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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거닐다

섬을 거닐다 : 여수 하화도 - 봄바람 맞으며 걷는 꽃섬길

by 마음풍경 2014. 4. 12.

 

하화도

 

- 꽃섬길 -

 

 

전남 여수시 화정면

 

 

하화도 선착장 ~ 휴게정자1 ~ 휴게정자2 ~ 순넘밭넘 구절초 공원 ~ 큰산 전망대 ~

깻넘 전망대 ~ 큰굴 삼거리 ~ 막산 전망대 ~ 애림민 야생화 공원 ~ 선착장

(약 5.2km, 3시간 소요)

 

 

하화도는 여수 앞바다에 떠있는 섬으로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숲길을 비롯하여

바다 조망이 환상적인 해안절벽길 및 아늑하게 이어지는 산 능선 등

아주 다양한 느낌을 간직한 꽃섬길이 있는 섬으로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다 잊을 수 있는 섬이라고 표현한 영화 "꽃섬"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하화도는 여수 앞바다에 떠있는 365개 섬중 하나로

몇년전에 섬 둘레를 도는 약 5km의 꽃섬길이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하화도 배편은 여수항과 백야도 선착장에서 출발하지만 백야도 선착장이 가까워서 이곳을 많이 이용합니다.

당초 낭도까지 가는 11시 30분 정기선(http://www.sa-do.co.kr/)을 타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하화도만 가는 직항 배가 바로 있어서 더 편리하게 갑니다.

 

배는 10시 20분에 백야도 선착장을 출발하여

바다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하화도를 향해 나아갑니다.

 

화도는 상화도와 하화도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하화도는 아주 아담한 모습의 상화도와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층을 이룬 회색빛 구름이 낮게 깔려서인지 더더욱 미지의 섬으로 향하는 기분입니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 "꽃섬"에서 나오는 말처럼

그곳에는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해주는 파라다이스가 있는 걸까요.

 

"이건 비밀인데요.

꽃섬에 가면요,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다 잊을 수 있대요"

 

 

정기선을 타고 다른 섬을 들러오면 40여분이 걸리는데 바로 오니 20분만에 하화도에 도착합니다.

 

하화도는 과거 "꽃섬"이라는 영화 촬영지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KBS 1박 2일과 SBS 런닝맨의 무대이기도 했지요.

 

특히 몇년전에 하화도 꽃섬길이 조성이 되어서 길 걷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하화도 지도를 보니 섬의 모습이 복조리나 하이힐을 많이 닮은 것 같네요.

오늘은 마을을 원점으로 왼편 길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길을 걸어야 겠습니다.

 

하화도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1592)에 뗏목을 타고 피난을 가던

인동 장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하화도 주민은 모두 20여 가구로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들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길주변에 핀 화사한 봄꽃들과 바다 풍경을 배경삼아 본격적으로 꽃섬길을 걷습니다.

 

먼저 아득한 파도소리와 정겨운 새소리만이 들리는 편안한 해안 산책길이 이어집니다.

 

백야도로 나가는 배가 3시 30분으로 약 5시간 가까운 시간이 허락이 되기에

주변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합니다.

 

숲으로 들어갈 수록 섬에 온 것 같지 않고 마치 아늑한 산속을 걷는 기분이네요.

 

작은 고개로 올라서니 섬 전체가 한눈에 조망이 됩니다.

섬을 따라 길게 펼쳐지는 해안선의 풍광이 참 편안하게 다가오네요.

 

올 봄은 꽃들이 너무 빨리 피어서 동백꽃도 다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떨어지지 않는 동백꽃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동백꽃이 핀 이 길을 바라보니 지심도의 느낌이 나더군요.

(섬을 거닐다 : 거제 지심도 - 붉은 동백꽃 가득한 섬,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364)

 

내 무거운 짐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

 

 

결국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

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

비틀거리면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 버리는

 

 

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

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했으면 좋겠네

 

< 정호승 - 꽃향기>

 

 

즐겁고 괴롭고 때론 행복하고 불행했던 모든 지난 기억들이

모두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난다면 참 좋겠네요.

