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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 여행기록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을 새롭게 추억하다.

by 마음풍경 2017. 1. 15.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남도유배길을 다녀온 것이 2010년 2월이니 어느새 만 7년이 되어간다.

하여 사진 앨범을 뒤척이듯 그때의 기억들을 꺼내어

새롭게 걷는 기분으로 그 길의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1코스 : 다산초당에서 영량 생가까지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521)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2,3 코스 : 영량생가에서 월출산까지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522)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 4 코스 : 월출산 기 충전 길

(http://blog.daum.net/sannasdas/13389523)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은 다산초당에서 시작해서

백련사, 사의재, 영랑생가가 있는 강진 읍내를 지나고

무위사, 백운동계곡, 강진다원, 월남사지가 있는 강진 땅을 거쳐

누릿재를 넘어 월출산, 기찬랜드, 그리고 구림마을의 영암 땅까지 이어지는

약 61km의 길로 다산 정약용의 유배 흔적들이 가득 담겨있는 길이다.



다산수련원에서 만났던 정약용의 모습을 보니

요즘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공복(公僕)들의 모습이 중첩이 된다.

본디 정치란 국민을 위한 봉사이건만 주는 것은 공허함과 쓸쓸함이니..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뿌리길은

오랫동안 다산초당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하긴 다산 선생이 다산초당에 머문 시간이 10여년 정도이니

그분의 발자국도 이곳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리라.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동안 머물며 기거했던 다산초당은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지만 늘 새로운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산초당에서 붉은 동백꽃과 함께 백련사로 넘어가는 길은

남도 유배길 1코스인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 이름처럼

한걸음 한걸음 내딜 때마다 저절로 사색이 된다.


다산 오솔길을 사색하며 천천히 걷다보면

다산 선생이 학문과 사상을 함께 나눈 혜장 스님이 있던 백련사에 도착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백련사는 여러번 찾았지만 유명하다는

동백꽃의 정취를 만나보지는 못했다.

물론 언제가 인연이 되면 그 풍경을 카메라에 가득 담을 수 있으리라.


백련사를 빠져나와 강진읍으로 이어지는 길은

겨울 바람과 초봄의 상큼함이 함께 느껴지던 기억이 또렸하다.

용을 꿈꾸는 누군가도 저 만덕산 자락 어느 토굴집에서 기거했다고 하던데..


오랜시간 수많은 길을 걸었고 무수히 많은 풍경을 만났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게 새롭고 처음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기실 여행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인것처럼

자연과의 스치는 인연도 그러하지 않을까.



강진읍내에는 다산 선생이 강진에 유배와서

처음 몸을 위탁한 사의재가 있다.

생각을 담백하게 하고, 외모를 장엄하게 하고,

언어를 과묵하게 하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겠다는

"사의(四宜)"


그리고 사의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로 유명한 영랑 생가도 있다.

요즘 교과서에도 이 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랑생가에서 저무는 하루를 배경으로

첫날의 마무리를 한다.


둘째날 강진읍에서 시작해서 영암 땅으로 이틀 째 걷기를 시작한다.

그나저나 저 거올속에 있는 나의 예전 모습도 이제는 많이 변했겠지.

하긴 요즘은 거울을 보기가 두렵기만하다.


영랑생가에서 시작한 두번째 길은 보은산방이 있는 고성사를 지난다.

이곳도 다산 선생이 다산초당에 가기전에 1년 동안 학문을 연구한 곳이다.


솔치를 넘고 마을 길을 지나 월각산이 멋지게 펼쳐지는

성전면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먹었던 옛날식 짜장면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가보니 이 식당은 문을 닫았고..


월출산의 축소판인 월각산을 바라보며 달마지 마을을 지나고.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장대하게 펼쳐지는 월출산의 감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마음이 든다.


월출산을 병풍처럼 의지하고 있는 무위사는

국보 13호인 극락보전을 지닌 천년 고찰이다.


백운동 계곡은 초의선사와 다산이 차를 마시며 함께 글을 쓴 곳으로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조용한 발걸음으로 찾고싶다.


월출산 암릉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녹차밭은

백운동 계곡을 다시 찾고픈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보물 298호 석탑만 남아있는 월남사지 절터의 쓸쓸함은

아직도 여전한지 모르겠다.


누릿재 너머 뒤돌아 바라본 월출산의 그림자가 마치 도봉산을 닮아

다산 선생은 이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다고 한다.


형제를 잃고 유배길에 나선 그분의 그리운 마음이

아직도 이 소박한 길을 따라 흘러흘러 남아 있는 것 같고

남도 유배길 3구간의 이름이

"그리움 짙은 녹색향기길"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누릿재를 넘으면 이제 영암 땅으로

간벌을 하던 편백나무의 향기가 아직 내 몸에 배여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후 많은 편백숲을 찾아다닌 것은 이곳의 인연이 계기가 된듯 싶고.


어둑어둑해지는 월출산 능선을 바라보며 천왕사 입구에서

이틀째 날을 마무리 한다.

2코스인 "시인의 마을 길"과 3코스인 "그리움 짙은 녹색향기길"의

30km 가까운 길을 하루에 걸었는데 지금도 그리 할 수 있을지...


남도 유배길의 마지막 4코스인 월출산 자락, 기 충전 길은

웅장하고 장대한 월출산의 암봉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월출산 둘레로 이어지는 길은 편안한 기찬묏길로 이어진다.

월출산은 산 자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기가 많다고 하고.


이곳은 남도유배길 이전에 조성이 된 길이라

길 주변에 좋은 시도 있고 편안한 쉼터도 있다.

이 시는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잔잔한 그리움이 저며온다.


기찬랜드를 지나 다시 월출산 주변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그 당시 이정표가 많지 않아서 지도를 보며

이러저리 찾아 걸었던 추억도 이제 생각해보니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전에 이 길을 걸으며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이곳에 다시 옮겨 본다.


저 산 속에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소중한 풍경이지요.

사는게 때론 줄다리기 같습니다.

저 산에 들어가 있을 때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느낌이 들고

이처럼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눈감으면 애절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느낌이 또한 좋습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오로지 혼자 가꾸어야 할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떨어져 있어서 빈 채로 있는 그 여백으로 인해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상처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움의 간격'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리..."

 

                                       -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



강진에서 시작해서 월출산을 휘돌아 구림마을에서 마무리했던

3일 동안의 남도 유배길은 다시 뒤돌아봐도 행복했던 추억만 가득한 시간이고

언젠가 화사한 벚꽃이 피는 봄날 다시 한번 꼭 걷고픈 그리움의 길이 된다.


 "왜 사람들은 걷는가, 왜 걸으려는 것일까.

정작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욕망과 경쟁으로부터 떠나기 위해서 길을 걷는다고,

쉼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경쟁으로부터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아무 욕심도 없어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된다고,

그래서 자신을 묶어놓고 있는 온갖 관념과 습관의 줄을 놓아버리고자 걷는다고 말한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눈에는 걷는 사람들이

'사서 고생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걷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을

'안됐다'고 말한다.

따사로운 햇볕, 맑은 바람결,

거기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그들은 도저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