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옛길
- 서산대사와 최치원 선생이 걷던 길 -
지리산 옛길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4.2km의 숲길 및 계곡길로
조선 중기 시대의 고승이며
임진왜란 때 승장인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이며
신라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사색했던 길입니다.
오전에 대성골을 따라 대성동 그집에서
맛난 산채 비빔밥을 먹고
https://sannasdas.tistory.com/13390028
지리산 대성동 오지마을길 - 대성골 그집 식당을 찾아서
# 대성골 그집은 2023년 3월에 의신마을의 산불로 인해 전소가 되어 현재는 의신마을에서 식당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지리산 계곡의 자연속 명물이었는데 이소식을 듣고 안타깝기만 하네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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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의신마을에서 신흥마을까지
지리산 옛길을 걷습니다.
아래마을인 신흥에서 의신 마을
출렁다리까지 걷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은 윗 마을인 의신에서
지리산 옛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삼정계곡도
최성수기라 피서객들로 붐비네요.
청학동 삼신봉 능선 아래 쪽
계곡풍경도 아늑하고요.
출렁다리를 건너니 지리산 옛길이라는
이정표가 외롭게 서있습니다.
숲길로 들어서자 넉넉한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제 마음에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지리'이기에
그 대상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데도
마치 내품에 있는 것처럼
가슴은 황홀하게 뛰네요.
그림같은 구름 능선과 초록의 물결,
그리고 예쁜 집이 어우러지니
마치 알프스 자락 마을의 풍경을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지리산 마을과 마찬가지로
의신마을도 민박이나 펜션이 들어서서
제법 복잡한 마을이 되었지요.
마을 뒤로 펼쳐지는 덕평봉과 칠선봉의
지리 주 능선은 구름에 쌓여있습니다.
이 오솔길은 서산대사가 의신마을에 있는
원통암에서 출가한 역사를 지닌 길이지만
화개장의 봇짐장수가 화개재와 벽소령을
넘기위해 다니던 삶의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6.25때 토벌대와 빨치산이 다니던
가슴아픈 역사를 지닌 길이고요.
의신마을에서 삼정을 지나 빗점재로 가면
남부군 사령관인 이현상의
최후 아지트와 사살된 장소가 있지요.
지금은 빗점재가 국립공원 출입통제
구역이라 갈 수는 없습니다.
지리산 옛길은 서산대사 옛길로 불리었으나
국립공원에서 걷기 길을 새롭게 조성하면서
지리산 옛길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의신 마을에 있었던 의신사와
신흥 마을에 있었던 신흥사를 연결하는
서산대사가 걷던 암자길이었고요.
지리산 옛길을 조금 걷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리산 육모정 구룡계곡에 갔을 때
만났던 비오던 풍경이 떠오르네요.
https://sannasdas.tistory.com/13389630
지리산 육모정 구룡계곡 길 - 지리산 둘레길을 이어걷다.
지리산 구룡계곡 전북 남원군 주천면 호경리 남원 육모정 구룡계곡 ~ 삼곡교 ~ 구시소 ~ 유선대 ~ 지주대 ~ 비폭등 ~ 구룡폭포 ~ 구룡사 ~ 소나무 쉼터(지리산길) ~ 사무락 다무락 ~ 구룡사 ~ 육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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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처럼 피어나는 추억들은
빗소리에 실려 애잔하게 밀려오고
촉촉하게 젖어가는 신발에는
삶의 무거움이 깊어집니다.
사는게 때로는 단순하다가도
또 한없이 복잡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의미를
비내리는 숲길을 걸으며 느껴보네요.
옛길은 편안한 숲길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가파른 길도 넘어가야 합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리고
계곡 정취는 아득하게 다가섭니다.
손에 잡히지않지만 마음으로 보이는
사랑의 대상이 이 느낌은 아닐런지요.
비의 조화때문인지 지리산의 풍경은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네요.
아~~ 황홀합니다.
그저 바라만봐도 좋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기분이겠지요.
계곡에서 멋진 풍경도 만나고
다시 옛길을 이어걷는데
지리산 옛길 스토리텔링의 정점인
서산대사 의자 바위를 만납니다.
