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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안개 자욱한 운장산 임도 숲길을 걷다.

by 마음풍경 2010. 7. 4.

 

운장산 임도 숲길 및 갈거 계곡

 

운일암 반일암(전북 진안군 주천면) 칠은교 입구 ~ 운장산 임도길 ~ 

운장산 북두봉 능선  ~ 운장산 자연휴양림(진안군 정천면)

(약 15km,  순수 걷기 4시간 30여분 소요)

 

 

장마철이라 습기도 많고 날도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됩니다.

이런 날은 시원한 숲과 계곡이 있는 길을 걷는다면 좋겠지요.

 하여 "인도행" 걷기 동호회 분들과 함께 대전에서 그리 멀지않은 운장산 기슭으로 갑니다.

대전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그쳤었는데 이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인지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네요.

10시경에 운일암 반일암의 칠은교 다리를 건너서 임도 길 걷기가 시작됩니다.

 

과거 운일암 반일암에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참 깊은 계곡처럼 느껴졌었는데

여러 편의 시설이 들어선 요즘은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더군요.

70여년 전만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 뿐이었다 해서 운일암이라 했고,

아주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이라 불려진다고 할만큼 참 좋은 계곡입니다.

 

이곳 임도길 들머리는 샬롬 수양관 안내도를 따라 오면 찾기가 쉽습니다.

 

운장산 능선은 회색빛 안개에 황홀하게 감싸여 있네요.

 

아침 비를 머금은 잎의 색감도 참 선명하고요.

 

조금 올라서니 상수도 관리 시설 보호 철책문이 길을 막아 잠시 망설였으나 철책문이 열쇠로 잠겨있지는 않더군요.

하여 문을 통과하고 철책을 따라 길을 이어갑니다.

 

흙길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본격적인 임도길 걷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작은 규모의 저수지도 나옵니다.

 

산 봉우리들은 온통 새하얀 구름 모자를 쓰고 있네요.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있는 흙길을 걷습니다.

드문 드문 새소리만이 들리는 시간이네요.

 

습기가 높아 몸은 쉽게 땀에 젖지만

그래도 가슴으로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줍니다.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만나는 자연의 소박한 풍경 하나 하나가 다 귀하고 고맙지요.

 

자연의 모습은 그냥 일상적인 느낌으로 바라보면 큰 화려함이나 색다름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늘 같은 모습처럼 보여도 그곳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지요.

다만 그 자연의 삶이 우리네 처럼 호들갑스럽지 않기에

호젓한 길을 걷는 마음처럼 애정의 눈길을 가지고 자세하게 바라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40여분 걸었나요. 작은 계곡을 만나게됩니다.

 

산이 깊고 높아서인지 작은 계곡이지만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 개울가에 아주 고운 색의 비비추 꽃망울을 만났습니다.

어찌보면 꽃이 활짝 핀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네요.

 

비비추는 "좋은 소식, 신비로운 사람,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트리겠네요.

 

이제 안개 자욱한 숲길을 걷습니다.

 

안개낀 저 길을 휘돌아가면 또 어떤 고운 풍경이 저를 반겨줄까 기대도 되네요.

 

숲길위에서는 사람의 모습도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피어나는것 같습니다.

 

안개낀 숲길을 걷는 시간은 눈보다는 마음이 앞서기에 때론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하지요.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중얼거려 보기도 하고

 

그 노래가 배경 음악이 된

이명세 감독의 2007년 작품인 "M" 이라는 영화도 떠오르고요.

그중 기억나는 대사 한구절...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슬픈 영화 말고 재미있는 영화보더라도 문득 내 생각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어찔하고 뒤뚱거리는 우리네 삶의 모습도 이처럼 늘

욕망이라는 혹은 욕심이라는 안개속을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안개 자욱한 운장산 숲길을 걸으며 산다는 것이 무언지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되네요.

물론 아주 무겁지는 않고 약간만, 아주 약간만 무겁게요. ㅎㅎ

 

 가던 길 도중에 함께한 분들과 12시 30분경부터 1시까지 점심을 하고 다시 안개 길을 걷습니다.

 

고도를 높혀갈 수록 안개는 더욱 진해집니다.

 

 얼마만큼을 가야 능선이 나오는지도 보이지 않고 그저 발 앞에 보이는 길만을 따라 걷습니다.

 

ㅎㅎ 운장산 능선 종주 이정표가 보입니다.

 

 몇년전 이곳 능선길을 종주할때에는 조금 오래된 나무 표지판이 있었는데 이제는 깔끔하게 교체가 되었네요.

날이 좋다면 이곳에서 700미터 거리에 있는 복두봉까지 다녀올 수도 있는데 오늘은 가봐야 안개속이겠지요.