 

포근한 숲길과 동백꽃 길을 벗어나니

멋진 해안 절벽이 바라보이는 해안길로 접어듭니다.

 

과거 사도를 여행하며 돌아올 때 하화도의 멋진 해안 풍경을 보며

꼭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어 찾게 되었습니다.

(섬을 거닐다 : 사도 ③ - 공룡의 흔적에서 돌아오다,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71)

 

편안하게 펼쳐지는 능선너머로 상화도의 모습이 겹쳐 보이네요.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올해는 봄이 너무나 빨리 와서 또 빨리 가는 기분이 들지요.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다보니 첫번째 정자에 도착합니다.

 

정말 이 길을 걸다보면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함께 화사한 꽃들이 함께하니 슬픔과 불행이 끼여들 여지가 없겠네요.

 

해안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로 넘어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그나저나 이 섬에 올때만 해도 비가 올것 같이 흐렸는데 어느새 파란 하늘로 변했네요.

 

바다 건너편 개도의 모습과 함께 주변 해안 조망도 활짝 열리고요.

 

악착스러운 삶보다는 편안한 삶을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듯이

길 또한 험하고 어려운 길보다는 이처럼 편안한 길을 걷는 것이

더욱 평화로운 마음이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한적한 풀밭에 길게 누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눈뜨면

눈부시어요 당신 모습

저 하늘처럼 눈부시어

살며시 눈을 감고

햇살을 얼굴 가득 받을 때

꼭 당신의 얼굴이 내게로

환하게 포개져 와닿는 것 같아요

 

 

하늘이 파란 날

한적한 풀밭에 누워

눈떴다 감았다 보고 싶은 당신

당신 생각으로 두 눈을 꼭 감습니다.

 

< 김용택 - 하늘이 파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고 돌아서니

아담한 작은 공원이 나옵니다.

 

지도를 찾아보니 순넘밭넘 구절초 공원이네요.

순넘밭넘은 옛날말로 순이라는 사람이 넘나들던 밭이 있던 곳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구절초 새하얗게 피는 가을에 오면 참 좋겠다 생각하면서

오늘은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그 마음을 대신합니다.

 

잠시 가던 길을 벗어나 절벽 바위로 나서니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종착역에 내리면 술집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푸른 술집이 있다

술집의 벽에는

고래 한 마리 수평선 위로 치솟아오른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종착역이 출발역이 되기를 평생 기다린다

 

 

나는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

술집의 벽에 그려진 향유고래와 술을 마신다

매일 죽는 게 사는 것이라고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고래가 잔을 건넬 때마다 술에 취한다

 

 

풀잎 끝에 앉아 있어야 아침이슬이 아름답듯이

고래 한 마리 수평선 끝으로 치솟아올라야

바다가 아름답듯이

기차도 종착역에 도착해야 아름답다

사람도 종착역에 내려야 아름답다

 

< 정호승 - 종착역 >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보다는 시를 더 좋아하는데

아마도 자연과 사진 그리고 시의 간결하고 담백한 느낌이 서로 많이 닮아서 인것 같습니다.

하여 시는 때론 제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또 제 감성을 담아주고 표현해주는 그릇이 되기도 하지요.

 

큰산 전망대는 하화도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그만큼 조망 또한 시원하게 탁 트여있네요.

 

바로 앞에 보이는 개도 너머로 금오도의 모습도 살짝 비칩니다.

개도 막걸리도 맛나고 금오도 막걸리는 더더욱 맛이 있지요.

섬은 물이 귀한 것이 보통인데 이 두 섬은 수량도 풍부하고

물 맛이 참 좋아서 막걸리 맛도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이곳 해안 나무 데크길을 걷다보니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걸었을 때 많이 보았던 길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섬을 거닐다 : 금오도 ② - 비렁길 : 해안절벽 생태길 비경,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706)

 

진달래 하면 왠지 산이 익숙하지만

이처럼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있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새롭습니다.

  

깨를 심었던 밭으로 가기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라는 뜻의 깨넘 전망대를 지나니

건너편에 섬의 끝 부분인 막산이 보입니다.

