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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강변,해안

주흘산 부봉 설경길 - 문경새재를 따라 눈길을 걷다.

by 마음풍경 2013. 12. 14.

 

주흘산 부봉(916m)

 

 

고사리 주차장 ~ 조령3관문 ~ 동화원 ~ 6봉(부봉) ~ 조령2관문 ~ 동화원 ~ 고사리 주차장

(약 12km, 4시간 소요)

 

 

주흘산 부봉은 영봉이 있는 주흘산 주능선에서 북서쪽으로 벗어나 있는 여섯 봉우리가 이어지는 산으로

특히 조령 3관문인 조령관과 2관문인 조곡관을 따라 이어지는 문경새재와 6봉을 연결하는 길은

편안하면서도 주흘산과 조령산 그리고 멀리 월악산까지 바라보이는 조망이 멋진 길입니다.

 

 

 

겨울 산행의 색다른 묘미는 새하얀 눈이 쌓인 설경과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하게 탁 트이는 조망이겠지요.

오늘 자연과의 만남은 과거에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로 많은 인연을 맺은 괴산 고사리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이곳 마을은 주변에 신선봉과 주흘산, 조령산 등 유명한 산이 많아서 자주 찾았던 곳이네요.

(괴산 신선봉 암릉길 - 마역봉과 깃대봉을 이어걷다. : http://blog.daum.net/sannasdas/10512456)

 

소복 소복 눈쌓인 길을 올라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문경새재 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아주 눈에 익숙한 조령 3관문을 지나게 됩니다.

좋은 인연이란 많이 만나는 것보다는 가끔씩이더라도 오래 오래 이어지고 늘 변함없는 것이겠지요.

 

3관문 조령고개를 넘어 동화원 갈림길에서 부봉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지난 가을 새하얀 모습으로 피었던 억새도 이제 누렇게 시들었지만 그 정취는 여전한것 같습니다.

 

눈쌓인 자작나무 숲길을 걷다보니 지난 가을에 다녀온 횡성의 자작나무숲 미술관이 떠오르네요.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 길 - 빛과 색이 만든 동화속 세상 : http://blog.daum.net/sannasdas/13390067)

 

문득 사는게 아늑하고 마치 번지 점프를 하는 기분이 들 때

"나 아닌 것들을 위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날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험해지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생각이 납니다.

저에게는 자연과 함께 나눈 아스라한 추억들이 스스로 험해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되겠지요.

 

새하얀 눈을 밟으며 능선으로 오르니 북쪽으로 신선봉과 마패봉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얼마 올라서지 않은 것 같은데 조령3관문이 발아래 보이네요.

제 눈앞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풍경은 아름다운 동양화를 옮겨놓은 듯 한없는 희열이 되어 펼쳐집니다.

 

또한 조령산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의 멋진 자태도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인간은 행복 절반과 불행 절반을 숙명적으로 안고 사는 운명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이 자연의 모습처럼 그냥 좋다 좋다 하면서 사는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 하네요.

 

제법 가파른 길을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서니 부봉 능선이 나타납니다.

주변 조망이 너무나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걷게 되네요. ㅎ

 

부봉 6봉 정상에 올라서니 건너편 조령산의 넉넉한 능선 모습도 온전히 볼 수가 있습니다.

(괴산 조령산 조망길 - 이화령에서 조령산자연휴양림까지 : http://blog.daum.net/sannasdas/10609877)

 

북동쪽으로는 월악산 영봉 능선의 모습도 손을 뻗으면 바로 다가올 정도로 날이 맑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아늑한 능선을 따라 월악산까지 걷고 싶네요.

 

물론 남쪽으로는 부봉의 주능선 역할을 하는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1106m)도 한없이 이어집니다.

그나저나 주흘산을 마지막으로 가본지도 참 오래된것 같은데

주변의 멋진 산들에 둘러쌓인 부봉에 오르니 마치 지난 산행 앨범을 한장 한장 펼쳐보는 기분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고 싶어요.

 

 

아침부터 눈이 와

내리는 눈송이들을 따라가 보며

당신이 더 그리운 날

그리움처럼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며

뭔가, 무슨 말인가 더 정다운 말을

드리고 싶은데

자꾸 불어나는 눈 때문에

그 말이 자꾸 막힙니다.

 

 

<김용택 시인의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리는 눈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학창 시절때는 눈이 내리면 LP판을 통해 들리는 아다모의 Tombe La Neige라는 노래를 들으며

무언가 알 수 없는 막연한 그리움과 가슴속이 저리는 기다림을 떠올리기도 했고요.

어쩌면 사계절의 산중에서도 겨울 산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연유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너무나 멋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기에 정상을 내려서기가 싫어집니다.

하지만 산행이란 것이 정상을 내려서는 하산도 정상을 오르는 등산 못지않게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하기에

다음번의 인연을 기약하며 눈꽃 세상을 친구삼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섭니다.

 

부봉 6봉 정상을 내려서서 새하얀 눈길을 따라 걷습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순백의 세상을 제 발자국이 더럽히는 것은 아닌지하는

기우가 생길 정도로 이곳은 인간의 세상이 아닌 자연의 세상이네요.

 

부봉 6봉의 웅장한 모습은 북한산의 노적봉을 많이 닮은것 같지요.

 

우리네 사는 세상도 이와같이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을 절반만이라도 닮으면 좋을텐데

반대로 자꾸만 황폐해지고 아둥바둥 사는것 같아서 때론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이제 2관문인 조곡관으로 내려서서 다시 조령3관문을 향해 편안한 길을 걷습니다.

문경새재 길을 마지막으로 걸었던 기록을 찾아보니 2010년 7월 마지막 날에 찾았었네요.

(한여름에 걸어본 문경새재 과거길과 거문골 계곡 :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626)

너무나 자주 왔던 길이라 그저 세상의 눈풍경 속에 제 자신을 편안하게 담궈봅니다.

 

참 편하고 아름다운 자연속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스며들다보면 사는것이 뭐 별건가하는 생각과

그래도 사는 것이 참 팍팍하구나 하는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느끼곤합니다.

행복과 불행이 늘 공존하는 세상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가장 좋은 것이 술 한잔이겠지요.

정호승 시인의 "술 한잔"이라는 싯구를 읊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