 

여튼 1시 30분경에 운장산 능선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으로 따지면 이곳이 정상이겠네요. ㅎ 

 

구름을 따라 넘어가는 시원한 바람에 더운 몸도 식히고 이제 하산을 시작합니다.

 

이곳 임도는 오를때 만난 길보다 시멘트 포장이 많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도 숲길을 따라 이어지는 걸음걸이는 가볍게만 합니다.

 

여름 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함박꽃도 만났습니다.

활짝 핀 꽃 옆으로 곱게 시들어 가는 꽃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피어나는 것도 혹은 시드는 것도 모두 삶의 일부분이기에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겠지요.

 

그리고 산딸나무도 만나고요,

모두다 여름에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친구들입니다.

 

근데 이 꽃도 산딸나무 같은데 꽃잎의 끝부분이 길죽하지를 않고 동그랗지요.

 

꽃잎이 길죽한 것보다 왠지 더욱 친근감이 갑니다.

저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귀여운 얼굴처럼 보이니요.

 

비가 와서인지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아주 세찹니다.

 

시원하고 멋진 계곡의 풍경은 계속 이어집니다.

한 여름철에는 계곡 트레킹을 해도 좋겠네요.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눈을 감는 대신 마음의 귀를 열어 그 소리들을 조용 조용 담아보네요.

 

아스라한 능선의 모습도 배경삼아..

 

 

참 좋은 자연을 친구 삼아 걷는 길에는 외로움이 없지요.

 

청량제와 같은 시원함을 가득 던져주는 친구가 그리 흔할까요.

 

때론 모르는 열매를 만나면 무슨 열매일까 고개를 갸우뚱 해보기도 하지만 그 이름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저 그 자연이 지니고 있는 고운 빛깔과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담번에 혹 산길에서 만난다면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면 되겠지요.

그게 우리가 바라는 인연은 아닐까요.

 

스며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안도현 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인 "연어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지요.

 

 

강에서 만난 수달이 연어에게 해주는 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랑해야지. 우리는 물을 사랑해. 그래서 물로 뛰어들지 않고 스며들어."

 

 

 그리고 물든다는 의미도 그 책에서 새삼 새롭게 느껴봅니다.

 

"물든다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만나는 거야. 마음이 마음을 만나 따뜻해지는 거지."

 

 

"우리는 그렇게 스며든 거야.

마치 가느다란 끈이 강에서 바다로 길게. 길게 이어지듯,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알고 있었어. 그것은 네가 앞서간 길이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지.

 그래. 우리는 머지않아 만날 거야."

 

이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무엇일까요.

그 인연속에 어떻게 스며들게 될까요.

 

"물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

저 동무가 내게 관심이 있구나, 하고 어느 순간에 알아챌 때가 있잖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야.

그건 그 동무와 너의 사이에 연결된 끈이 따뜻해졌다는 뜻이야.

만약에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동무하고 너 사이에 연결된 끈이 차가워졌다는 증거지."

 

하나의 길은 새로운 길로 이어지고

또 그 길을 걷다보면 또 다른 길을 만나게 되는데

각각의 길위의 인연은 어떤 끈으로 연결이 되는 걸까요.

 

인생 사는 것이 그렇듯이 명확한 결론은 알 수가 없겠지만

아름다운 숲길을 걸으며 문득 떠오르는 인연이라는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네요.

 

숲 길에서의 시간이 너무 황홀해서일까요.

하산길이 너무 짧게만 느껴집니다.

3시 조금 넘어 운장산 휴양림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운장산 휴양림내 계곡의 풍경도 여느 계곡 풍경 못지않게 좋습니다.

이곳에서 온몸을 풍덩 담그고 알탕을 해보았네요.

물론 옷은 입고서요. ㅋㅋ

 

계곡에 흐르는 물을 찬찬히 보고 있으니 물의 고향은 산인것 같습니다.

이 계곡의 물은 강으로 흐르고 또 바다로 흘러가서 나중에 다시 비가 되어 산에 내리겠지요.

요즘 강이 4대강 사업으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다는 자연의 본질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것이 세상의 순리인데

몇몇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강이 아파하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운장산 휴양림에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대전으로 오는 길에

잠시 용담호 구경을 했습니다.

 

전북 장수의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군산 앞바다를 향해 흘러가겠지요.

 

부디 가는 길이 평온하길 기도해봅니다.

 

가볍게 다녀온 운장산 임도길 걷기였습니다.

황홀한 느낌의 안개 숲속을 걷는 행운도 있었고요.

 

계곡에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안도현 시인의 강이라는 시가 생각나서 끝으로 적어봅니다.

 

너에게로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