의 모습도 소설속 이야기에서 펼쳐진다.


나라를 잃고 정처없이 떠도는 민초의 모습은 마음 무겁게 다가오고.


광복을 맞이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의 땅에서 죽어간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슬픔이 차오르기도 했다.


비록 소설속 이야기라 해도 말이 소설이지 실제 있었던 역사이기에

그 시절 민초들의 한을 어찌 풀어야 할지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 바르게 세우기는 아직도 진행중이고..


영상물을 구경하고 역사 건물 뒷편으로 가니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재현이 되어 있다.


나라를 구하려 목숨을 바친 옛 선인들의 모습은 그저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현재도 친일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고

또 위안부 문제나 독도의 공방도 여전하다.

단순히 애국을 맹목적으로 내세우는 쇼비니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 땅의 국민으로써 어떠한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를 이곳에서 새삼 느끼고 깨닫게 된다.


아리랑 문학마을을 구경하고 나서 이번에는

약 5km 떨어진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으로 발걸음을 했다.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은 문학마을보다 10년 이른 2003년에 개관을 한 곳이다.


문학관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징게맹갱외에밋들"이라는 말이 새롭기도 하고

발음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니 "김제만경 너른 들"이라고 한다.


먼저 1 전시관으로 들어서니 대하소설 "아리랑"에 대한 내용이

시대적으로 구분되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 아리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곳의 내용만 자세히 읽어보면 대략적인 소설의 줄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조졍래 선생이 아리랑을 쓰기 위해 발로 뛰고 기록했던

활동 내용 및 물품들도 자세하게 전시가 되어있다.


특히 소설을 쓰기위해 사전에 수집한 내용을 삽화 형식으로 꼼꼼하게 정리된 자료를 보니

정말 대하 소설은 작가라도 해도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국은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 무슨 주의자들의 소유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만이 아니다. 미래의 설계가 또한 역사다."



전시관에서 만난 여러 자료를 보니

대하소설이란 쉽게 소설가의 머리속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고

취재부터 구상 그리고 집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장대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이야

더더욱 고증과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하기에

조정래 선생의 집필에 대한 의지가

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귀하게 여기기에

이룩할 수 있는 값진 문학의 성과가 아닐까 한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 이처럼 소중한 소설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참 큰 기쁨이자 고마운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태백산맥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대하소설 '아리랑'과 '한강' 또한 시간을 내서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된다.


과거 벌교을 갔을 때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가 본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태백산맥의 육필 원고처럼 아리랑을 쓴 원고도 참 그 의미처럼 높아 보인다.

(벌교 역사길 - 태백산맥 문학관과 현부자집, 홍교, 소화다리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92)


소설 아리랑의 시작을 여는 첫 페이지의 육필 원고는

비록 빛바랜 모습이지만 이제는 역사의 한 모습은 아닐까 한다. 



물론 그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원고의 모습 또한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며

김제, 평야, 아리랑, 그리고 조정래 라는 단어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라는 것을 문학관 문학마을을 보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값진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