서산대사의 역사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도술을 부렸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는데 범종을 왜 하필
의자로 바꾸었을까요.
세차게 내리던 비는 소강 상태를 보이지만
내린 비로 인해 작은 계곡에서도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계곡과 폭포 소리에 귀가 호강하고
포근한 흙길에 몸과 마음이 편해집니다.
좋은 길은 걸으면 걸을 수록
행복은 커지는것 같네요.
탐스럽게 익어가는 밤송이를 보며
가을의 풍요로움을 생각해봅니다.
나나 무스끄리의 Try to remember라는
노래가 떠올라 중얼거리네요.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비와 바람에 땅에 떨어져 버린
밤송이들을 보니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이 납니다.
튼실한 밤송이를 만들기 위해
희생이 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네 삶에서는 결실은
무엇이고 또한 희생은 무엇일까요.
영화를 보고나서도 이런 저런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데
그 해결이 자연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제 스스로 반문해 봅니다.
살다 지쳐 자주 팍팍한 날이면
세상사 낡은 외투 훌훌 벗어던지고
화개동천 지리산 옛길로 가자
세이암 맑은 물에 두 귀를 씻고
연초록 산바람에
백태 낀 눈동자를 헹구자
저마다 외로운 구름처럼
한 마리 보리 은어의
첫 마음으로 거슬러 오르자
아직 어린 새색시
첩첩 울며 시집오고
의신마을 코흘리개들
가갸거겨 배고픈 쇠점재
저 홀로 버림받은 사람도
아랫도리 후덜덜
화개장터 소금장수도
어금니 꽉 깨물고
넘던 사지넘이고개
날마다 서산대사는
입산출가의 자세로 오가고
비운의 혁명가 화산 선생은
빗점골로 들어가
마침내 죽어서야 돌아왔다
살다 지쳐 자주
침침한 날이면
저자거리 빛바랜
안경을 벗어던지자
감감바위 아래
그 무거운 봇짐일랑 내려놓고
금낭화 피면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그냥 금낭화가 되자
산나물 조금 안다고
뜯지도 캐지도 말고
박새 초오 지리강활 동의나물
여차하면 독이 되는
오욕의 풀일랑 키우지 말고
그저 가만가만
보리은어의 눈빛으로
착한 다람쥐 꼬리처럼
따숩게 두 손을 잡자
그래도 못다 한
속울음이 남았다면
벽소령 희푸른 달빛을 보며
대성폭포처럼 그예
대성통곡을 하자
그리고 돌이끼처럼
다시는 울지 말자
그 누구라도 외로운 산신령,
서러운 신선
온종일 의신동천 물소리로
내장을 헹구러 가자
모세혈관마다 연초록 바람이 이는
지리산 옛길로 가자
지리산 시인인 이원규의 "지리산 옛길,
화개동천 신흥-의신 십리길"이라는
시를 읽다보니 길의 마지막이 보입니다.
의신마을에서 신흥마을까지
4.2km 지리산 옛길을 걸었네요.
이 들머리를 찾으려면
쌍계사 입구를 지나
칠불사로 가는 삼거리에서
의신방면 오른편 신흥교를 건너
길목 산장을 막 지나자 마자
왼편으로 들머리가 있습니다.
지리산 옛길을 마치고
화개초교 왕성 분교로 가니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나무는 푸조나무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지팡이가 커서 되었다는 전설이 있네요.
이나무 앞 화개천 계곡에는 고운 선생이
세상에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바위인지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신흥마을 삼거리에서 지리산에서의
걷기를 마무리합니다.
산행시간만 4.2km에
2시간 정도 걸린것 같네요.
지리산은 언제 어느때와도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줍니다.
힘든 마음이면 달래주고
기쁜 마음이면 북돋아 주고
또 슬픈마음이면
함께 해주는 그런 산이지요.
비는 그치지 않고 산 능선
구름만이 다가서네요.
마지막으로 지난 6월에 입적을 하신
범능 스님의 "먼산"이라는
노래 한구절로 마무리 합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국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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