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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사찰

무주구천동 옛길 - 고즈넉한 겨울 산사 백련사를 찾아서

by 마음풍경 2013. 1. 13.

무주구천동 옛길

 

- 구천동계곡을 따라 백련사까지 -

 

무주구천동 주차장 ~ 무주구천동 옛길  ~ 안심대 ~ 백련사(회귀) ~

무주구천동 계곡 ~ 덕유대 야영장 ~ 주차장

(약 13km, 4시간 소요)

 

 

무주구천동 옛길은 구천동 입구인 삼공리에서

덕유산 계곡을 따라 백련사에 이르는 약 6km의 길로

소복한 겨울 눈에 쌓여 조용히 잠자고 있는

구천동의 33경을 감상하고

새 소리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사색하는 마음으로 걷는 소박한 길입니다. 


 

당초 9시에 개장하는 무주리조트의 관광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올라

향적봉과 중봉을 거쳐 무주구천동으로 내려서려 했으나

무주리조트 입구에서 부터 스키장 가는 차로 밀려서 결국 곤도라를 포기하고

삼공리에서 백련사까지 무주구천동 옛길만을 걷기로 합니다.

 

비록 덕유산 능선길은 아니지만 참 오랜만에 겨울 덕유산을 찾습니다.

찾아보니 2008년 겨울에 두번 가고 그 이후로 겨울에는 가지 않았더군요.

그나저나 그사이에 스키 인구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옛날에 왔을 때는 주차장만 조금 붐볐지 입구부터 차로 밀리지는 않았는데요.

 

겨울 덕유산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7년 겨울에

가족과 함께 설천봉에서 영각사까지 덕유산을 종주한 것입니다.

(덕유산 종주길 - 눈꽃길을 가족과 함께 걷다. :

http://blog.daum.net/sannasdas/9491931)

그 시간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 6년이 흘렀으니

꿈같은 시간이어서 그리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일까요. ㅎ

 

눈쌓인 편안한 길을 오르니 멋진 전나무 숲길도 걷습니다.

과거에도 여러번 이 길을 걸어서 내려갔을 텐데 왜

그때는 이 전나무 숲길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애정과 관심에 따라 같은 사물이라도

보이는 깊이나 정도가 다른가 봅니다.

 

이제 월하탄 입구에서부터

본격적인 무주구천동 옛길이 시작이 됩니다.

 

기존 구천동 탐방로와는 별개로 구천동 자연관찰로라는 이름으로

계곡 건너편으로 길이 복원되었지요.

 

명랑한 새소리를 들으며 살금살금

본격적인 겨울 숲길로 접어듭니다.

 

눈쌓인 겨울 나무를 보니 문득

박강수의 겨울 나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네요.

요즘 보기 드문 포크 가수인 박강수는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니아 팬을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참 고운 가수입니다.

저는 박강수의 노래가 편하고 다 좋지만

특히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을 가장 좋아하네요.

 

마른 가지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 고운 새소리
드높은 산중 어디에선가
내게 들려오는 작은 메아리

 

 

사람이 힘들면 사랑이 가면
내품에 안겨 눈물 흘리고
바람을 참고 가지에 남은 작은 잎을 보렴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나면
그 많은 생각 작아 질 거야
포기 할 수 없게
널 사랑할 수 있게

 

 

살아있는 모든 꿈들은
후회 없이 이뤄 질 거야
저 높은 산 아래
저 넓은 세상에

 

 

마음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멋진 겨울 계곡 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갑니다.

멋진 소나무가 드리워진 바위 틈 사이도 빠져나가야 하네요.

 

졸졸 흐르는 얼음장 밑의 물소리를 조용하게 들으며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옛길이 참 운치가 있습니다.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는 여름에 와서

웅장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피서를 해도 좋겠지요.

 

그나저나 겨울이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처럼 두터운 얼음이 언것을 보면 올 겨울이 참 추운가 봅니다.

 

마치 고드름이 석회동굴의 석순처럼

아래에서 위로 자라는 것 같은 모습이지요.

 

여름에는 세찬 물소리가 들리는 짙은 녹음 우거진 풍경이고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으로 붉디 붉은 모습이겠지만

이처럼 담백한 느낌이 나는 겨울도 참 고운 자연입니다.

 

세상 일도 그렇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자연도 겨울의 비움이 있어야 풍성함도 있고 수확도 있겠지요.

 

계곡길을 가는 중간 중간에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건너오기도 합니다.

