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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봉화 승부역 오지길 - 승부역에서 석포역까지 눈길을 따라

by 마음풍경 2012. 12. 25.

 

봉화 승부역 오지길

 

승부역 ~ 아랫불 ~ 본마을 ~ 구두들 ~ 마무이 ~ 서남골 ~ 결둔 ~ 가시루봉 ~ 굴티 ~ 석포역

(13km, 3시간 30분 소요)

 

 

승부역 오지길은 경북 봉화 승부역에서 석포역까지

영동선과 낙동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약 12.4km의 오지 길로

특히 하늘도 세평이요. 땅도 세평이고, 꽃밭도 세평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인 승부역을 찾는 길입니다.

 

 

 승부역을 가기위해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있는 석포역에 도착합니다.

 

원래는 승부역 가는 길이라 석포역에서 걸어서 승부역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이곳으로 와야하지만

석포역과 승부역을 잇는 영동선 기차는 하루에 3차례 밖에 없고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기에

오늘은 일단 승부역까지 기차로 간 다음에 석포역으로 걸어서 되돌아올 계획입니다.

기차로 9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기차삯이 2,600원이니 비싼편이네요. ㅎ

 

오늘 걷는 길도 눈내리는 태백산을 걸으며 함께 했던

안도현 시인의 시 한편을 먼저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에서 가끔은 완행 열차를 타고

느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겠지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날렵한 고속철도의 속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느린 움직임들이 모여서 아름다움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작고, 느림이 세상의 중심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 안도현의 작고 느린 움직임 중에서 >

 

 

석포역을 떠난지 약 10여분만에 승부역에 도착합니다.

몇년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있는 오지 역인 태백의 추전역에 가본 이후로

오지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네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 - 추전역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47)

 

석포역에서 저를 데려다 준 기차는 다시 강릉을 향해 떠나갑니다.

다음 번에는 동대구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는 영동선 기차 여행을 해봐야겠네요.

 

그나저나 사람의 인기척도 없고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쌓인 한적한 역에 내리니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서 나만 혼자 덜렁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동선 기차는 경북 영주에서 강릉에 이르는 193.6km 거리의 기찻길로

험준한 산악 지대를 통과하는 특성상 승부역같은 오지역과 숨어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조금 한가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 눈꽃 열차를 타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요.

 

이제 승부역을 떠나 석포역까지의 약 30리의 눈쌓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소박하게 다가오는 주변 풍경만으로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이네요.

 

승부역 앞으로는 바로 북쪽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낙동강 발원지 : 강원 태백의 황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50)

 

그리고 가야할 목적지인 석포역이 승부역보다 북쪽에 있어서

오늘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요.

 

이곳 승부역의 명물인 출렁다리는 1박2일에 나오면서 유명해졌지요.

 

 구름이 낮게 깔려있어서 더욱 운치있는 오지의 풍경입니다.

도시의 아파트 숲에 갇혀서 살다보니 이와 같은 한적한 자연 속에 들어오면

저절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머리 또한 명료해짐을 느낄 수 있네요.

 

이곳 철로는 워낙 지대가 험해서 이처럼 외부 터널로 되어 있는 부분이 참 많더군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승부교를 건너갑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면 그냥 철길을 따라 걷고 싶은 충동이 느껴집니다.

 

애구~ 승부역 길은 승부교를 건너지 않고 그전에 만나는 언덕 삼거리에서 좌측 마을 쪽으로 가야했는데

다리와 기차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직진하는 바람에 잠시 알바를 했습니다. ㅎ

 

그나저나 알바를 하면 어떻습니까.

천천히 걷고 싶고 오래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인데요.

 

아랫불에서 처음으로 제대로된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이런 깊은 산골에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경외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짠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이야 협소하지만 그래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라도 있지만

옛날에는 외부와의 교통을 오로지 하루 두세차레 다니는 기차에 의존해야 하는 환경이었으니 말입니다.

 

그저 평범한 시골길이지만 주변의 모습은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풍경이 가득하네요.

하늘과 땅 그리고 산과 나무들이 서로 곡선과 직선으로

이러저리 이어지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니 잔잔한 풍경화를 그리고 싶어집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로 등을 돌린 뒤에 생긴 모난 거리가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 말이다.

 

                                    < 안도현의 '철길' 중에서>

 

 

철길을 만났다가 멀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걷습니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이곳으로 기차가 지날것 같아 잠시 기다려 카메라에 담아보네요.

 

길은 강물을 따라 함께 흘러가기도 하고 또 때론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기도 합니다.

눈이라도 소복 소복 내리면 더욱 아름다운 길이 될것 같은데 하늘은 흐리기만 하네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 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 류시화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산에서 비움의 의미를 배우고 강에서는 채움의 가치를 알게되는

소중한 자연의 이치를 길을 걸으며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다만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것인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내 자신에게 남는 문제이겠지요.

 

"철길은 서로 그리워하기 때문에 서로 몸을 맞대지 못하는 것이 기차의 숙명"이라고

안도현 시인은 이야기 했는데

기차길과 함께 가까이 걷다가도 어느때는 다시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모습에서

오늘 걷는 길도 철길의 모습을 닮은 것 같네요.

 

어쩌면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간격이 있어서 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에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아늑하고 한적한 길을 걸으며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시심이 가득해 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이 늘 시심으로 가득하고 여유로움으로 행복하다면

또한 아낌없이 주는 자연처럼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풍 제련소의 큰 굴뚝을 보니 석포역에 가까이 온것 같습니다.

 

한적한 오지길을 걷다가 갑자기 거대하고 번잡스러운 산업 시설을 만나니 왠지 끝이 좋지 않네요.

하여 출발점은 석포역에서 시작해서 승부역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겠는가.

 

                                        < 안도현 - 보이지 않는 끈 >

 

오늘 걸었던 승부역길 뿐만아니라 사람이 없는 오지의 땅을 걸을 때에 늘 느껴지는 것은

내 자신의 존재감과 함께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사람을 멀리하면 할수록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어쩔 수 없는 운명같은 현실..

그래서 제겐 늘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은 삶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