 

하나의 섬인데도 이곳 막산쪽은 수직 절벽으로 이어져서 마치 다른 섬처럼 느껴지네요.

 

큰굴 삼거리를 지납니다.

막산을 한바퀴 돌고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하지요.

 

깎아지른 해안 절벽 사이에 위치한 큰굴은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어서

예전에 밀수꾼들이 밀수품을 숨겨놓았다고 하더군요.

 

막산의 숲길을 걷다가 잠시 해안으로 빠져나가니

건너편에 아주 작은 섬인 장구도가 나옵니다.

 

바위에서 바라보는 해안 풍경이 참 편안합니다.

잔잔한 바다, 잔잔한 하늘, 그리고 잔잔해지는 제마음까지 모든 것이 다 평화롭네요.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 낮잠 한숨 자고 싶어집니다.

과거에 외연도 누적금 해안 바위에서 낮잠을 잔 기억이 떠오르네요.

자다가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잘못했으면 그곳에 갇힐뻔한 추억까지도. ㅎ

(섬을 거닐다 : 외연도 ② : 사랑나무와 해안 풍경,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454)

 

다녀온 길에 대한 추억이 이렇게 하나 하나 쌓이다보면

나중에는 그 추억만 먹고 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산책로로 돌아와 막산 전망대를 향해 데크길을 올라서는데

등뒤로 펼쳐지는 해안 풍경이 참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막산 전망대에서 잠시 주변 풍광을 즐겨봅니다.

바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누리고 싶네요.

 

막산 전망대를 지나니 건너편 절벽바위 풍경이 멋진 작은 휴식처가 나오네요.

 

아직 배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이곳에 배낭을 풀고

주변 조망을 바라보며 점심겸 간식을 하며 휴식을 취합니다.

 

전망대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큰굴은 배를 타고 가까이 가보고 싶고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 마을을 향해 길을 걷습니다.

높낮이가 있는 해안 절벽길을 걷다가 다시 포근한 숲길이 이어지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벚꽃이 피어있는 숲길을 빠져나가니 마을이 바라보이는 해안길이 나옵니다.

 

애림민 야생화 공원에는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습니다.

 

하화도에서 꽃섬이라는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난간의 기둥에도 꽃 그림이 그려져 있고요.

 

야생화 공원 옆에 있는 화장실은 제가 섬이나 길 걷기를 하다가 만나본 화장실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시설이 잘되어있는 곳이네요.

 

속삭이는 듯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을로 향합니다.

 

 당초 하화도에 올 때 꽃섬 식당에서 점심을 하려했는데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간식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조금 출출할 것 같아서 선착장 입구에 있는 슈퍼에서 컵라면을 하나 사서 먹습니다.

컵라면에 김치 포함해서 2천원이고요.

 

식사를 마치고 벤치에 기대어 편안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봅니다.

평화롭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기분이겠지요.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란 생각

물컵 속 반 넘게 무릎이나 꺾인 나무젓가락이란 생각

길게 미끄러져버린 검정 미역 줄기란 생각

 

 

그러다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저 연보랏빛 산벚꽃 산벚꽃들 아래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자

 

온통 세상의 중심이게 하는

 

<김경미 - 다정에 바치네 >

 

 

아직 배가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마을을 산책해 봅니다.

하화도는 소불이라고 불리는 부추가 유명해서인지 빈집 마당마다 소불이 가득 자라고 있습니다.

저도 라면을 먹을 때 지나가던 주민분이 바로 만든 소불 겉절이를 주어서 먹어보니 참 부드럽고 감칠 맛이 있더군요.

 

그나저나 이곳에 사시는 주민분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고 빈집들도 많던데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이 아름다운 섬이 어찌 될지 걱정도 됩니다.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다 잊을 수 있는 섬이라는 꽃섬, 하화도.

꽃섬길을 걷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행복이 스며드는 기분이 듭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혹은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내 자신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조용히 찾아오고픈 그럼 섬인것 같네요.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든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 문태준 -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