그 덕분인지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참 아늑하고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참 상쾌합니다.

 

어쩌면 사람은 나이 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점점 편하게 주저앉으면서 조금씩 사그러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종의 의식하지 못하는 안락사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질식사다.

편하고 좋으면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에

삶은 산소가 아닌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버린다.

인생의 산소는 크고 작은 도전에서 나온다.

도전하면 스스로 삶의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삶의 산소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걸음으로 갈 수 있고 진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인생배낭의 잡동사니들은 대개 미련이거나 회한이거나

쓸데없는 마음과 증오이거나 정말 쓸모없는 시기이거나 후회다.

우리 인생길이 힘겨운 진짜 이유는 그런 잡동사니를 버리지 않고

인생배낭에 꾸역구역 구겨넣은 채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련, 후회, 회한, 미움, 증오, 시기 등의

찌꺼기 같은 잡동사니를 버리고

소망, 꿈, 도전, 화해, 사랑, 모험을 담아

자기의 인생배낭을 다시 꾸려야 하지 않겠나.

 

남은 내 인생의 배낭에서 비우고 채워야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소박하지만 겨울을 깊게 느낄 수 있는 길을 걷다보니

최근에 읽은 책인정진홍 교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자가 작년 봄에 900여 킬로미터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체험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요.

 

그나저나 무주리조트 곤도라로 가야할

등산객들이 전부 이곳으로 와서인지

옛길을 지나 백련사로 오르는 길로

접어드니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ㅎ

 

한적한 길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때론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며 걷는 것도 아름다운 동행이 되지요.

백련사 입구에 있는 일주문에 도착합니다.

 

당초 날이 풀릴거하고 했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붑니다.

그래서인지 하늘의 구름은 변화무쌍하고

푸른 하늘은 더욱 높게만 보이네요. 

 

천왕문을 통과하여 백련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찰에 가면 입구에서 사천왕을 늘 만나게 되는데

한번도 그 제작 과정을 TV를 통하거나 직접 본적이 없어서

그 거대한 사천왕 조각상은 누가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지가 궁금하더군요.

 

경내 입구에서 오래된 돌배나무가 반겨주네요.

봄에 배꽃이 피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풍경인데 비록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어도 고목에서 느껴지는 기품은 상당합니다.

 

풍경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대웅전 앞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지은 사찰이나

6.25때 소실되고 1962년 이후에 다시 지은 절로

덕유산에 있던 14개 사찰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은 절이라고 하네요.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동쪽 바로 아래에 자리한 백련사는

해발 9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주변 백두대간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네요.

 

개인적으로 절에 가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풍경소리로

어찌보면 다 같은 풍경이지만 절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도 풍경소리는 귀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소리이기에 그런가 보네요.

 

산사 앞 마당에 멋진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돌배나무에게

봄꽃 피는 날 새하얀 모습으로 만날 기약을 하며 백련사를 빠져나갑니다.

 

내려가는 길 또한 올라오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지만

겨울의 느낌이 가득한 계곡의 풍경을 보며

내려서니 여전히 아늑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그나저나 무주구천동 입구에서 자전거 길 안내와 시설들을 봤는데

아무리 4대강으로 자전거가 국가사업이 되었다고는 하나 유행도 유행 나름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국립공원에서 벌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참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도 힘들지 않고 좋은 길인데

누구의 발상인지 이런 길을 자전거를 타고

끙끙대며 간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쩝

 

 자연의 품속에 들어와서는 빠름보다는 느림을 배우고

분주함보다는 쉼을 배우고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숲길을 걸으며 지난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고요.

바쁜 세상을 살면서 지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올라오던 길과는 다르게 덕유대 야영장 길을 지나가는데

추운 날인데도 캠핑을 하는 분들이 참 많더군요.

덕유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야영장 중 하나이지요.

저도 작년부터 캠핑을 시작했지만 아직

이곳은 와보지 못했기에 올해는 꼭 와봐야겠습니다.

 

삼공리 주차장에서 백련사까지 왕복으로 약 13km의 무주구천동 계곡길을 걸었습니다.

당초 계획한 길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이 길과의 인연이기에 그리 되었겠지요.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멋, 삶의 맛은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되려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비록 덕유산 능선의 시원함과 눈꽃 풍경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때론 길을 걸으며 채우기보다는 비움의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인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조용히 비우고 싶을 때 걸으면 참 좋을 사색의 길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